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홍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목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보려한다. 아버지의 전화번호부엔 어머니는 ‘내 마음의 숲’ 이라 저장 되어있고, 우리 형은 ‘내 마음의 큰나무’ 나는 ‘내 마음의 작은나무’ 라고 저장되어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단톡방의 이름은 '숲과 나무'이다. 그렇기에, 숲과 나무는 우리 가족을 뜻한다. 나는 이 감성넘치는 아버지의 센스에 감명받아, 팔에 타투를 하나 새기기도 했다.
느티나무다. 아버지는 느티나무를 좋아하신다. 내 팔에 새겨진 작은 느티나무는 아버지 마음 속의 작은나무인 나를 뜻한다. 또, 아버지가 좋아하는 느티나무를 새긴 이유는, 아버지같은 느티나무로 자라나고 싶어하는 나의 소망을 담았다. 작은나무가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루길 기대하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방도 구했겠다, 아쌀라 마켓에 가서 장도 봐왔겠다, 이제 본격적인 다합 살이 시작이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프리다이빙 아이다2 자격증을 따러 왔다. 프리다이빙이란, 간략하게 얘기하면 산소통도 없이 숨을 참고 바다 밑 깊은 수심으로 잠수하며 즐기는 스포츠이다.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스노클링을 즐긴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산호나 거북이를 가까이서 보고 즐기기 위해 큰 숨을 들이쉬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프리다이빙이 시작된다고 한다. 갓난아기들은 단지 그 자체가 재미있어 물속에 있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우리가 숨을 참고 물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은, 인간 본연의 한 모습이라고 한다. 성인이 되어 프리다이빙을 배우는 것은 이런 잃어버린 본능을 되찾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다. 인간은 원래 물과 친숙한 동물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모든 걸 내려놓고 완전한 고요 속에서 순간에 집중하는 순간, 인간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매력이 나를 프리다이빙의 성지인 다합으로 이끌었다. 다이버들은 말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프리다이빙의 매력을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사람들은 흔히 프리다이버들을 스릴을 찾거나 무모한 모험을 일삼는 사람쯤으로 좋지 않게 얘기한다고. 어떤 사람들에겐 프리다이빙은 휴가 때 즐길 수 있는 한 가지의 재미있는 활동이지만, 이곳의 다이버들에게 프리다이빙은 삶의 한 방향이라고 한다. 과연 프리다이빙이 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우선 AIDI (association internationale pour le developpement de l’Apmee) 는 1992년에 설립된 국제무호흡 다이빙개발협회 이다. 우리가 이수할 아이다2 과정은 이 협회에서 일정 시험을 통과하면 인정해주는 일종의 프리다이빙 자격증이다. 아이다2의 통과기준은 이렇다. 우선 기본 프리다이빙 교육을 통해 필기시험에 75점 이상으로 통과해야 하고, STA 숨 참기 2분 이상, DYN 수평 잠영 40m, CWT 수직 하강 16m, 해양레스큐 5m 등이 있다. 통과기준을 확인한 후 나는 절망에 빠졌다. 생전 계곡물에 발 담그는 수준인 내가 어떻게 잠영을 하고 바닷속으로 16m 잠수를 하며, 5m의 수심에서 레스큐 활동을 한단 말인가. 교육을 받던 중 나는 강사 제이콥에게 물었다. “ 저희가 정말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요?” 강사님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다 됩니다.” 정말이지 신뢰가 가지 않는 말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수강생의 제1 수칙이 무조건 강사를 믿는 것이라고 한다. “믿겠습니다 강사님!” 진심 반, 의심 반의 대답이었다.
제이콥은 ‘긴장 완화’와 ‘압력 평형’(이퀄라이징) 이 두 가지가 프리다이빙의 전부라고 말했다.
