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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an 07. 2020

완벽한 순간이 오리라 믿었다


많은 영화는 어김없이 주인공들이 고난을 극복한 후 행복을 맞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서 끝이 난다.
이후에 생략되는 지지고 볶으며 사는 이야기가 실제 삶의 대부분이지만 드라마가 되지 않는 부분은 러닝타임에 끼어 들 여지가 없으니 관객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지금보다 어렸을 땐, 영화에서처럼 내 인생도 가장 극적인 그 ‘어느 순간’을 맞으리라 믿었다.
완벽한 순간을 맞이한 이후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상상할 수도, 상상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일단 완벽해 지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어린 임현주가 꿈꾸는 완벽한 순간이란 지금의 불완전함을 극복한 후 많은 것들이 안정감에 딱 도달해 평온해지는 상태를 의미했다.
일도, 사람도, 부도, 명예도, 지혜도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진짜 어른이 되는 그 상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신분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불안함이 없는 상태.
고민과 불안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는 상태.
거기에 도달하면 이후의 인생은 평온과 행복으로 가득차겠지, 막연히 생각했다.

지금의 불안은 내가 완벽한 삶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며, 지금의 행복은 완벽한 삶의 행복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 여겼다. 그러니 부족하고 어설픈 내가 완벽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건 당연했고 시간의 대부분은 목표를 위해 설정 되었다.

목표 자체는 너무나 단순했다. 지상파에 합격하는 것. 아나운서로서의 자아실현과 신분상의 안정성을 모두 갖기 위한 확실한 길은 지상파 3사의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문은 너무나 좁고 좁았다. 타고난 기질과 운으로 단번에 합격을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인생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느끼며 이후 몇년 간 이직의 역사를 썼다.

말이 이직이지, 경력직 입사가 거의 없는 이 바닥에선 퇴사하고 다시 수백대 일의 시험을 통과한 후 신입사원이 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내 지난 직장생활의 8할이 막내의 삶이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매 합격의 순간은 언제나 행복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입사한 케이블 방송사에서도, 지역 방송사에서도, 새롭게 개국한 방송사에서도 내가 꿈꾸던 완벽한 삶과는 몇 발자국 떨어진 듯 부족하게 느껴졌다.

불편하고 부당한 순간이나, 이해하기 힘든 동료나 선배를 볼 때 그것을 끌어안고 해결하기 보다는 ‘그러니 나는 이곳을 어서 떠나자’는 다른 결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정말이지 이직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으니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다른 기회를 찾아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믿을 구석 없는 직장인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믿는 구석이 되어 주었다.

그러니 나는 당시 온전히 ‘현재’를 살지 못했다.
언제나 잠시 머무는 임시의 삶이었다.
퇴근을 하고 나면 다음 커리어를 위해 준비하며 늘 한 발은 미래를 향해 뻗어 있었다.
두 발을 온전히 디딛고 서서 당시의 행복을 보지도, 누리지도 못했다.
돌아보면 그것이 너무나 아쉽다.
그때 함께 하던 사람들과 더 온전히 지지고 볶고 할 것을...

그렇게 나의 20대 중후반은 취업과 이직의 시간으로 점철되었다. 그리고 29살에, 꿈꾸던 지상파의 한 방송국에 입사하게 된다.

합격전화를 받던 그 날이 기억난다. 그날은 무척 바쁜 날이었는데, 최종 면접을 보고 녹화장에 들러 내색하지 않고 프로그램 녹화를 잘 마쳤다. 그리고 저녁에 회사로 돌아가 스포츠뉴스 생방을 하기 전, 근처 카페에 잠시 앉아 합격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6시쯤에 통상 전화가 온다고 했는데... 6시 1분, 2분...조금 초조해졌지만 나는 왠지 이번에는 합격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기에 테이블 위의 핸드폰을 가만히 쳐다보고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어쩌면 몇 년을 기다리던 전화 였는데, 왜인지 차분하고도 덤덤한 기분이 들었다. 일부러 한 톤 높여 목소리를 과장해 ‘감사합니다’ 외쳤던 것 같다. 상상 속의 장면은 이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뭣 모를 나이를 지나서였는지, 아니면 이제 할만큼 해서 후회가 없을 때쯤 찾아온 탓인지, 어쨌든 당시 나는 기쁨의 호들갑보다는 깊고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내일부터는 어제와는 다른 안정감을 느끼며 인생을 살아가게 되겠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완벽을 꿈꾸던 이후의 삶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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