리투아니아 국립극장 X 해보카프로젝트
이번에 리투아니아에서 현지 리서치를 진행하며 우리가 궁금증을 가진 지점이 있었다. “변화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각자가 가지게 되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태도는 과거 변화에 대한 각자의 경험과 연관성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어떤 연관이 있는가?”. 리투아니아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러시아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1945년이었으니 반세기가 훨씬 더 지나 우리 세대에서는 일본으로부터의 지배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감정을 가지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1990년 독립을 했고 아직도 사회 전반적으로 러시아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고 그것들을 없애려는 움직임들이 많이 있다. 가까운 예로 작년 방문했을 때에 찾아갔던 클라이페다 드라마 씨어터와 리투아니아 국립극장은 러시아 지배 시기에 지어졌던 건물인데 모두 그 양식을 허물고 자신들의 건축양식으로 리노베이션 하는 중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어떤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가? 이러한 면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보면 리투아니아의 지금의 변화의 모습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그것을 통해 한국의 변화의 모습 또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거울삼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총 9명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다양한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공통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했다.
Q1. Please introduce yourself briefly.
(자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Q2. Do you have any recent unlucky experience that you realized that you are passing X9?
(최근에 아홉수를 지나셨다면, 그것과 관련한 재수없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Q3. In your X9 age, have you felt any special feeling that you did not realize before?
(과거 아홉수를 지나던 때에, 느꼈던 특별한 감정이나 기억이 있으신가요?)
Q4. For me, X9 is OOO?!
(나에게 아홉수란 OOO이다?!)
Q5. Do you have any surprising event for yourself at the very last night of you X9 years old?
(아홉수를 지나 꽉찬 서른 혹은 마흔이 되던 때에 깜짝 이벤트 같은건 없었나요?)
Q6. After ten years at your (X+1)9 years old, what do you expect that you would be doing ?
(10년 뒤의 당신의 모습이 어떨 것이라고 기대하나요?)
Q7. If possible, do you have any message to deliver to yourself of 10 years ago, (X-1)9?
(10년 전의 나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무엇을 얘기해주고 싶나요?)
리투아니아 국립극장의 배우들 중 다양한 배우들과 인터뷰할 수 있었고, 그들의 지인 중 일반인들과도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아홉수, 그리고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볼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난 리투아니아 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문화에서는 아홉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큰 의미는 없다고 했고 나이를 묻는 것 흔한 경우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홉이라는 숫자에 대해서 뭔가의 시기가 여물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서는 서로 통하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 중 국립극단의 여배우인 Migle와 Monika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들을 던져줬다. 먼저 Migle는 21살에 리투아니아의 유명 연출가인 Yana Ross의 The Sexual Neuroses of Our Parents라는 작품을 통해 주목을 받으며 데뷔한 올해로 34살이 된 여배우였다. 그녀는 자신이 데뷔한 이후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배우로서의 경험과, 그리고 갑작스럽게 아이를 갖게 된 후 미혼모로서 아이를 키우며 살게 된 과정들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30대 중반에 자신이 배우로서 해내고 싶은 것, 동시에 자신이 30대 중반에서 앞으로 중장년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가에 대한 걱정, 동시에 젊은 배우들은 계속 쏟아져 나오는 상황 속에서 이들과 경쟁하여 젊은 배역을 따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염려 등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뒤 다시 복귀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안에서의 드는 생각들을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Migle의 이야기는 Monika라는 50세의 중견 배우가 해준 이야기와 중첩되어 들렸다. Monika 또한 리투아니아 연극계, 영화에서 왕성히 활동을 해 온 배우인데 그녀는 50이라는 나이에 접어들며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한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은 25년간 무대에 서왔고 20대, 30대 때는 가족, 친구보다에 대한 것보다도 오직 연극만을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연극이란 것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오랫동안 등에 허리에 통증이 있었는데 침을 맞으며 치료를 받아서 몸이 많이 좋아졌는데 그러면서 자신도 침을 놓는 법을 배웠고 현재는 파트타임으로 돈도 벌고 있고 나중에 무대에 서지 않는 날이 오면 이 기술로 자신처럼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고 싶다고 했다. 이 두 명의 배우와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는 없었지만 서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몇 년 전의 자신의 모습, 그리고 몇 년 뒤의 자신의 모습을 서로를 통해 생각하며 지금 맞이하고 있는 변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동시에 나 또한 모니카와 비슷한 연배, 50 즈음이 되었을 때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을지, 혹은 무대에서 멀어진 다른 인생을 그리고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과 궁금함이 뒤섞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생겨났다.
