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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꼽슬 Curlywavy Jang Feb 09. 2020

[런던 공연노트 #3] 위대한 개츠비 이머시브 런던

새로운 장르? 일시적 유행?! 이머시브 씨어터에 관하여

     영국으로 온지 세달여 만에 처음으로 와이프가 영국으로 찾아왔다. 결혼하고나서 한 달 만에 생이별을 하고 이 곳으로 넘어온지라 신혼의 애틋함이 조금은 더 애틋하다. 멀리서부터 무거운 겨울 옷들과 한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내 와이프님께 런던에서 가장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검색을 했다. 물론 내 취향이 많이 반영된 선택이겠지만, 와이프를 위해 선택한 공연은 “위대한 개츠비 이머시브(The Great Gatsby Immersive)”이다. 내 아내는 머리 복잡한 연극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의 아내이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는 직장인으로서 명쾌하고 신나는 공연을 좋아한다. 이번 런던 방문 때에 뮤지컬을 보기를 원하는 눈치였지만 좀 더 재밌는 경험을 같이 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공연을 골랐다. 이 공연을 예매를 하면 예매 확인 메일로 개츠비의 초대장이 도착한다. 


1)낯선 공연에 대한 기대감


My Dear Friend,
I am so glad that you can attend my little party. The pleasure is, I’m sure, entirely mine.
… I’ll look forward to seeing you there, old sport.

                                                                                                                                   Jay Gatsby
위대한 개츠비 이머시브 런던 공연 초대장

     예매 내역을 가장한 초대장을 와이프에게 보내니 반응은 합격이다. 이머시브 공연은 공연이 진행되는 장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묘한 기대감과 설레임을 가지게 한다. 이 점은 다른 형태의 공연들과 달리 이머시브 공연이 가지는 큰 특징 중에 하나인 듯 하다. 어디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잘 모르는 기대감과 걱정이 사람을 기분좋게 설레게 만든다. 초대장에는 파티에 걸맞는 1920년대 복장을 갖추고 와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는데, 나의 와이프는 한달 동안 무슨 옷을 입고 가야할지 많은 고민과 걱정을 했다.

위대한 개츠비 이머시브 입구

     우리 부부는 나름의 격식있는 복장을 갖추고, 공연장 근처의 본드 스트리트(Bond Street) 역으로 향했다. 공연(이라 쓰고 파티라 읽는다)이 진행되는 개츠비의 맨션(Gatsby’s Mansion)은 근처에 옥스포드 서커스 역, 셀프리지 백화점이 보이는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다. 티켓 확인을 하고 본격적으로 개츠비의 파티장 입구에 들어서면 루실(Lucile)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192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스마트폰은 잊고 파티를 즐겨달라는 당부를 한다. 하지만 바에서 결제할 때만큼은 스마트폰을 꺼내도 된다는 아주 “친절”한 안내를 받고 개츠비의 파티장으로 들어선다.  안으로 들어가면 “두 시간동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지금 보이는 이 공간이 전부인가? 어디에 뭘 어떻게 숨겨놨을까?” 등등 기대감 섞인 궁금증들이 생겨난다. 

위대한 개츠비 이머시브의 메인 공간과 바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 사이에도 묘한 기대감이 느껴진다. 관객들은 바에서 술을 주문하고 개츠비의 맨션을 돌아다니며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점 혹은 차이점을 발견하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공연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지려고 하는 노력하는 듯 하다. 최근에 읽은 Immersive theatre(저자:Josephine Machon)라는 책에 따르면 이머시브 연극에서 관객 참여는 크게 세 범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Activation, Authorship & Community
(활동적 참여, 작가되기 그리고 커뮤니티)


     이 중 이머시브 공연의 특징 중 하나가 “커뮤니티”라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공연장에 와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이 공연에 온 사람들은 관객들은 서로를 잘 모르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지만 이 공연을 즐기러 왔고, 이 공연이 일반적인 방식의 공연과는 약간은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공연에서 소외되지 않고 관객의 일부가 되어 함께 공연을 잘 즐기고자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을때 인사를 건네는 것도 상당히 자연스럽다.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중, 배우들 뿐 아니라 관객들도 우리 커플에게 “어디서 왔느냐, 오늘 의상이 멋지다.” 등의 편한 인사말을 건네주었다.


