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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감 Aug 13. 2020

처음부터 마케팅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feat. 내가 왜 콘텐츠 마케터가 되었더라)

주변 동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마케터가 된 거예요?"


'콘텐츠 만드는 게 재밌어 보여서..', '글 쓰는 게 좋아서..', '스펙 쌓으려고 했던 서포터즈에서 마케팅해보니 재밌어서..' '방송국 가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어서, 그냥 콘텐츠 만드는 직업하려고..' 백이면 백 전부 다른 이유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마케터가 되었을까.


나름의 고백을 해보자면 20대 중반까지 마케팅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마케팅 실무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꽤 오랜 시간 다른 분야를 맴돌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맴돌던 그 순간들은 점이었고 그 점을 이어 지금이 된 것 같다.


무역학과로 편입을 하면서 잠시 무역 상사나 Kotra, Kita 등을 생각했지만 국제무역 거래조건 조차 외워도 외워도 헷갈리는 스스로를 보며 바로 눈을 돌렸다. (현실인지와 포기가 빠른 편이다)  그렇다고 무언가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었기에 도피형 교환학생을 신청했다. 아무리 도피형이어도 나라와 전공을 정해야 했다. 일단, 미국은 갔다 왔으니 패스, 영국은 물가가 비싸니 패스.. 남은 건 프랑스. 그다음은 전공..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업을 하는 학교가 어디 있나 보자...로 정한 IESEG School of Management. 학교 이름에서 보듯 경영전문 대학교인데, 체감상 학생의 절반 이상이 교환학생인 학교이다.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경영'이라는 글자가 들었던 수업만을 골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 마케팅 사례에 대한 기본 학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범생과 거리가 멀었기에 학교에서 수업하는 딱 기본까지만 공부했더랬지..




그 당시 나를 정말 열광시킨 것은 '야구'였다. 미래에 대한 생산적인 고민보다는 두산베어스의 우승을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게 나에게는 더 큰일이었다. 심지어 국제무역사 시험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도 한국 시리즈는 꼭 봐야 했다.. (떨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렇게 4학년이 되었고, 지금 당장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야구로 먹고살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답은 아나운서였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는 절정이었고, 프로야구 방송의 인기 또한 절정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인터뷰를 나누고 해설위원들과 그 날 경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그 직업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아나운서가 되겠다 공표 후 곧바로 아나운서 학원을 등록했다. 한 학기 등록금의 두배 정도 되는 금액을 들여 2-3개월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자세하게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지만,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그 시기가 겉으로는 가장 아름다웠으나 심적으로 나를 가장 깎아먹었던 시기였다. 내 인생에 그렇게 간절하게 무언가를 바란 적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간절했다. 매일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학원으로 달려가 연습을 했고, 하루 한 끼 먹으며 다이어트를 했다 (근데 잘 안 빠짐) 그럼에도 현실은 냉정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방송 경험은 없었고 자신감은 점점 없어졌고, '왜 아나운서가 돼야 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내리지 못했다. 학원 선생님들은 늘 단점을 지적하기 바빴고, 스스로도 못난 점을 찾기 바빴다. 대부분은 서류 조차 통과되지 않았고 그나마 올라간 면접에서는 세상 예쁜 사람들 틈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2년의 준비 끝에 눈물을 머금고 아나운서의 꿈을 접었다. 

사실 2년의 준비 동안 스스로 불안한 마음이 컸었다. 혹시 아나운서가 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인턴이라도 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외국계 기업 온라인 마케팅 인턴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시기였기에, 배우려는 의지보다는 계약 기간 동안 큰 사고만 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팀 규모가 작은 덕분에(?) 원하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찾아왔었다. 상세페이지를 짜는 일부터 대행사와 소통하는 방법 그리고 처음으로 기획했던 프로모션은 나름 대박이 났다. (지금 벌써 5회째인데 포스터도 그대로 사용하더라) 그러면서 '마케팅이 뭔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나 그래도 감은 있나 보다'를 깨달았었다.


인턴도 끝나고 아나운서 준비도 끝나고 본격 '취준'을 시작했다. 취업 준비를 하며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문화를 제일 잘 아는 기업만큼 정직원들이 하는 일이 굉장히 재밌어 보였다. 영화관 관리는 물론, 자체 페이스북을 운영하면서 SNS 마케팅도 스스로 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아르바이트생의 입장에서는 유니폼이 아닌 사복을 입고 무전기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멋있었다. 

몇 명의 정직원 분들과 인터뷰를 해보고 지원을 했다. 입사 후 각 지점으로 발령이 나는 형태였는데 하필 서울에서 2-3번째로 큰 규모의 영화관에 발령을 받았다. 몸이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규모가 크다 보니 장점이 있었다. 자체 페이스북을 운영할 때도 다른 작은 영화관에 비해 반응이 좋았다. 영화관 규모도 크다 보니 다양한 행사도 진행할 수 있었고 고객 대상으로 프로모션도 계획해보는 경험도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영화관은 내가 좋아하는 업무만 할 수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관을 굴러가게 하는 업무들을 돌아가면서 맡게 되는데, 순도 100% 문과생인 나에게는 숫자가 들어간 업무를 맡을 때면 정말 죽고 싶었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안된 무렵, 나는 결심을 했다. 

'돌이켜 보니 모든 경험을 관통하는 건 마케팅이다. 마케팅을 하자'


영화관을 퇴사한 후 마케팅 관련 업무를 더 깊게, 깊게 해올 수 있었다. 마케팅 중에서도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이 볼수록 있게 하는 '콘텐츠 마케팅'에 흥미를 느꼈고 커리어를 쌓아올 수 있었다.




그러니깐 지금, 약 4년 차의 마케터로 지내며 드는 생각은 그 처음이 뭐가 중요했냐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뭐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때는 자신의 인생 로드맵을 그려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나 '나는 어떤 OOO 가 되고 말 거야'라며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는 친구들이 멋있었고 부러웠다. 그러나 나는 정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오는 기회를 잡는 것의 가치가 더 큰 사람이었다. 무언가 되기 위해 악을 쓰던 날을 지나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길도 있더라. 대신 새로운 길을 마주했을 때는 최선을 다했다.


마케팅을 하다 보면 때때로 이런 고민을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내가 계속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뒤쳐질 것 같고, 나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은 하나이다. 

그것이 무엇이던 일단 하고 보라. 

결국 마케팅은 사람들은 이목과 마음을 끌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마케팅 스킬을 죽어라 공부한 것보다는 이번 주에 나가서 보고 온 영화, 밤마다 챙겨보는 드라마, 친구와의 수다, 하고 있는 게임 등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꼭 마케팅이 아니더라도,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것이 아닌가.


앞으로 어떤 마케터가 되어야 할지 스스로 고민을 하면서 시작한 글인데, 쓰다 보니 역시 어떤 마케터가 되어야 하는지 따위의 답은 없는 것 같다. 그저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에 누구보다 충실하고, 퇴근 후에는 나한테 올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들을 위해 체력도 기르고 마음의 여유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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