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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마이 Oct 07. 2024

아무도 안 써본 제품 가격 정하기

프라이싱 방법론 사용기 (1)

<이전 편 보러가기>

1편: 그럴싸한 결과물이 아닌 Impact 만들기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뒤, 그에 대한 응당한 보상을 주는건 쉽지 않은 문제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아니... 도움을 주는 '한국인'이라면 보통은 '어휴 ㅎㅎ 아무 것도 안 주셔도 돼요, 그냥 도와드리는 건데요 뭐'라고 하며 손사레칠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손에 억지로 뭐라도 쥐어주면 냉큼 받는다는게 정론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은 이 지점이 어렵다. 도움을 받았으니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게 너무 적으면 도움의 크기를 과소평가한 것 같고, 너무 크면 오히려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 사람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역치는 다르겠으나, 어느 정도 도움을 주고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딜레마다.


내 아이디어의 문제: 청춘 고민을 들어준 대가로 돈을 내게 만들어야 한다.

살다보면 도움을 받은 다음에, "대놓고" 돈을 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일상 속에서 꽤 빈번하게 나타나는 상호작용의 종류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도움은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그래서 밥, 커피 같은 무언가로 대체되기가 일쑤다. 막말로, 선후배나 동료에게 도움을 주고 나서 '어휴 아닙니다,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ㅎㅎ 자 그럼 비용은 13,720원 입니다' 라고 하며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를 면전에 들이민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니 있으면 안된다. 그런 적이 있다면 본인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도움을 받는 입장에선,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19,900원 계좌이체 해드리겠습니다!'라고 한 적도 없을 것이다. 도움이 될 부분이 명확하며 꽤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통 도움에 대한 보상을 음식, 재화,  행동 같은 무언가로 대신 치환해서 준다.

     다만 변호사, 회계사, 의사 같은 전문인들에게 전문적 조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좀 다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접근성도 떨어지고, 자칫하면 내 인생을 뒤바꿀 수도 있다.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는 내 목숨까지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의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들의 도움을 금액으로 환산해 지불해야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의사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은 뒤, 수납처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얹어놓고 쌩 도망가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부분들은 사실상 '도움'의 영역을 넘어 '진찰', '상담', '문의'라는 단어로 바뀌어 사용되며,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찰 가격도 존재한다.

    여기서부터 어려움이 발생한다.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선배 대학생'이 '후배 대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그걸 금액으로 치환해야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게 사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정도도 아니고... 가장 큰 전제를 생각해보면 대학생들은 돈이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것들에 대해 돈을 주고 받는 것 자체가 생소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일상적인 소비와 동떨어져 있다. 전문가라면 모를까, 선배의 조언을 듣고 다짜고짜 돈을 내라니, 아이디어를 푸는 문제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접근법이 있다.

당신이 세제를 사러 마트에 갔다고 가정해보자. 세제를 사용해서 빨래를 하면 당신의 옷은 뽀송뽀송해지고 향긋한 냄새가 나게 된다. 마트에 간 당신은 이런 저런 세제를 살펴보면서, '어떤 향'을 풍기는지 보고, '어떤 세정 효과'가 있는지, '어떤 브랜드'인지를 총체적으로 고민한다. 결국 마지막으로 당신은 세제 A를 9,000원에 구매한다.

    그럼 반대로 세제의 입장에서 당신을 관찰해보자. 세제 A는 진열대에 앉아 이리 저리 둘러보는 당신에게 속삭인다. '저는 라벤더 향이 나고, 당신의 옷을 새하얗게 만들어주는 전국민이 사랑하는 세제입니다 그리고 제 도움을 받고 싶다면 9,000원만 주세요' 라고.

    비단 세제만 그럴까? 음식도 마찬가지다. '저는 바삭바삭한 튀김옷과 부드러운 닭살을 가진 음식으로서, 먹고난 뒤의 포만감이 뛰어난 치킨입니다. 20,000원만 주세요'라든가 '저는 잠이 잘 깨고, 목마름도 해결할 수 있는 커피입니다. 4,500원만 주세요' 라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이러한 맥락은 굉장히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러한 큰 힌트를 하나 얻을 수 있다. 가격이라는 것은 결국 화폐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주관적으로 지각된 '가치'에 대한 값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 앞서 설명했던 내 아이디어의 사례에서 '도움'이라고 표현했던 것들을 '가치'로 치환해 생각해보자. '선배 대학생'이 '후배 대학생'에게 줄 수 있는 '가치'는?

