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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양 Aug 25. 2020

배낭을 메고 이집트로  (1)

"엄마, 인간은 물하고 친숙한 동물이래"

사전준비


여행을 떠난다. 엄마와 형, 그리고 나 셋이서 이집트로 약 40~50일 일정으로 가게 되었다. 요새는 이집트로 여행을 가는 한국인도 꽤 있는 듯하지만, 아직은 생소한 여행지이다. 주위에서 가족여행으로 이집트 장기여행을 간다고 하면, “왜 굳이 이집트를 가?” “거기 정말 위험하대” “가족여행으로 이집트를? 대단하다”라는 반응이 대다수이다. 또 치안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한다. 유명 여행 콘텐츠 크리에이터 ‘여락이들’을 통해 이집트는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영상에서 여락이들은, 이집트 다합으로 여행을 떠나 18만 원짜리 월세방을 구하고 집 안에서 나오는 바퀴벌레를 때려잡으며 밥을 해 먹고, 동물의 분변을 피하면서 길을 걸으며 고역을 겪는다. 그들은 왜 굳이 다합으로 떠났는가. 바로 이집트 다합의 아름다운 홍해에서 다이빙하기 위해서다. 다합에서는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다이빙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이집트를 ‘굳이’ 가려는 바로 그것이다. 프리다이빙을 배워보려 한다. 바닷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무작정 이집트 다합으로 여행지를 정해버렸다.


 여행지를 정하고 계획에 몰두하던 와중에 웬걸, 사건이 터졌다. 이집트 전 대통령이 재판 중 사망해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할 염려가 있단다. 또 알아보니까 2014년 2월 다합에서 약 140킬로 미터 떨어진 시나이반도 타바에서 한국 관광객이 탄 버스가 폭탄테러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합은 과거부터 치안이 불안정한 데다 외국인 밀집 지역이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대표적인 테러 타깃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외교부는 다합을 포함한 이집트 시나이반도 일대를 특별여행경보 지역으로 지정해 ‘즉시 대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다만 여행 금지 국가로는 지정이 되지 않아서 여행은 가능하다. 참 이건 여행을 가라는 건지 가지 말라는 건지.. 계획부터 험난한 여행이다. 또 이번 여행은 아버지는 일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시지만, 어머니와 형이 함께하는 가족여행인지라 이래저래 걱정이 정말 많이 된다.


어머니는 물을 무서워하신다. 나랑 형도 마찬가지지만, 어머니는 정말 말 그대로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수준이시다. 그런데 이번 여행의 목표는 프리다이빙 아이다2레벨 자격증 이수이다. (나는 가서 완벽적응하여 다이브 마스터까지 도전해야지) 산소통 없이 수심 16m로 잠수해야 한다. 솔직히 나도 두려운데 어머니는 어련하실까. 여행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버지와 다이빙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달래드리면서 계획을 짜느라 준비부터 진땀을 뺐다. 또 보기 좋은 영상과 사진을 남기기 위해 액션캠인 고프로도 구매하였다. 고프로를 다루는 방법과 촬영법을 공부하는데에도 정신이 없다. 아. 여행 준비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던가. 그래도 여행은 여행이다! 단어만 들어도 설레오는 이 감정은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여행작가를 꿈꾸는 나로서는 걱정 따위는 설렘을 이기지 못한다.  바다속에서 물고기처럼 자유로운 우리 가족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때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엄마, 인간은 물하고 친숙한 동물이래.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양수에 잠겨있음으로 원래 태초부터 물과 친하다고 하네. 그 때문에 물속에 잠수할 때엔, 두려움만 떨쳐내면 편안함을 느끼게 된대. 나는 엄마 배 속의 양수에 잠겨있었기 때문에 바닷속에 잠수해 있으면 엄마 품속에 있는 거나 다름없어. 엄마도 외할머니 품속 너무 따뜻하고 좋지 않았어?” 내가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정말 그럴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나지막이 엄마가 대답하셨다. 맞다, 그러지는 두고 봐야 아는 거다. 우리가 물속의 물고기와 친구가 될지, 고기밥이 될진 가봐야 알겠지. 유튜브에서 다이빙 후기나 더 찾아보고 와야겠다.


