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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빈센트
St. Vincent, 2014
영화를 보기 전 뻔한 억지 감동 이야기일 것이다 단정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영화의 여운에 묻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올리버는 체구도 작고 싸움도 못하는 약한 아이다. 하지만 어쩐지 조금 철이 일찍 들어 보이는 아이다.
사실 나는 '철이 든 어린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의 자연스러움은 말 그대로 '어림'에서 오는 것이기에 마음껏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일찍 철이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많은 것들을 책임지고 있다는 뜻이다. 마음껏 행동할 수 있는 것들에 제약이 생기고 성장보다는 견디는 것을 택하는 것에서 나온 비이상적인 행동이다. 결국 때마다 충족되어야 하는 욕구들이 쌓이고 쌓여 '어른 아이'로 자라게 된다.
올리버 역시 상황이 만든 일찍 철든 아이다. 바람을 피운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이사를 했고, 자신을 홀로 키우기 위해 돈을 버는 어머니 때문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마도 올리브는 자신보다 더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 홀로 감당하는 일이 많아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버는 당차고 예의 바르다. 모두가 싫어하는 빈센트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Sir.(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약하지만 어른스러운 올리버를 통해 몸도 마음도 힘들어 삶의 여유가 없는 빈센트는 삶에 대한 힘들 얻게 된다.
영화의 여운이 길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올리버를 통해 빈센트가 갑자기 새사람이 된 듯 드라마틱한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까칠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은 그대로이지만 이전보다 마음을 서서히 열며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결말 덕이었다.
- It is What it is.
- 뭐 어쩌겠어요.
힘들어하는 빈센트에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그는 은행 계좌를 닫는 간단한 일 조차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물론 세상은 어쩔 수 없는 일들의 투성이다. 사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타인을 보며 말한다. '뭐 어쩌겠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올리버는 단 한 번도 빈센트에게 이 말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의 힘듦을 계속해서 관찰해야 했던 올리브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빈센트의 모습이 아닌, 깊은 마음속 아내에 대한 사랑과 조금은 사람 구실을 하며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애정을 느끼고 특별하게 생각하면 그 사람이 힘들어할 때 쉽게 '뭐 어쩌겠어, 그게 현실인걸'이라 말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난 후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존재다.'라는 문장이 입에 맴돌았다. 현실에 부딪히고 한계를 느끼며 낮아지는 자존감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우리가 불행한 이유 중 하나는 실제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행하고 싶어 하는, 그러니까 난 불행하니까 이런 행동을 하는 거야 등의 합리화 때문이라고 한다. 행복을 얻기 위한 필요, 충분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순간의 현실이 힘들어 모든 것을 놓고 싶을 때 아주 잠시만 생각할 수 있으면 된다. 분명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당신을 위해 늦은 밤까지 기도하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당신 덕에 웃었고 힘이 났을 것이다. 올리버가 빈센트에게 삶을 배우고, 빈센트가 올리버로 인해 삶에 대한 마음을 열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을 떠올리기 전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용기다. 힘듦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그것을 어떻게든 이겨내 보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