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마이 Jun 04. 2024

인공지능은 일자리를 없애지 않는다.

그러나 인공지능, 데이터에 능숙한 고성과자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없앨것이다

제목과는 상충되지만, 대학 생활 중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뺏는 사례를 실시간으로 들었던 충격을 공유해보려 한다. 2023년도 1학기 (3~6월 정도) 당시 소프트웨어 융합대학 소속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교수님께서는 매번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강의장에 등장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2023년 3월은 Open AI의 생성형 인공지능인 Chat GPT를 본격적으로 유료 결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던 시기다. 국내 사용 사례는 GPTers(지피터스) 사이트와 톡방에서 뜨겁게 공유되고 있었고, 다들 무료판과 유료판의 성능을 비교하고, 미래에 대한 수많은 얘기를 나누던 시기이기도 했다. 수업에 들어오신 교수님은 매 수업 시작 전 간단하게 전날 발표된 새로운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해 말씀하셨다. (새로운 기술이 거의 매주 발표되던 그 분위기도 참 경이로웠다.) 그리고 수업에서 사용하기 위해 운영하시던 Slack 채팅방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올려주셨다. 듣는 입장에서도 경이로웠고, 쓰는 입장에서도 경이로웠으며, 세상이 너무 빨리 발전하는 것 같아 약간의 무서움도 있었다.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충격을 줬던 것은 교수님이 제자와 나눈 대화 내용이었다. 시간이 흘러 중간고사 시즌이 됐을 쯤, 당시 교수님은 한 제자와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면서 제자가 다니는 회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셨다고 했다. 제자는 교수님에게 일 얘기를 하다가 요즘 회사에서 CS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고 한다. 이에 교수님은 제자의 말을 듣고 '코드를 GPT로 빠르게 써서 한번 빠르게 적용해버리면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조언을 줬다고 하셨다. 제자는 그 말을 듣고나서는 점심식사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노트북을 켰고, 약 3시간정도만에 (정확히 3시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루가 안 걸리는 시간이라고 언급하셨던 걸로 기억난다) GPT를 활용해 챗봇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제자가 일하는 회사가 스타트업이었는지 대기업이었는지 기업 규모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제자의 결과물이 놀라운 속도로, 속전속결로 적용되었다. 말도 안되는 기간 내에 자동 CS 응대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교수님은 이 사례를 언급하면서 ‘아마 그 친구 때문에 고객센터에서 전화받으시는 3명의 일자리가 3시간만에 사라진거 아닐까싶네요.' 라고 첨언하셨다. 이런 말을 하시는 교수님께서도 어안이 벙벙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이후로 나는 내 진로 고민에 있어 인공지능, 기술과 최대한 가까워야 하겠다는 고민을 진지하게 시작했다.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핀테크 회사서 UX 총괄로 근무하고 계시는 시각디자인학과 선배가 학교에 찾아와, 선배님이 꿈꾸는 장기적인 목표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약 3,4년 정도 전에 선배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디자인 과정에 있어 불필요한 업무 시간을 줄이기 위해 Framer라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다. 이에 디자인 방식이 전부 자동화된 바람에 디자이너의 역할이 완전 바뀌었다. 중간에 일을 거쳐서 하던 개발자들이 사라지고, 디자이너가 개발의 영역에 발을 걸치게 되었다. 즉, 이젠 더 이상 형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당시 선배가 앞에서 했던 말을 불완전한 기억을 되살려 인용하자면 이러하다:


‘디자이너'의 정의를 바꾸고 싶고, 앞으로 계속 바뀔 것이다. 옛날에는 ‘컴퓨터'라는 단어가 우주선을 발사할 때 쓰는 숫자를 계산하는 직원들의 직무명이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컴퓨터는 직무명이 아닌 기계의 이름이다. 디자이너라는 직무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디자이너들도 ‘디자이너'라는 직무명으로 일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미래는 그러한 디자이너들이 다 사라지고 다른 것으로 불리우는 세상이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지금 아는 개념의 디자이너들이 미래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선배의 말을 정확히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이러한 내용을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 모든 직무가 사라지느냐,

그건 아닐테다. 새로운 직무가 등장할테다.