출국날


대망의 출국 날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우리 가족은 체크인을 시작하였다. 근데 여권이 안 보이네? 분명 가방에 넣은 거 같은데? 머리가 하얘져서 미친 듯이 온 짐을 다 뒤져서 겨우겨우 찾아내었다. 휴.. 이놈의 여권은 항상 내 골치를 썩인다. 작년 이맘때쯤, 베트남을 여행하고 귀국할 때였다. 2주간의 여행이 끝나고 베트남 출국심사를 통과하여 게이트 앞에서 여행을 돌아보며 심신의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내 비행기의 탑승 알림이 방송되었고, 몸을 일으키는데 여권이 없는 거다. 탑승권도 없는 거다. 아니 도대체 이놈이 어디로 솟았지? 정말이지 패닉상태가 왔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앞에 두고 타지를 못 한다. 곧바로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고 보안요원, 항공사 직원 등등 내 여권을 찾기 위해서 온 공항을 다 뒤지기 시작하였다.


 결국 찾지 못하고 비행기 이륙 시간은 5분 전으로 다가왔는데, 나는 비행기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아 이렇게 국제미아가 되는구나. 내 신분을 증명 할 수도 없고 돈도 없고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공포가 몸을 저며왔다. 바로 그때, 항공사 직원이 기지를 발휘하여 여권과 탑승권도 없이 나를 비행기에 그냥 타라고 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하였다. 뛰면서 항공사 직원이 영어로 나에게 소리쳤다. 한국에 도착하면 여권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하라고. 우리 공항에서 잃어버린 게 아니라고 하라고. 뭔 소린진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한국에 가고 봐야 하니까 나도 오케이!를 연발하며 탑승하였다. 타고나서 정신없는 상태로 생각해보니까, 잠깐 이거 항공법 위반 아닌가? 여권도 없이 한국에 입국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입국심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5시간 동안 자지도 못하고 불안에 떨며 비행하여 한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대 앞에서 어물쩍대며 심사를 받지 못하다가, 에라이 !


“어! 저 여권이 없어졌어요!!” 직원은 정체 모를 사무실로 날 데려갔고, 그 안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직원이 말하기를, “여기서 기다리세요. 당신의 신원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한국말을 잘하는 한국인을 사칭하는 외국인일 수도 있으니, 신원 파악을 해야 합니다.”

이 무슨 소리인가. 졸지에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되었다. 기분 참 오묘하다. 어쨌든 이런저런 절차로 나는 무사히(?)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나에게 여권은 그 뒤로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렇게 출국 전부터 여권 때문에 허둥대다니.. 그런 사건도 있었으면서.. 이집트에서는 여권을 속옷 속에 넣고 다녀야 할 판이다. 그렇게 체크인을 하고, 장시간의 비행과 경유 끝에, 드디어!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하였다. 몸이 너무너무 피곤한지라 카이로 공항에 도착 했을 때엔, 셋 다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짐을 찾고 이집트의 복잡한 교통 시스템 앞에 막혀 짜증이 날 대로 나 있는 상태에서 나는 어머니한테 상처가 되는 말을 뇌에서 필터링 없이 거쳐서 해버렸다. 카이로에서 다합으로 통하는 샴엘셰이크 공항까지 가는 국내선을 타고 가면서도 냉전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래도, 샴엘셰이크 공항에 도착 후에 우리 앞에 펼쳐진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이집트의 모습이 펼쳐지자, 자연스럽게 우리의 갈등은 나의 애교로 풀렸다.

눈 앞에 펼쳐진, 이집트의 풍경

여행은 혼자 가는 게 최고라고 하지만,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의 벅차오름과 눈 부시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나는 그 순간들을 우리 가족과 함께하고 싶기 때문에, (아버지가 오지 못하셔서 너무 아쉽다) 부모님이 나이가 더 드시기 전에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에.. 같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아름다운 순간들도 많겠지만, 서로 싸우기도 싸울 것이다. 어머니랑 내가 싸울 군번이 아니긴 하지만...이 낯선 타국에선 의지할 사람은 서로 밖에 없다. 어머니와 나, 형은 가족이기에 더 서로 배려하고, 맞춰 나아가는 법을 배우길 기대하며 우리의 이집트 여행기는 본격적으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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