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디 Jan 04. 2020

왜 그리도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2020년의 약속


2020년 1월 4일.
나이를 한살 더 먹었다.

36이라는 나이를 떠올리면 어색하지만 또 덤덤하기도 하다. 나이 먹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이니 나는 이를 기분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살 더 먹고 얼마나 더 멋있어지려나 기대 돼”

옆에서 푸념하는 친구에게 웃자고 뻔뻔하게 하는 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서른여섯살의 결혼하지 않은 여자’ 대해 사회가 갖고 있는 흔한 편견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내 방향대로 삶을 살아가는 건 기대 되고 즐겁기까지 한 일이니까. ‘이 나이 때쯤엔 이런걸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고 산 이후 나이 먹는게 두렵지 않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단단함과 지혜는 쌓여가고 생각은 점점 더 자유로워지니 기대가 될 수 밖에. 건강과 체력을 잘 관리해서 작년보다 아름다운 내가 되어야지, 그리고 올해 하나하나 실현해 나갈 일들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몸상태는 정 반대다.
1년 중 가장 싫어하는 12월 한달을 보내고 나서 새해를 기똥차게 시작해 나갈 추진력은 고갈되어 있었다. 12월의 송년회, 각종 행사들을 지독히 싫어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고 ‘올해 휴가는 무조건 12월이다’ 라고 벌써 생각해 두었다.

어찌어찌 끌고 온 몸은 해방감을 느끼며 요 며칠 계속 쉬고 싶어 했다. 어제는 반차를 내고 집에 일찍 들어와 낮잠을 4시간이나 잤는데 밤사이 8시간을 또 꼬박 자고 일어났다.


눈을 뜨니 아침 8시반, ‘탐나는 tv’를 켠다. 거실에 티비가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 나는, 안경을 찾아 낀 채로 침대에 그대로 누워 wavve 어플을 켜서 실시간 방송을 챙겨 보기 시작했다.

내가 나오는 방송을 보는 건 다소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대게 본인에 대해선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고 하지만 적어도 방송에 있어서 만큼은 충분히 객관적일 수 있다. 녹화를 하면서도 ‘이 부분은 어떻게 나올지 걱정인데’ 했던 부분이 지나가는 순간엔 호흡을 잠깐 멈추고 지켜본다. 화면 속의 나를 보며 저때의 컨디션, 생각, 기분, 발음,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떠오른다.

가장 먼저 ‘오늘은 화면에 꽤 잘 나오네’ 라고 생각했다. 이건 왠 나르시시트인가 싶겠지만 요 며칠 탄수화물을 절제한 효과를 가늠해 본 것이다. 운동량을 더 늘리는 게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는 식단에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화면 속 하얀 원피스를 차려 입고 패널들의 말을 경청하며 열심히 메모하는 그와 동일 인물인 나는, 지금 위 아래가 다른 수면 잠옷을 입고 머리는 앞머리까지 함께 질끈 넘겨 똥머리를 하고 누워 있는 중이었다. 이것이 현실.

방송에선 <사람이 좋다>의 ‘티파니 영’ 편이 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소녀시대의 그 티파니. 그는 미국에서 ‘티파니 영’ 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중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방송을 되짚어보는 비평 프로그램이므로 평론가는 그 방송 중 인상깊었던 두 씬을 소개했다.


티파니 영의 모습을 본 나는 몇 차례 놀라는 마음이었는데, 먼저 그 화려했던 소녀시대가 아닌 신인의 모습으로 작은 무대에서 진심을 다 해 기뻐하고 공연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진심을 담아 전하는 성숙한 모습 에서였다.

티파니 영은 스스로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시간, 늘 소녀여야 했고 하이톤에 밝은 모습을 보여야 했던 시간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우울증이 생겼고 그런 굴레가 싫어 빨리 시간이 흘렀으면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언니가 건넨 한마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를 인정하고 나서 비로소 괜찮아 졌다고 말했다.


그렇다. 내 생각과 기분을 억지로 꾸미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해방감을 느끼는지! 대중이 유난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걸그룹이 아닌, 그간의 내공을 바탕으로 다시 신인으로 돌아가 본인의 길을 주체적으로 찾아가는 그의 모습은 확실히 단단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다른 평론가는 아이돌들이 고작 30살이 되어서 많은 인생을 살아버린 듯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30살. 혹은 또 다른 의미로 30살이 되기 전에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자유롭게 꿈꾸고 도전해도 얼마든지 괜찮을 청춘들을 옭아매기도 한다. 정말 고작 30살에 말이다.

그러니 서른여섯의 언니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새해가 되었으니 ‘이제는 의젓하게’ ‘이 나이에 뭘 그런걸’ 따위 생각지 말자고.

나와 지내온 시간 만큼 나를 더 잘 알게 되었으니 이제 정말 하고 싶은 걸 더 자신있게 해 나가자고.
계속 이루고 계속 꿈꾸자고.
나이와 함께 성숙해 져야 할 건 배려심 뿐이라고.
우리의 2020년은 그렇게 꼭 약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