   이제 이 글의 제목에 맞도록 다시. 생각을 바꿔보려고 한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았다. 다만 효율적인 업무 방식에 혈안된 고성과자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즉, 인간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은거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했다고 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AI로 경영하라> 라는 책에서 등장한 개념을 잠시 언급하려고 한다. 책의 5장에서는 인공지능 전문가와의 협업, 그리고 퍼플피플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책에서 말하는 퍼플 피플이란 데이터 통역가로서, 비 IT, 통계, 컴퓨터 출신의 실무자들에게 도메인 지식과 연결된 데이터 분석 결과를 전달해주는 역할로서 소개되었다. 사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인공지능 개발자가 아니라 '퍼플 피플'이라고 봐야 마땅하다고 느낀다. 퍼플 피플은 기존 쌓아온 경력과 도메인에 대한 능력을 기반으로 단순 반복적이고 비효율 적인 것을 해결해 효율을 높히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개발자가 고객 문의 관련 문제를 이해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순식간에,인공지능 기반으로 만들어내는 사례. 형태를 다듬는 것으로 알려진 디자이너가 마케터와 개발자의 영역을 침범하며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비즈니스적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생각해보면본인이 본래 가진 지식을 새로운 기술과 결합해 내는 사람들이다.


    두 사례의 주인공들은 모두 기업 내에서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을 높히는 중추적인 고성과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고성과자들의 능력치를 평가절하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러한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이러한 경향이 이어진다면 실제로 사라지는 일자리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교수님의 제자 사례를 다시 생각해보자. CS 인력을 전면적으로 감축해 모든 상담사가 사라진다면, 제품이나 서비스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한 사용자는 맥락을 설명하고 상황에 맞는 보상을 협의할 창구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기업은 앞으로 이러한 필수 인력에 대한 의사결정에 주목할 것이다. 인력은 줄어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남아야 하는 CS 담당자는 몇 명이고, 그들은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지 정량, 정성적으로 인사고과를 판단할 수 있는 직무 채용 기준이나 운영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인 CS 담당자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능동적으로 판단 / 분석하고 효율화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 해결책을 낼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될 것이다. 최근 CS 분야에, CX라는 키워드를 중점으로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이를 반영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고객의 의견을 단순히 듣고 결과를 메모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대화 내용 내의 단어 사용 빈도를 알아보는 역량. 키워드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고객 응대 방식에 대한 문제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 기간별로 어떤 제품에 대한 문의가 많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역량, 등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여기까지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직무가 사라진다기보단, 요구사항이 달라진게 아닐까? 단순 반복 업무가 많던 CS 분야에 데이터를 기반 분석 역량이 합쳐진 정도 아닐까? 개인적 측면에서 본다면 CS 상담원으로서 실무를 진행하면서도 비용은 줄이고, 효율은 높힐 수 있는 중추적 고성과자로서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닐까?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런 말도 안되는 실무자가 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서점에 가면 널린 것이 좋은 책들이며, 무료 유튜브 영상부터 유료 온라인 강의 플랫폼까지 정보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마음만 먹으면 고성과자가 되기 위한 발판을 쌓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리고 대화형 인공지능들을 총체적으로 활용한다면 이러한 역량을 학습하는 데에 있어서, 훌륭한 교수님까지 한 명 모시게 되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똑똑해기지 참 쉬워진 세상이다. 


    모든 사람이 퍼플피플이 된다던가, 모든 사람의 직무가 대체될 것 같다는 디스토피아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 더 똑똑한 누군가가 직무에서의 비효율 없애려는 순간부터 직무의 존속은 흔들릴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속도가 전에 없을 정도로 빠르다. 공부가 중요해진 세상이 왔다고 느낀다. 내가 무엇을 공헌할 수 있는지 깊게 고민하고 무서워서 혹은 어려워서 피해왔던, 혹은 안다고 착각해왔던 기초적인 지식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인공지능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잘하던 것들을 다시 한번 닦아보고, 구멍을 채우거나, 더 쌓을 것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같다. 즉, 나의 강점을 더 키우기 위한 공부해야하는 세상이라고 느낀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도 새로운 기술이 나올때마다 벌벌 떤다. 그러나 이 불안을 풀기 위해 내 강점을 찾는 노력을 병행하려 한다.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의자를 1cm 당기는 노력을 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