우선 긴장 완화란 무호흡 상태에 들어가기 바로 전 단계이다. 이 단계의 목적은 정신적 못지않게 육체적으로도 완전한 안정을 얻는 데에 있다. 육체적으로 안정이 되었다는 의미는 불필요한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인 반면 정신적 안정은 지금 현재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함을 의미한다. 생각이 많으면 산소 소비가 늘어난다. 그러므로 집중한다는 것은 복잡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한다.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더욱 깊게 안정됨에 따라 우리의 호흡이 더욱 평온해짐을 느낀다고 한다. 안정될수록 우리의 몸은 더 적은 양의 산소를 요구하고, 현재 활동상태에 따라 항상 정확히 알맞은 양의 공기를 들이쉬었다. 내 쉴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을 참는 것이 쉬워질 것 이라고 한다. 압력 평형은 증가하는 수압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다.
만약 압력 평형을 하지 않고 수심 밑으로 내려가게 된다면 증가하는 압력에 따라 불편함, 심지어는 통증을 느끼며 귀가 상할 수도 있다. 수심이 깊어짐에 따라 압력은 높아진다. 수면의 기압은 대략 1bar이다. 물속으로 10m씩 내려갈 때마다 1 bar씩 늘어간다고 한다. 여기서 ‘일정 온도에서 기체의 부피는 압력에 반비례한다’라는 보일의 법칙이 적용된다. 프리다이빙을 할 때 신경 써야 할 공기 공간은 4곳, 즉 양쪽 귀와 부비강, 양쪽 폐, 마스크이다. 바닷속으로 하강하는 동안 증가하는 압력은 이 공간 안에 있는 공기를 압축한다. 따라서 증가하는 수압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 공간들로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 수면을 향해 상승하는 동안에는 압력 평형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압력이 낮아짐에 따라 양쪽 귀와 부비강, 마스크의 공기는 자동적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스쿠버 다이빙과는 대조적으로 프리다이빙에서는 압력 평형 능력이 받쳐준다면 속도제한이 없다. 깊은 수심과 수면으로 자기 마음대로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압력 평형은 크게 2가지 방법으로 분류된다. 발살바 기술과 프렌젤 기술이다. 발살바 기술은 복부와 흉부의 힘으로 코를 잡고 숨을 내뱉는 방법이고, 프렌젤 기술은 오직 혀와 뺨의 힘으로 공기를 중이로 주입하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압력 평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발살바 기술은 산소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공기 공급에 큰 문제가 없는 스쿠버다이버들이 많이 선호하고, 우리 프리다이버들은 산소 소모가 거의 없는 프렌젤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다합에 프리다이빙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프렌젤 이퀄라이징이 되지 않아서 고전한다. 선천적으로 연습도 하지 않고 연구개의 힘이 좋아서 프렌젤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방면, 그 느낌조차 몰라서 하루에 3천 번씩 연습하며 프렌젤을 터득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와 어머니의 경우엔 선천적으로 프렌젤이 그냥 되었고, 형은 후자였다. 그 때문에 형은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였다.
어쨌든 교육도 받았겠다, 다음날 우리는 바로 바다로 나섰다. 생전 처음 입어보는 프리다이빙 수트를 낑낑대며 입고, (이거 정말 힘들다. 프리다이빙 중에 수트 입고 벗는 게 제일 힘들다) 원활한 하강을 위한 웨이트 벨트를 매고, 마스크와 스노클을 챙기고 다이빙을 나섰다. 우선 우리는 얕은 곳에서 강사님과 핀 차는 연습부터 하고, 본격적인 무호흡 스태틱 훈련에 돌입하였다. 평생 육지에서도 숨을 참아본 적이 없는 터인데, 역시나 1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수면 밖으로 뛰쳐나왔다. “강사님 죽을 거 같아요” 강사님은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호흡 충동일 뿐이라고 하셨다. 사실상 우리 몸에 아직 산소가 넘쳐나는데 숨을 참음으로써 이산화탄소가 증가하여 호흡 충동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호흡 충동을 넘기면 컨트랙션(수축)이 오는데 그때 폐가 수축되며 몸이 들썩인다고 한다. 이 두 고비를 넘기면 온전한 평온함이 찾아온다고 한다. 숨을 참고 다이빙을 하기 위해선 이 호흡 충동, 수축하고 친해져야 한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 진짜 죽을 거 같다. 아니 정말 호흡 충동이고 뭐시고간에 당장 수면 밖으로 뛰쳐나가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을 거 같은데 어떻게 이걸 견딘다는 말인가.. 부단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할 거 같다. 시작부터 험난하다.
