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가 이집션
샴엘셰이크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다합으로 향했다. 기사와 간단한 통성명을 하고, 속도제한이 없는 도로에서 택시는 130킬로에 육박하는 엄청난 속도로 달렸고, 창밖에선 가슴이 뻥 뚫리는 황량한 바위산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렇게 복사 붙여넣기를 한 듯한 배경을 지나서 한 시간 정도 달리자, ‘welcome to dahab’ 이 눈에 보였다. 아. 드디어 도착이다. 도착 후, 한 달 동안 지낼 방을 구할 동안 머물 임시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 후, 본격적인 다합 생활을 위해 정보를 얻고자 우리가 등록한 프리다이브 샵, 아지트를 찾아갔다.
우리가 앞으로 프리다이빙을 배울 강사님과 간단한 인사를 하고, 강사님은 간단한 다합 생활 지식을 알려주셨다. 다합은, 크게 두 가지 공간으로 나뉜다. 다이빙을 즐길 수 있고, 아름다운 홍해를 끼고 음료와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밀집한 라이트하우스. 채소, 과일가게부터 정육점까지, 생필품들을 모아놓은 아쌀라마켓. 관건은 앞으로 한 달 동안 활동할, 이 두 거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컨디션 좋은 집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중개인을 통해 집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구해야 한다. 다합생활에서 가장 힘들다는 집 구하기. 다들 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열 군데 넘는 집을 돌아다니며 힘들게 방을 구한다고 한다. 바퀴벌레가 없고,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되며 깨끗하고 문제가 없는 가성비 좋은 집을 구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 될 거 같다. 좋은 집을 구해오라며 어머니는 숙소로 쉬러 들어가셨고, 형과 나는 우선 다합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집을 구해주는 유명한 중개인, 오스만과 컨택을 했다. 오스만 아저씨를 소개하자면, 수단에서 왔고 한국을 사랑하여 한국인을 상대로 무료로 집을 중개해주는 마음씨가 착한(?) 분이시다. 다합에서 집을 구하는 한국인들은 거의 오스만을 거쳐서 구한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인기쟁이이기 때문에,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아서 오스만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오스만 씨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셨고, 본격적으로 집 탐방이 시작되었다. 오스만 씨의 집 중개 방식은 정말 특이하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말도 없이 자기 혼자 막 출발한다. 그럼 우리는 그 뒤를 부랴부랴 쫒아간다. 조금 걸어가다가 누군가를 길에서 마주치고 거의 20~30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에게 오더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또 사람 좋은 웃음으로 레츠고를 말한다. 정말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중개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장장 4시간 동안 4군대의 집밖에 돌아보지 못했다. 그중 3시간은 오스만의 해찰 시간이었을 것이다.. 엄마. 좋은 집은 못 구할거 같아요.
장기간의 이동으로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돌아본 집중 괜찮은 곳을 골랐고, 계약은 체결되었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 집에 가보니 집주인은 달아준다던 에어컨은 달지도 않았고 미처 확인하지 못한 냉장고는 고장 나 있고 방에는 개미가 득실댔다. 집주인은 에어컨을 달아준다던 약속을 미루고만 있었다. 짜증이 부글부글 끓었다. 다합 한국인 여행 정보 단톡방에 이 사실을 알리자 달아준다 달아준다고 하다가 한 달이 지나간단 말을 들었다. 다합의 이집션들은 약속을 정말 안 지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장 이 집에서 나와서 환불받고자 연락을 받지 않는 오스만의 집으로 향했다.
아! 오스만은 핸드폰은 제쳐두고 집 뒷마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잠에서 깬 오스만은 우리의 상황을 듣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음료를 대접하며 더위를 식히라고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오스만은 자기 핸드폰이 고장 났다고 핸드폰을 고치고 온다며 10분만 기다리라며 우리를 덩그러니 자기 집에 놔두고 핸드폰을 고치러 갔다. 10분이 이리도 길었던가.. 오스만 씨는 3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정말 이곳 사람들의 약속개념은 밥을 말아 드신 건가? 또 짜증이 부글부글 끓었다. 3시간 후, 오스만은 자기 핸드폰이 고장 날 동안 26통의 부재중 전화가 왔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 웃음 앞에서 어찌할 방도를 몰라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방을 찾으러 떠났다. 그렇게 남아있는 몇 군데의 방 탐색을 마쳤는데도, 맘에 드는 방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스만 씨도 지친 듯 더 이상 방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오스만 씨는 5분만 기다리라면서 또 우리를 자기 집에 방치하고 집을 나섰다. 5분이 이리도 길었던가.. 날은 이미 깜깜해졌고 5분 안에 온다던 오스만은 1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정말... 시작부터 왜이리 험난한 것인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오스만이 돌아오면 한마디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오스만을 기다렸는데, 오스만은 양손 한가득 장을 봐서 돌아왔다. 오늘 하루 고생한 우리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단다. 아! 오스만 당신은 정말 밀당의 귀재네요. 마침 배가 너무 고팠던 우리는 한마디 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어진 지 오래고, 오스만의 저녁 식사를 기다렸다. 그 투박한 손으로 오스만은 환상적인 음식을 대접해주었다. 타지에서 맛보는 따뜻한 정에, 몸의 긴장이 풀린다. 오스만, 그는 정말 그가 해준 음식만큼 따뜻한 사람이었다.(약속개념은 정말 없지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오스만은 우리를 위해 집을 중개해주었고 마지막에 본 집은 우리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곤 우리의 짐을 픽업트럭에 올려준 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그는 떠났다.
오스만, 그는 이집트에 아무 연고가 없는 우리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고, 우리에게 타지에서의 따뜻한 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많이 허술하지만, 자기 일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의 여행에 앞으로도 큰 도움을 주었다) 책임감이라는 것은 가볍게 할 수 있는 말이면서도 참 그 무게는 무겁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오스만은 나에게 책임감이란 무엇인가를 몸소 느끼게 해주었다. 한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머나면 타지에서 나와 일면식도 없고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이라도, 그는 내 마음에 따뜻한 불을 밝혀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 또한 정을 쌓고 나누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 마음들이 모여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는 것. 여행은, 절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면서도, 또 다시 그 실망을 긍정으로 바꿔놓는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배워간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해질 무렵 바닷가 근처의 카페에서 읽었다. 책의 한 구절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다. 오늘을 정리해주었던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