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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마이 Sep 16. 2024

어느 겁쟁이의 독백

룩백 영화 리뷰 (스포 주의)

룩백은 아끼고 사랑하던 개인이 죽었을 때의 태도를 보여주는 영화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는 한 시간 내내 나는 울었다. 빈 4컷 만화 종이를 작업 책상 앞에 붙이고 열심히 저녁까지 일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곤 마음을 단단히 다잡으며 나왔다. 그 장면은 내가 21살 때 다짐한 마음과 맞닿아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랑님의 삶과 잠과 언니와 나라는 노래 가사를 곱씹는 날들이 있다.


언니 사람들은 언니의 삶이 안타깝고들 말해
10년 20년 뒤였다면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을까

이랑의 <삶과 잠과 언니와 나> 가사 중 발췌


좀 더 시간이 흘러서 생을 달리했다면 사람들이 언니의 시간을 안 안타까워 했을까 하는 질문. 죽음이 그렇게 멀지 않은 나이가 된다면 죽음이 그리 슬픈 일이 아닐 수도 있는건가 하는 질문이다. 사실 모든 사람은 죽음과 가깝게 살고 있다. 우스갯 소리로 스윙스가 “저 이거 당장 끝내고 계단 내려가다가 머리 깨져 죽을 수도 있어요”라고 했던 문장은 꽤나 묵직한 사실이다. 우린 내일, 아니 지금이라도 잘 걸어가다가 순식간에 죽을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것은 생각보다 나이와 국적과 시대를 떠나서 우리와 가깝게 붙어있다. 사회의 제도는, 조직의 문화는, 개인의 관계는 모두 죽음을 체감하는 데에서 우리를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 놓으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절대 잊으면 안된다. 우리는 모두 결국 언젠간 죽는다.


다른 세대와 국가의 20대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20대를 보낸 나는 삶에서 꽤 많은 죽음을 간접적으로 겪었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게도 직접적으로 겪는 일이 많지는 않은 순탄한 삶이었으나,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순간들이 꽤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수학여행을 가던 내 또래의 친구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나랑 비슷한 나이에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 분이 힘들어서. 멋지고 찬란한 모습으로 놀러나갔던 또래 친구들이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이러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무겁다. 그리고 마음 속에 알게모를 부채가 쌓인다. 학교 캠퍼스에서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추모를 했던 날을 기억한다. 추모하러 가던 그 날은 바람도 불었고, 하늘엔 구름도 한 점 없었던 것 같다. 캠퍼스의 많은 친구들은 까르르 웃으며 재잘재잘 웃고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있다보면 참 슬펐다. 그 친구들이 살아있었더라면 그 풍경 중에 한 명으로 존재했을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참 슬펐다. 그렇게 걸어 올라간 당시 우리 대학 1층 로비 추모관에서, 나는 그들이 살지 못한 몫을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 내용이 꽤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박혀있는 것 같다. 군대에서도 일면식 없는 다른 부서의 병사분이 생을 달리했을 때에 비슷한 다짐을 했다. 다른 사건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다짐을 했다. 이러한 다짐들이 쌓이다보면 내 삶의 무게를 다시금 체감한다. 살아있다는 그 사실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러나 보통은 그렇지 못하다. 되던 일이 잘 안풀려서,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안해서, 누군가와의 관계가 쉬이 풀리지 않아서, 나는 상당수의 시간을 산다는 것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


아니, 다르게 생각하면 이것 마저도 생에 최선을 다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슬픈 일이 있을 땐 온 세상이 무너져라 목 놓아 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쁜 일이 있을 땐 세상 그 누구보다 크게 웃고 그 기쁨을 만끽해야 한다. 화나는 일이 있을 땐 마치 그 화가 세상의 모든 부조리인양 화를 내야한다. 내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할 기회가 있을 땐 온 몸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 다물고 싸워야 한다. 그러다가 지쳐서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땐 다시 아름다운 것들을 음미하면서 최선을 다한 나를 으스러지게 안아줘야한다. 이런 모습들이 최대한 밀도있게 모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 것이 사라진 친구들의 몫까지 살아가는 부채를 갚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런 삶의 방식은 본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본인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매번 다시금 상기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줬으면 한다.


본인이 시력을 갖고 있다면 좋은 것들을 많이 보길 바란다. 본인이 청력을 갖고 있다면 좋은 것들을 많이 듣길 바란다. 본인이 목소리를 갖고 있다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길 바란다. 본인이 마음을 갖고 있다면 좋은 마음을 많이 갖길 바란다. 그런 노력들이 모여 한 개인을 이루고 관계를 이루고 조직을 이루고 사회를 이뤘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단순한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서 어렵다고도 생각한다.


다시 한번 고백하건데, 이렇게 생각을 글을 써내려 놓고서는 결국 삶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날들이 켜켜이 쌓인다. 쌓았다. 쌓였다. 타인의 몫에 대한 부채가 쌓였다. 그 부채를 갚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이 적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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