<당신의 대학 공부 방향에 대한 불안을 잠재워드리고, 대략적인 로드맵을 그려드립니다>로 정리된다. 그리고 나서 이 가치를 '000원만 주세요'라는 부분으로 치환해 가격을 정하면 된다. 생각이 여기까지 하다보면 문제가 명쾌하게 풀린다. 그러나 더 쪼개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가치라는 것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이미 비슷한 가치를 주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이쯤에서 금액으로 환산 가능한 가치들에 대한 분석 자료, 프라이싱 전문가 김계숙 교수님께서 설명했던 자료, 경제학적 비용을 총체적으로 언급하기 좋은 시점이라 생각된다.


경제적 비용과,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치를 살펴보기

좌측은 경제적 비용을 살펴보고, 우측은 가치를 살펴본다.


뭔가 발표하려고 만든 장표인데, 사실 이 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전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 자체로서는 쉽게 잘 정리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미리 몇 가지 단어들을 살펴보고나서 다시 표를 살펴본다면 그럴싸한 그림으로 변한다. 지금부터 설명해보겠다.



준거가치: 원래 ~정도 하잖아!

예를 들면 이런거다. 내가 세제를 사러 갔는데 어떤 미친 회사가 100만 원짜리 세제를 내놓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세제는 만 원인데, 100만 원짜리 물건을 보는 순간 혈압이 오르고, 한국소비자원에 전화를 하려는 충동이 샘솟을 것이다. 이게 바로 준거가치다. 내 머릿속에 있는 그 만 원이라는 금액 때문에 우리는 백 만원짜리 세제를 보고 혀를 차게 된다.


긍정적인 차별가치: 이 정도는 더 낼 수 있지!

100만 원짜리 세제를 보며 혀를 끌끌 차다가 매대 옆 제품을 보게 되었다. 12,000원짜리 세제가 놓여져 있다. 표백효과가 2배라고 한다. 나는 원래 만 원 정도 주고 사는 물건인데 2천 원 정도 더 주면 2배의 표백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이건 2천 원을 더 줄만 하군! 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게 바로 긍정적인 차별가치다.


부정적인 차별가치: 근데 이미 더 싼 옵션이 있는데?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집 세탁기는 기가막힌 최첨단 세탁기라서 자동으로 표백을 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2천 원을 더 줄 바에 그냥 세제 없이 세탁을 돌리는게 낫다! 그러면 나는 굳이 2천 원을 더 내고 세제를 살 필요가 없다.


이 세 가지 개념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면 대략적으로 내가 팔 물건이 얼마가 적당한지 감을 잡게 된다. 그 것이 바로 총 경제적 가치이다. 사실 이러한 결과를 '금액'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어떤 '가치'를 주기 때문에 이러한 금액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아무쪼록 이 이후에는 서비스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여러 경제학시간에 배웠던 비용에 대한 개념을 응용해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암묵적 비용: 불안 / 불만 / 내 시간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는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불만과 불안이 쌓인다. 이러한 심리적 요소는 비용을 지불하게되는 동력이기도 하고, 그 비용의 가치를 산정할 때 영향을 줄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 본인의 학과에 대한 불안이나 불만이 클 수록 높은 비용을 지불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학과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지 못하거나 다른 분야의 것을 배우는 데에 시간을 쓸 테니 이러한 부분까지 비용으로 산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포함하였다.


회계적비용: 커피 한 잔부터 온라인 강의까지

내가 궁금해하는 분야의 사람 혹은 친구에게 물어볼 때는 최소한 커피 한 잔의 값을 낼 것이라 생각했다. 더 능동적으로 이를 해결하고싶어하는 경우 유로로 온라인 강의를 결제하는 경우도 자주 봤으니, 이 또한도 비용을 고려할 때 살펴볼 요소이다. 커피 값은 약 4500원, 온라인 강의는 약 30만 원 정도 할 테니 이 정도 금액 반위 안에서 생각해보자고 하고 생각을 멈췄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그럴싸한 보고서 한 장 쓰고 끝나버릴 뻔 했다)


자 이제 다시 현실로. 학과에 대한 고민이 있는 대학생들의 머릿속을 아주 짧게 나마 잠시 들여다보자. 


 (1) 학과에 대한 불안이 커진다. 

 "아 내가 다니는 학과 왜이렇게 마음에 안 들지?"

"이거 배우면 나중에 뭐 해먹고 살지?"


(2) 정보를 찾는다.

"다른 과 애들은 졸업하고 뭐하려나"

"배우고 싶은 게 있긴 한데...학교 밖에서 배우려면 어떻게 하지?"

"우리 학교에서 이런걸 알려주는 학과가 있나? 아니면 교양이라도 있나?"


(3) 시간을 쏟는다.

"전공 과제는 대충 하고 주말에 내가 배우고 싶은걸 혼자 배울래"

"잠깐 휴학하면 되지 않을까? 온라인 강의도 듣고 학원도 다니면서 배워볼래"


아, 이제 드디어 복잡다난한 생각이 한 눈에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들도 산정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금액을 통해 고객에게 가치를 침투할지도 알게 됐다! 이제 다시 위의 표를 살펴보면 그 그림이 한 눈에 들어올 것이다. 







