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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꼽슬 Curlywavy Jang Dec 16. 2019

[런던 공연노트 #1]
현대미술과 동시대연극의 상관관계

연극 <Out of Order> by 포스드 엔터테인먼트

     런던에 와서 첫 학기가 정신없이 지나가고 어느덧 적응이 될 무렵, 런던 생활의 첫 공연 관람 기회가 생겼다. 지금 공부하는 학교는 런던대, 로열 센트럴 스쿨 오브 스피치 앤 드라마(University of London, Royal Central School of Speech and Drama)이고, 여기에서 어드밴스드 씨어터 프랙티스(Advanced Theatre Practice) 석사(Master of Fine Arts)과정을 밟고 있다. 보통은 연기 전공, 연출 전공, 무대디자인 전공 이렇게 전공을 나누는게 보통인데, 이 과정은 얘기하자면 다원예술 창작 과정이라고 표현하는게 가장 가까울 듯하다. 다원예술은 영어로 하면 “Indiscipline”이라고 표현하던데, 내 방식으로 이해하기로는 “장르없음", 즉 자기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표현하고 만드는 과다. 학교에서 감사하게도 자기 맘대로 하고 뭔가 만들어보고 싶어서 공부하러 온 석사 새내기들을 환영 의미로 컨템포러리 연극의 대표격인 포스드 엔터테인먼트(Forced Entertainment)의 신작인 "Out of Order(아웃 오브 오더)"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줬다(..심지어 무료..)


팀 에첼스(Tim Etchells)의 저서 "Certain Fragments"


    포스트 엔터테인먼트는 1984년 극작가이자 연출자인 팀 에첼스(Tim Etchells)를 중심으로 영국의 셰필드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영국 현대 연극을 대표할 수 있는 팀 중 하나이다. 우리 나라에는 2009년에 페스티벌 봄에 스펙타큘라(Spectacular)라는 공연으로 온 적이 있다. 당시에 표를 못 구해서 나중에 아르코에서 영상으로만 봐서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이렇게 오자마자 보고 싶었던 공연을 보게되어서 기대가 많이 됐던 공연이다. 사우스뱅크 센터에는 처음 가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곳이었다. 사우스뱅크 센터는 로열 페스티벌 홀, 헤이워드 갤러리, 퍼셀 룸, 그리고 내가 공연을 본 퀸 엘리자베스 홀 까지 총 3개의 공연장 및 1개의 전시장으로 이루어진 복합공간이다. 우리로 치면 예술의 전당 같은 느낌이 나는 공간이었다.

"아웃 오브 오더(Out of Order)" 공연 시작 전 사우스뱅크 센터(Southbank Center) 로비


“Teetering carelessly between funny and not funny at all, comical and absolutely tragic, a troupe of hapless clowns sit huddled round a table, waiting for trouble to start.
(유잼과 노잼 그리고 희극과 비극의 경계에 있는 불행한 광대 한 무리가 문제가 좀 생겨나길 바라며 불안하게 서있다.)”


   리플렛를 보니 위와 같은 내용의 소개글이 쓰여있다. 글만 봐서는 뭘 하려는 건지 도통 이해가 잘 안된다. 로비에서 파는 맥주를 한잔 비우고 공연장으로 들어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조명이 무대 조명이 밝아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아웃 오브 오더(Out of Order)" 공연 시작 전 무대모습

     1시간 반 정도된 공연을 대사없이 상황과 배우들의 움직임, 음악만으로 진행된다. 무대 위에는 커다란 테이블, 그리고 그 테이블 주변으로 여러개의 의자들이 놓여있다. 곧 체크 무늬의 색감이 참 좋은 수트를 입은 6명의 광대들이 얼굴에 분칠을 하고 등장한다. 극 초반에는 광대들이 끊임없이 서로 싸움을 벌인다. 이유는… 딱히 없다. 두 명이 시비가 붙으면 나머지들은 말리느라 쫓아다니고, 그러다가 또 다른 두 명이 시비가 붙으면 나머지가 말리느라 쫓아다니고 이런 꼬리물기가 30분 가량 진행된다. 이게 뭔 상황인가 싶은데 이게 계속, 그리고 또 계속된다. 이 짓을 어디까지 하나 한번 보자 싶을때 쯤에 광대들은 하나 둘 지쳐서 무대에 쓰러지고 모두 탈진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한참의 시간이 흐른다. 한 광대가 주머니에 있던 풍선을 불어 놓자 그 풍선은 무대 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이내 힘없이 무대 위로 다시 떨어진다. 그렇게 한 명이 풍선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자 다른 광대들도 너나할 것 없이 풍선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곧 무대는 여러개의 풍선이 나풀대며 돌아다니는 난장판이 된다. 난장판이 되고 나서 한참을 있다가 광대들이 무대를 치운다. 의자도 치우고, 무대 중앙을 차지하고 있던 큰 테이블도 치운다. 그런데 이것도 한번에 치우는게 아니다. 테이블을 가지고 무대를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돈다. 그리고 또 더 돈다. 도대체 얘네들이 뭐하는 건가 하는 궁금증으로 계속해서 무대를 지켜보던 관객들이 각자의 순간에서 웃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웃기고 어찌보면 전혀 웃기지 않다. 다같이 웃음이 터지는 순간은 딱히 없었다. 그리고 나서 또 한 광대가 삑삑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가지고 또 소리를 내며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무대에는 삑삑 소리로 가득찬 또 다른 방식의 난장이 펼쳐진다. 