2) 공간, 그리고 관객의 자유도


     위대한 개츠비 이머시브 공연은 주된 줄거리가 진행되는 메인 공간 개츠비의 맨션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내용 또한 우리가 아는 위대한 개츠비의 줄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공연장에는 여러개의 비밀 공간이 숨겨져 있는데 그 공간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우리는 메인 공간 외에 총 3개의 공간을 가볼 수 있었는데 극이 진행되는 특정 순간에 내가 어느 위치에 서 있느냐가 그 공간을 가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짓는다. 대부분의 비밀 공간은 공간 귀퉁이 쪽에 숨겨져 있는데 메인 무대에서 뭔가 진행이 되어 관객 대부분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때 어떤 캐릭터가 일부 관객들을 이끌고 이동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대한 개츠비 이머시브에서 공연장 모습

     우리는 1막 마칠 때까지는 닉 캐러웨이와 톰의 학창시절 관계, 그리고 톰과 머틀의 외도에 대한 장면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밖에 가보지 못했다. 쉬는 시간동안 이 공연의 진행요원과 얘기를 하다가 1막 동안 한 곳 밖에 못 가봤다고 하자 2막 시작에는 바 근처, 2막이 끝날 무렵에는 출입문 근처로 가보라고 치트키를 알려줬다. 그렇게 귀동냥을 해서 어렵사리 경험하게 된 방은 조지와 머틀과 집, 그리고 개츠비의 서재이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는 머틀의 외도를 알게된 조지의 분노, 머틀이 데이지가 운전한 차에 치여 죽게된 후에 개츠비가 데이지를 대신해 운전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게되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공간 안에서는 관객은 메인 공간에서 그랬던 것처럼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로서 역할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형태의 공연처럼 극을 보는 관객이나 다만 극을 볼 위치를 결정할 수 있는 약간의 선택의 폭이 주어진다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 듯 하다.

     위대한 개츠비 이머시브 공연은 홍보물에 관객들을 1920년대 재즈시대의 쾌락주의(Jazz-age Hedonism)으로 초대한다고 광고한다. 관객들은 개츠비의 맨션 안에서 1920년으로 시간 이동을 해 그 공간 안에 있는 극 중 인물들과 대화나누고 관계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관객이 어떻게 이들과 관계맺느냐가 이 공연이 흘러가는 방향을 결정하거나, 관객과 이 공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 공연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유희를 제공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의 연극이 관객으로 하여금 깜깜한 객석 중 주어진 좌석에서 각자의 상상을 하며 드라마를 즐기는 방식이라면, 이 공연은 관객이 원하는 위치를 선택하여 각자가 원하는 인물의 드라마를 중심으로 따라가며 극을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점이 관객으로 하여금 개츠비의 맨션이라는 공간, 1920년대의 시간, 극 중 인물들과 나와의 관계 안으로 몰입(Immersed)되게끔 만들기에 충분하지는 않는 듯 하다. 관객입장에서는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이었다가 중간에는 극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청중으로 다시 파티 안으로 역할이 바뀌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몰입(Immersion)이라기 보다는 내가 어떤 모드로 공연을 즐겨야 하는지에 대한 은근한 눈치보기로 이해 낯설음(Alienation)의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3) 이머시브 씨어터 - 뜨거운 관심 & 떠오르는 문제들


    지금 서울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 이머시브 서울 공연의 관람후기들을 보면 여러모로 평이 갈리는 듯 하다. 인터파크 관람 후기 들 중에는



파티에 참석한 것 같은 새로운 경험을 했다.
vs
3시간 내내 서있느라 다리 아팠다.

흐름이 들쑥날쑥이라 내용 파악이 잘 안 된다.
vs
방에서 캐릭터 내면에 대한 얘기를 들으니 더 공감이 잘 됐다.