이 두 명은 각자가 배우로서 그리고 리투아니아에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변화의 모습들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자신의 선택과 생각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고, 또한 둘은 1990년 러시아로부터의 리투아니아 독립을 기억하는 세대로서 그때의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던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고 나서 자유가 주어졌는데 막상 마음대로 하라고 하니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데로 자유를 즐겨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혼란이 있었다고 했다. Migle는 자신의 과거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1990년 리투아니아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어렸을 적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항상 자신의 생각을 너무 드러내지 말고 주어진 일에 대해서 잘해야 한다는 교육을 많이 받았고 그러한 교육과 경험이 지금 자신의 인생에서의 새로운 페이지를 준비하는 과정 안에서 자신이 어떤 태도와 생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 두 명 외에도 19살 학생 Julija, 그리고 24살 청년 Laurynas와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만난 이 두 사람은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과도 개인적인 이야기 그리고 리투아니아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리투아니아에 방문했을 당시 총리가 바뀐지 얼마 안 된 시기였는데, 새로운 총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 앞서 인터뷰한 여배우 2명과 달리 이 총리에 대해 긍정적 평가와 함께 기대감을 표했다.
이번 리서치 기간 동안 아홉 명의 리투아니아 사람들과 인터뷰 하며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리투아니아 사회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역사 안에서 중요한 변화의 시점이라고 느끼는 것들, 그리고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지는 리투아니아 현 사회를 바라보는 온도차, 그리고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각자 인생의 어느 시기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각자의 변화의 순간을 대하는 각기 다른 모습들에 대해 좀 더 알아갈 수 있었다. 이들과 얘기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변화의 지점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개인이 느끼는 변화뿐 아니라 그보다 좀 더 거시적 관점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우리는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를 기대하고 있으며 그 변화를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불과 얼마 전 예술계에서는 블랙리스트, 미투 운동과 같은 큰 변화를 경험하고 난 뒤 우리는 또 어떤 다음 모습을 그리고 있는지, 또한 언젠가 또 다가올 변화 앞에서 우리는 어떤 노력과 선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생겨났다.
작년 리투아니아 커넥션을 통해 리투아니아 연극을 접하고 새로운 작업에 관해 얘기를 한 뒤 오랜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아홉수라는 소재를 가지고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제안을 한 뒤, 제작 주최인 리투아니아 국립극장 사람들은 이 내용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했다. 또한 구두 약속 이외에 계약서를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작업이 중간에 중단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 한 켠에는 항상 염두해두고 있었다.
이번 리서치 기간 동안 국립극장 예술감독과 기획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이 작업을 통해 시도해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면이 앞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정해져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리투아니아 국립극장은 최근 몇 년 간 리투아니아의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작업을 만들어왔으며, 그 중 오토노미(Autonomy)는 헝가리 연출가 아파드 실링(Arpad Schilling), 더 도어(The Door)는 노르웨이 연출가 조 스트룀그렌(Jo Strømgren)에 의해 만들어졌다. 작년 가을 리투아니아에 방문했을 당시 이 작품들을 보여주며 그들이 해외 연출가들과 어떻게 소통하며 작업해나가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준 바 있다. 그간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리투아니아 사회에 관한 작업들이 의미있는 바가 있었고 이번 작업을 통해서도 리투아니아 국립극장은 한국에서 온 창작자들의 외부 시각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를 들여다보는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작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제작을 추진하고 있는 예술감독 Martynas의 연임여부가 내년 초에 결정되기 때문에 2021년 라인업을 지금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단계이고, 이 작품을 제작을 확정적으로 결정할 경우에는 리투아니아 국립극장의 레퍼토리로 만들고자 하기 때문에 스탭과 배우들은 리투아니아 국립극장 소속 스탭 및 배우가 50% 이상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덕션을 구성해야한다 등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서 세부적인 내용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번 작업은 한국에서 기획하고 개발한 뒤 해외 페스티벌에 출품하는 방식이 아니라 리투아니아 현지에서의 커넥션을 시작으로 해외에서 작업을 의뢰하여 한국의 창작진, 리투아니아 창작진들의 공동 개발로 진행되고 있기에 앞으로의 창작 과정이 스스로 궁금하기도 하고 낯선 문화의 사람들과 생각의 부딪힘 속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나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가져다준다. 앞으로 이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불확실한 것들이 많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다른 문화권의 창작진들이 함께 서로에 대해 대화하며 씨앗을 만들고 여러 문화권에서 예술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