스태틱 훈련이 끝난 후, 우리는 본격적인 다이빙을 위해서 깊은 곳으로 향했다. 서서히 깊은 곳으로 향하는데, 다합의 바다는 정말 얕은 곳에서 몇 걸음만 걸어도 땅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심이 확 깊어진다. 평생 살아오면서 깊은 곳은 구명조끼가 없으면 들어갈 엄두도 못 냈던 우리인데, 구명조끼도 없이 무거운 웨이트 벨트까지 차고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고? 이러다 빠져 죽는 거 아닌가 싶다. 겁을 먹은 내 옆에서 이집트 꼬맹이가 비웃듯이 장비 하나 착용 안 하고 접영을 휘황찬란하게 하며 지나갔다. ‘그래 저런 꼬맹이도 하는데..’ 강사님은 그냥 물에 몸을 맡기고 핀을 차라고 하셨다. 놀랍게도, 바다가 아무리 깊어도 몸이 물에 뜬다. 내가 부력을 너무 우습게 알았나 보다. 절대 가라앉지 않는다. 그냥 물에 몸이 뜬다. 정말 신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이빙 포인트까지 핀을 차며 전진했고 강사님은 부위를 설치하셨다. 본격적인 다이빙을 위해 16m의 줄을 바다 밑으로 내렸다. 몸을 뒤집으며 줄을 잡고 천천히 이퀄라이징을 하며 바다 밑으로 향하는 압력 평형과 친해지기 위한 ‘프리이머전’ 연습에 돌입하기 위해서이다. 어찌어찌 수면위에서 떠다니는 것에는 익숙해졌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닷속의 줄을 보고 있자니 겁이 덜컥 나기 시작했다.
‘저기를 내가 왜 들어가야될까?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따위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보다 물하고 친하지 않은 어머니와 형은 이미 멀미가 난다고 물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생각보다 16m는 엄청나게 깊었다. 산소통도 없이 맨몸으로 저 깊이를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강사님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엄청나게 능숙하고 신속하게 몸을 뒤집으며 헤드퍼스트로 줄을 당기며 수면 밑으로 들어가는 강사님을 보고 있자니 정말 물고기가 따로 없었다. 그렇다. 강사님은 물고기였던 것이다.
강사님의 시범이 끝나고 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해 그럼 될 거야” 어떻게 긴장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부위에 매달려 바닷속으로 향하기 전, 긴장 완화를 하며 깊은 바닷속과 끝이 없는 줄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고 당장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여행자보험도 없이 유서도 쓰지 않고 친구들에게는 호탕하게 자격증을 따고 간다고 하고 왔는데,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건가 싶었다. 나는 죽으려고 온 게 아니다. 별의별 생각이 많아지며 긴장은 더 심해졌다. 그렇게 긴장 완화도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종호흡을 하고 바닷속으로 향했다. 줄을 당기며 바닷속에서 몸을 거꾸로 뒤집는 그 순간, 귀와 코와 눈에 물이 들어오며 처음 느끼는 오묘한 느낌을 받았다. 거꾸로 뒤집어서 있는 바닷속은 내게 너무도 익숙하지 않았다. 곧바로 가슴이 답답해진 나는 곧바로 수면위로 뛰쳐 올라왔다.
“회복 호흡!! 회복 호흡해!” 강사님이 외쳤다. 나는 터질 거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회복 호흡을 하였다. 이거 정말 장난 아니다. 바닷속을 너무 만만히 봤고 프리다이빙을 너무 만만히 봤구나. 그때 나는 이집트로 온 나 자신을 후회하고 있었다. “쌤 진짜 죽을 거 같아요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다 할 수 있어 긴장 완화도 안하고 그렇게 무턱대고 들어가니 그렇지. 다시 해보자” 아...강사님은 물고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인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정말 죽을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