위대한 개츠비 이머시브 서울 공연 인터파크 관람평

와 같이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 이러한 다양한 반응 속에서 궁금한 점은 과연 이머시브 공연의 형태가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 한국에서도 자리 잡아나갈 것인가, 아니면 한 때의 유행으로 스쳐지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간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불행", “로드씨어터 대학로", “씹을거리를 가져오세요" 등의 관객이 참여하는 형태의 공연으로 만나왔지만, 지금 런던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이곳 런던에서는 2003년에 시작된 이머시브 공연의 조상 격인 펀치드렁크(Punchdrunk)의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를 시작으로 2014년에는 런던의 가장 오래된 파이가게에서 공연되었던 투팅 아트 클럽(Tooting Arts Club)의 스위니 토드(Sweeney Todd)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넷플릭스에서 히트를 한 시크릿 시네마(Secret Cinema)의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이머시브  https://tickets.secretcinema.org/stranger-things, 볼트 페스티벌에서 공연되고 있는 “더 그림(The Grim)” https://vaultfestival.com/whats-on/the-grim 과 “문라이트 허슬(Moonlight Hustle)” https://vaultfestival.com/whats-on/moonlight-hustle 등 다양한 공연이 앞다투어 공연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공연 내에서 식사를 하며 그 상황을 즐기는 “맘마미아 더 파티(Mamma Mia, The Party)” https://www.mammamiatheparty.com, 펄티 타워 다이닝 익스피리언스(Faulty Towers The Dining Experience) faultytowersdining.com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선보여지고 있다.


시크릿 시네마(Secret Cinema)의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이머시브 공연

     이러한 관심과 인기와 동시에 이머시브 장르에 대한 우려와 비평 또한 이어지고 있다. 아래의 기사들은 일부 몰상식한 관객들의 선을 넘는 행동과 성추행, 그리고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해 공연장에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또한 관객과 비평가들 사이에서 “이머시브 공연=상업 공연”이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생겨 예술적인 새로움은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 와중에 터진 Variant 31(https://www.variant31.com/)이라는 좀비 이머시브 공연의 중단과 배우가 프로듀서를 고소하는 최근의 일련의 사태는 열악한 공연 환경, 페이 미지급 사태는 유행을 타고 한 몫 챙기려는 상업 공연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머시브 공연 섹시 할 수 있다 - 하지만 이제는 상대방의 동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
(Immersive theatre may be sexy – but we need to start talking about consent)

https://www.independent.co.uk/arts-entertainment/theatre-dance/features/immserive-theatre-consent-great-gatsby-sleep-no-more-sexual-assault-a8372641.html


하이아트부터 하룻밤 유흥까지: 이머시브 공연은 소울까지 팔아버렸나?
(From high art to tipsy night out: has immersive theatre sold its soul?)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0/feb/02/high-art-tipsy-night-out-immersive-theatre-lost-its-soul


이머시브 좀비 공연의 출연자들이 안전 문제와 60,000파운드 임금 미지급으로 프로듀서 고소 
(Immersive zombie-show performers accuse producer of safety failings and £60k unpaid wages)

https://www.thestage.co.uk/news/2020/immersive-zombie-show-performers-accuse-producer-of-safety-failings-and-60k-unpaid-wages/


최근 프로덕션 상의 여러가지 문제로 회자되고 막을 내린 Variant 31

    런던에서 이머시브 공연은 이러한 문제들을 맞닥뜨려가며 이제는 도입기를 지나 장르화로 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과도기에 이미 시크릿 시네마라는 팀은 스크린과 tv에서 성공한 작품을 이머시브 공연화시키며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그래온 것처럼 자신들의 브랜드를 다져가고 있으며, 현재 공연되고 있는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후에 올해 2020년 여름에는 더티댄싱(Dirty Dancing) https://tickets.secretcinema.org/dirty-dancing 이라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에 런던 공연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상업적인 분위기 속에서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무언가가 나오길 기대하고도 있다.

    그리고 한국 공연계에서의 이머시브 공연들을 어떻게 만들어져갈지 매우 궁금하다. 과거 한국 뮤지컬 시장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성공을 거둔 라이센스 뮤지컬을 한국에 들여오며 파이를 점점 키워나갔고, 노하우를 쌓고 어느 정도 관객층을 만들어낸 후에 창작 뮤지컬을 하나둘 선보이기 시작했다. 뮤지컬 시장이 키웠던 것처럼 위대한 개츠비 이머시브와 같은 라이센스 이머시브 공연들을 먼저 받아들이고 이머시브 시장을 어느 정도 확보한 뒤, 창작 이머시브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거의 모델을 이어나갈까? 아니면 K-pop이 독자적으로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것처럼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식의 이머시브 공연이 아닌 한국형 이머시브 공연의 형태를 만들어서 나름의 방식의 체험형 공연의 스타일과 컨텐츠를 생산해낼 것인가?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한국의 공연계의 창작자들과 관객들이 이머시브 공연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만들어나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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