     이쯤되면 1. 고장난   2. 정리가 안 된   3. (행동이) 제멋대로인 이런 뜻을 가졌다고 하는 이 작품의 제목 Out of Order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공연을 계속 보다보니 이 작품의 제목이 왜 Out of Order일지 광대들은 누구이며 어떤 문제가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등 여러 의미를 찾아보려고 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광대들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상황 자체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오르게 하기도 하지만 그런 설명이나 언급은 전혀 없다.

포스드 엔터테인먼트(Forced Entertainment)의 연출 팀 에첼스(Tim Etchells)와 함께 한 관객과의 대화

     그 날은 끝나고 연출인 팀 에첼스와 공연에 참여한 퍼포머들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관객과의 대화 자리가 있었다. 관객들의 질문 중에는 테이블을 옮기는 행위가 반복되는 이유, 광대들이 싸움을 거는 이유 등 무대 위에서 보여줬던 행위들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이 질문들에 대해 연출은 그 특정 행위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거나 어떤 무언가를 상징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 장면에서의 움직임과 행위들은 그냥 만드는게 아니고 계산하고 배우들과 즉흥으로 해보고(improvise) 또 다시 수정해서 장면을 확정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의미를 담지는 않지만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정확하게 만들어낸다라는 말이 의미가 잘 되지 않으면서도 뭔가 이해가 되는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고 난 뒤에 로비에서는 공연에 참여한 스탭들 배우들간의 간단한 술자리가 이어진다. 팀 에첼스와 다른 스탭들, 그리고 같이 공연을 보러간 친구들과 함께 넉살좋게 그 자리에 끼어서 몇 마디 주고 받으며 궁금한 것들을 더 물어봤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장면의 리듬감, 속도, 템포 등 장면의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를 어떤 감각으로 만들어내는지에 많은 에너지를 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전단에 쓰여있는 이 문구도 다시금 눈에 띄었다. 

"아웃 오브 오더(Out of Order)" 리플렛
“Meticulous montages of images, texts, scenes, and actions
(섬세하게 짜여진 이미지, 텍스트, 장면과 행동) - Kulture News”.

    의미를 담지는 않지만 이 공연에는 명확한 색감과 움직임과 리듬이 있다. 그걸보고 관객들 각자는 내가 했던 것처럼 각자의 의미를 발생시키고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했을 것이다. 이러한 작품과 관객과의 관계를 연출은 아주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작품은 그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는 감각들을 무대 위에 펼쳐놓은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무용 공연 같다라고 했던 생각이 현대 미술 작품 같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미술관에서 어떤 특정한 패턴, 색감으로 만들어진 추상 작품을 보면서 각자 자기만의 감각과 생각을 얻어가는 그런 관람의 방식과 유사한 지점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왜 포스드 엔터테인먼트가 동시대 연극(Contemporary Theatre)에서 항상 거론되는 이름인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같이 공연을 본 친구가 팀 에첼스에게 던진 질문 중 하나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 공연은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공연의 context, 그리고 Out of order(난장판)이라는 제목 자체가 정치적 뉘앙스로 전해진다.”


라고 의견을 남기자. 팀 에첼스는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쿨한반응으로 질문 겸 의견에 대답을 했다.

    동시대 연극의 날 선 지점에 서 있는 연극의 감각을 엿 본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쇼를 기대하고 접하게 된다면 드라마가 없는 다소 생소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법도 하지만 런던에서 이런 방식의 내가 익숙하게 접하지 못하던 공연을 많이 만나길 바란다.

"아웃 오브 오더(Out of Order)"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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