본격적인 리서치의 서막.


제가 미쳤다고 그 돈 주고 삽니까? vs 너무 싸서 의심스러운데요?

그럼 이제 대략적인 범위를 알았으니 우리 서비스를 설명해준 다음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거라고 보시나요?‘ 라고 대놓고 물어볼 시간이다. 생각만해도 눈 앞이 캄캄하고 심장이 벌렁거린다. 이러한 불안을 덜기 위해 앞선 논리를 통해 대략 4500원에서 30만 원 사이의 가격이 적정할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이건 사실...정보가 없다고 봐야한다. 마치 어느 누군가가 수 많은 자료를 뒤져 종합해봤을 때 이병헌 키가 160cm 에서 180cm 사이일 것이라는 분석 결론을 내놓았던 것과 다를바가 없다. 

키가 160에서 180사이라... 정말 쓸모 없는 정보다. 마치 내일은 높은 확률로 해가 뜬다는 느낌.


가만히 생각해보면 멘토링 한 번에 30만 원을 내는 건 택도 없다. 워렌버핏이랑 점심 식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 혹시라도 정말 절박한 누군가가 높은 지불용의를 가질진 몰라도, 지불능력을 초과하는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 보여진다. 따라서 30만 원은 현재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기획할 때 추구할 수 있는 최대 상한선 정도가 될 순 있겠다. 그리고 최저가인 4,500원은...너무 싸다. 당장 이 돈 받고 친구들끼리 멘토링하라고 하면 받는 사람은 '싼 값이니까 많이 물어봐야지" 라고 하고 들어올테고, 멘토는 "시간 아까우니까 빨리 끝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대충 빨리 끝내고 집에 갈 수도 있다. 뭐랄까, 끔찍한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기획한다면 나는 교내에서 진짜 유명한 왕따가 될 게 뻔했다. 

그 때 혜성처럼 등장한 김계숙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 WTP 방법론, 그 중에서도 Open-line Pricing 방법론에 대해서 배웠다. WTP 방법론...뭔가 WTF같은 느낌을 주는 단어지만, Willing To Pay (지불용의)를 조사하는 방법론의 약자이며, Open-Line Pricing의 경우 아직  출시되지 않은 상품의 가격 범위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론이다. 대략적인 개념은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통해 배웠고, 구체적인 분석 방법은 아래의 영상을 적극적으로 참고했다. 

꼭 이런 황금같은 영상들의 조회수는 1000도 안 넘는다. 뭔가 선구자가 된 기분이기도 한 동시에 아무도 안 쓰는 방법론 쓰는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고 그렇다..


근데 잠깐. 여기서 은근슬쩍 넘어갈 뻔 했는데, 영리한 누군가는 이 쯤에서 나에게 공격을 할 것이다. "아직 출시된 제품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조사한겁니까? 지금 저 놀리시는거죠?" 아니다. 나는 당신을 놀릴 생각이 없다. 나도 이 지점에서 울뻔했다. 출시되지 않은 제품을 보여주는 것... 실물이 있다면 물건 사진이라도 보여줄텐데 멘토링 서비스는 그딴 거 없다. 이럴 때 바로 토스 이승건 PO님의 초기 창업 당시 설화를 조심히 꺼내본다. 

17분 00초부터 보면 된다.


PO 세션을 수십 수백번 돌려보면서 눈물을 흘린 나는, 이승건 대표님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상세페이지를 만들어서 제품이 있는 것 처럼 설명하기. 사실, 모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제품을 기획할 당시, 수요를 조사하기 위해 살짝 써봤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경험도 있었다! 그렇게 설문폼을 활용해 제품이 있는 것 처럼 반쯤 설명하는 동시에, Open Line pricing 조사를 병행할 수 있도록 설문지를 구성했다. 아래는 설문지에 들어간 실제 내용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다. 

목업때문에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그냥 구글폼에 이미지 얹어서 진행했다.  
상품들의 경우, 실제 제공할 가치를 줄줄 나열하는 이미지로 만들어 배포했다.  
설문에서는 최소금액, 최대금액을 묻는 형식으로 가격대를 조사했다.


여기까지 뭔가 만들어낸 우리는 우쭐해졌다. "이거 그럴듯한 설문 결과가 나오겠구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준마이의 분노가 시작된다. "이거 또 그럴듯한 설문 조사만 하고 끝내는 거잖아? 실제 고객한테 가치를 제공하고 나서 금액을 알아야 진짜 조사 아니야?"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을 좋아하는 덕룡은, 준마이의 말을 듣고 나서 "밖에 나가보자!"고 소리치며, 또 다른 프라이싱 관련 조사를 병행하기로 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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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그럴싸한 결과물이 아닌 Impact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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