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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꼽슬 Curlywavy Jang Dec 30. 2019

[런던 공연노트 #2]
잃어버린 것과 찾게된 것

뮤지컬 컴프롬어웨이(Come From Away)

   런던에서 지내다보면 은근히 반가운 얼굴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 곳이 거리상으로는 많이 멀지만 많은 사람이나 공연 때문에, 혹은 다른 일로 많이들 온다. 런던은 그만큼 서울에서 멀지만서도 가까운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다. 이곳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어리버리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 작곡가/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혜신이가 짜파게티와 스팸을 들고 런던을 방문했다. 공연을 좋아하고 업으로 삼은 사람들끼리 멀리 이 곳에서 만나서 같이 공연을 하나 보면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함께 공연을 하나 보고 싶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고른 우리의 선택은 캐나다에서 만들어져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에서 성공을 거둔 “컴 프롬 어웨이(Come From Away)”. 이 공연은 아이린 생코프(Irene Sankoff)와 데이빗 헤인(David Hein) 듀오가 글도, 곡도, 가사도 같이 쓴 작품으로 9/11 테러(9/11 attacks) 당시에 38대의 비행기가 캐나다 뉴펀들랜드(Newfoundland) 지역의 갠더(Gander)라는 작은 동네에 착륙하면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12년에 캐나다 온타리오의 쉐리단 대학에서 처음 워크샵 형태로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샌디에고, 시애틀, 워싱턴을 거쳐 2017년에는 브로드웨이에 입성했고 2019년 2월에 런던으로 넘어와 현재까지 공연을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가장 롱런하는 캐나다 뮤지컬로 기록을 세웠고, 영국으로 넘어와서도 이 곳의 가장 권위있는 상인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Laurence Olivier Awards)에서 베스트 뉴뮤지컬, 음악, 음향디자인, 안무(Best New MusicalOutstanding Achievement in MusicBest Sound DesignBest Theatre Choreographer) 총 4개 부분을 석권했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Come from away)의 공연장 피닉스 씨어터

   한국에서 태어나서 작업을 하는 나나 혜신이나 매번 언어의 벽에 큰 한계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만든 뮤지컬이 다른 시장에서 다른 문화권의 관객을 만나며 소통할 수 있는 날을 만들어내기를 한편으로는 기대를 품고 있다. 그래서 영어라는 같은 언어를 쓰는 캐나다이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어떻게 다른 나라의 관객들을 만나는지 좋은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연장으로 향했다. 혜신이가 아침부터 극장 앞에서 줄을 서서 구한 데이시트(Day seat)덕에 한명당 25파운드의 돈으로 극장의 맨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목은 좀 아플 수 있어..”라는 티켓 판매 직원의 말대로 목이 다소 뻣뻣해지는 90분이었지만 좋은 배우들의 멋진 에너지를 바로 눈 앞에서 전달받았던 시간이기도 하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Come from away) 무대 프리셋 모습



   이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날,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출발할 비행기 2대가 세계무역타워에 충돌하던 그 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던 그 순간 뉴욕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 순간 세계의 다른 어느 곳을 향해 비행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이후에 자신과 다른 비행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안타까운 희생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따라가다보면 흥겨움 속에서도 잠시 먹먹한 순간을 맞닥뜨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9/11 테러로 인해 미국 전역에 걸쳐 비행기 출입이 금지되고, 비행기에 실려 미국의 어딘가로 향하던 승객들은 이유도 알지 못한채 캐나다의 갠더라는 작은 동네에 착륙하게 된다. 이 뮤지컬에는 갠더에 살고 있는 시장, 경찰, 교사 등의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갠더에 불시착한 이 곳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는 수많은 승객들이 등장한다. 28시간 동안 다른 어디에 가지도 못하고 비행기 안에서 혼란과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에게 갠더 마을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생필품을 준비하고 쉴 곳을 마련하여 그들을 안아 준다. 처음에는 두려운 상황에서 낯선 사람들을 맞닥뜨린 승객들은 갠더 사람들을 경계하지만 이내 사람들은 벽을 허물고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갠더 마을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태 앞에서 서로 연대하며 방법을 찾아나간다. 그 중 뉴욕에서 온 한나(Hannah)가 소방관인 아들이 연락이 닿지 않아 계속 불안해하고 있을 때, 갠더에 사는  뷸라(Beulah)는 자신도 소방관 아들을 두고 있는 엄마로써 한나를 위로하며 힘든 시기를 버텨나간다.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테러 속에서도 시간을 흘러가고 사람들은 바에 모여 함께 술잔을 부딪혀가며 긴장도 풀고, 그 안에서 닉(Nick)과 다이앤(Diane)은 로맨스를 꿈꾸기도 하며 사람들은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5일간 갠더 마을에서 함께 지낸 19마리의 동물을 포함한 1900여명의 사람들은 미국 영공상의 비행금지가 해제되어 점차 하나둘씩 갠더를 떠나 자신의 원래 목적지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들에게 9/11의 전과 후는 많이 다르다. 한나는 자신의 소방관 아들이 9/11 테러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슬픔에 잠긴다.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9/11 전후에 자신들은 어떤 것을 잃었고, 어떤 것이 변화했는지 <Something's Missing>이라는 곡을 통해 상징적으로 노래한다. 10년이 지난 2011년 승객들과 비행승무원들은 이번에는 불시착이 아닌 그간의 자신들의 연대를 기념하며 갠더에 다시 모인다. 갠더의 시장인 클로드(Claude)가 이 뮤지컬의 마지막 곡인 <Finale>에서 하는 말은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기릴 뿐 아니라, 우리가 찾은 것들은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Tonight we honour what was lost, but we also commemorate what we found)”

공연장 벽에 정리된 그날의 기록들

   사건은 다르지만 이 작품을 보며 우리에게 그만큼 큰 슬픔이었던 그 사건이 계속 겹쳐서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세월호라는 사고가 우리에게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나? 갠더의 시장인 클로드의 말대로 우리는 슬픔의 시간 속에서 어떤 것을 발견했는가? 무력감? 변하지 않음? 이제 그만 좀 하자? 아이린 생코프(Irene Sankoff), 데이빗 헤인(David Hein).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창작자로서 시대의 아픔을 작품을 통해서 국경을 넘어 많은 관객들과 공유하고, 연대하며, 기억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따뜻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Come from away) 커튼콜

   그러면서 동시에 재작년 안산문화재단과 함께 만들었던 “코스프레 파파(Cosplay Papa)”라는 작품 생각이 많이 났다. 공연을 만들며 우리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작품으로 만드는 행위 자체를 감사히 생각하고, 배우들, 스탭들 그리고 공연장에 찾아온 관객들과 나누는 순간의 경험만으로도 큰 행복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 작품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국경을 넘나들며 롱런하며 수많은 관객들을 만나는 것을 보며 또 한번 큰 도전을 받았다. 우리가 예술을 통해 나누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 공유되고 전달될 수 있도록 “잘” 만드는 것은 창작자로서의 사명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스스로는 화이팅과 기합이 잔뜩 들어간 채로 극장을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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