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순양 Nov 06. 2020

이집트의 일출 (7)

시나이산을 등반하다

아름다운 홍해를 끌어안은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그중에서도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2285m의 순례의 산.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시나이산의 정상에 올랐다.

일출을 보기 위해 밤늦게 시나이산으로 향하였다. 벤은 10명가량의 사람을 태우고 시나이산으로 3시간 동안 달렸고, 새벽 한시가량 등산은 시작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가로등 따위는 없었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가이드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척박한 돌산인 시나이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이집트의 날씨 답지 않게 너무도 추웠다. 그렇게 아름답다는 산의 풍경은 어둠 속에 갇혀 보이지 않고 그저 암흑뿐. 일행들과 함께 산을 올랐다. 결국 정상까지 힘겹게 올라와 일출을 기다리는 시간. 추운 날씨 탓에, 정상에 위치한 베두인들의 카페테리아에서 몸을 녹이며 기다렸다. 이 높은 곳에 카페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새벽부터 칠흑 같은 어둠을 헤집으며 정상에 올라 아침 해를 맞이하는 이 순간. 올라갈 때에는 어둠에 갇혀 보이지 않던 광활한 풍경이 아침 해의 찬란한 빛에 모습을 드러낼 때, 그 아름다움에 감정이 벅차오르기 시작하고 동시에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일출과 함께 나타난 녀석

이집트에 오기 전, 22살의 대학생답게 내 속에 풀어내고자 하는 고민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압도적인 시나이산의 자연 아래에서, 맨몸으로 나를 벗겨서 내던져본다. 나의 모든 고민이 덧없게 느껴지면서, 그동안의 내가 꼭꼭 감추어 놓았던 마음속의 짐들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나는 학교를 휴학한 23살 대학생이다.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여행을 떠나 글을 쓰고, 좋아하는 영상과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가도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하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다. 내가 나를 소개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언젠가 여행가가 될 것이라고. 지구 속에 살아가는 나인데,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엔 지구 한 바퀴는 돌아보고 떠나고 싶다.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사는 동네도 다 돌아보지 못하다는 게. 내 기준, 지구=동네이다.


여행가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가 있다. 20살, 네 명의 친구들이 모여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모아 한 달 동안 동남아 일주를 떠났었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배낭을 메고, 달랑 가이드북 한 권과 함께 발길이 닿는 대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 흔한 유심 하나 없이 책 한 권에 의존해 돌아다녔던 그 경험은 나에게 굵직한 청춘의 흔적으로 남았다.


그 경험을 주체하지 못해 오른쪽 팔에 그 순간의 나 자신을 새기기도 하였다. 가이드북은 우리의 열정만큼이나 뜨거웠던 나라 속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을 머금어 너덜너덜해졌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그 책을 보면, 그 시절 나의 열정과 그 설렜던 감정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진다. 그때의 나는 여행의 자유로운 매력에 빠졌고, 지구를 돌며 책을 쓰리라 다짐했었다.


그럼 여행을 떠나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인 나는 어떠할까. 현실에 타협하고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학생일 뿐 그 무엇도 아니게 느껴진다. 딜레마이다. 어느 순간 똑같은 일상 속의 나 자신을 돌아보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묻혀, 아무것도 아닌듯한 느낌이 든다.


현실에 타협한다는 기준이 무엇일까,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도 많게 느껴지기도 하고, 자격 조건을 위해 대외활동과 토익 공부를 하며 고생하는 사람들을 따라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유 모를 불안감이 항상 엄습한다. 내가 철이 없는 것일까 현실도 모르고 날뛰는 사회 맛도 못 본 애송이일 뿐인 걸까. 도대체 뭐가 성공한 인생이고 뭐가 철없는 애송인지 모르겠다.


어렵다. 한참을 고민하다 든 생각은, 나는 그저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지기’가 싫은 것. 밀려오는 파도처럼, 조류에 휩쓸려 자연스레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그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능동적인 주체로 ‘살아가고’ 싶다. 빠르게 흘러가는 청춘의 시간을 거스를 순 없겠지만, 나는 나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본다. 대학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이 순간도 여행인 걸로. 나아가 내 일상 자체가 여행인 거로. 세상을 내 마음의 풍경으로 담아내 보자.

태극기 수건이랍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했다. 당신들은 무엇을 느끼셨나요. 저는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에너지를, 떠오르는 찬란한 아침 해에 듬뿍 받아 갑니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인의 밤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