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 고요함이 좋았어, 금방 할 수 있겠다 너는”
첫 다이빙 이후, 우린 바다에게 무참히 패배했다.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쑤셔오고,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진다. 이렇게 힘든 것이었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뜨거운 햇빛은 타들어갈 듯이 내리쬐이고, 해를 머금은 바다는 찬란하고 평화롭다. 밖에서 보면 이렇게나 평화로운 바다인데, 안에는 얼마나 두렵던지. 연습, 또 연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어찌나 연습을 하러 가기가 싫은지, 수트는 왜 이렇게 입고 벗기가 힘든지, 어머니는 수트 때문이라도 다이빙이 하기 싫다고 하신다. 하긴, 수트 입고 벗는 것은 나도 힘든데 우리 어머니는 오죽하실까. 호기롭고 패기롭게 어머니를 모시고 형과 같이 우리 가족, 숲과 나무들은 바다를 정복하리라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들 전의를 상실했다. 연습만이 답이다.
우린 그랑부르의 주인공 자크처럼, 아름다운 바닷속을 자유롭게 누비며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한국에서 오매불망 우리가 꼭 바다를 정복하고 오길 바라는 우리 아부지를 위해서라도, 연습 또 연습이다! 연습에 앞서 두 번째 교육을 받으러 우리 가족은 다시 프리다이브 아지트 샵으로 향했다.
물을 아직까지 무서워하시는 우리 어머님은 제이콥 강사님이랑 같이 특별히 1대 1 맞춤형 스노클링 교육에 들어가셨고, 나와 형은 아지트의 또 다른 강사님인 범수 쌤이랑 같이 다이빙 교육에 돌입하였다. 다시 나간 바다는 평화롭고도 두려웠다. 처음 몇 번의 다이빙 시도에 실패하자, 차분한 성격의 범수쌤은 내 마음을 다잡아 주셨다. “절대 빠르게 성급하게 하지 말고 차분하게 편안하게 다이브 해. 너 죽을 일 없어. 산소도 충분한데 긴장해서 숨이 가빠오는 거야. 고요함에 집중해” 자, 다시 긴장완화다. 준비 호흡을 하며 고요한 바닷속에 몸을 맡기고 수면 위에 둥둥 떠 깊은 바다 안을 들여다본다. 귀는 이미 물속에 들어와 있기에 주변의 소음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고요함과 거친 내 숨소리뿐. 작은 정어리떼부터 큰 물고기까지 준비 호흡을 하는 내 몸 밑으로 요리조리 바쁘게 지나다닌다.
물고기들에 집중하며 긴장을 풀기 위해 여러 생각들을 해본다. 이 짧은 준비 호흡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생각들이 내 뇌리 속에 스쳐 지나간다. 한국에 있는 나의 아버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순간 내 귀에 들리는 숨소리는 편안해졌고 내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해를 머금어 찬란하고도 아름다웠다. 정말이지 고요했다. 그 고요함에 이끌려 최종 호흡을 자연스럽게 마치고 나의 몸은 뒤집어져 바닷속으로 향했다.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며 이퀄라이징을 시도한다. 편안하다. 아 이토록 고요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있었구나. 오로지 나 자신에게 100퍼센트 집중하는 이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렇게 처음으로 8m를 내려가 보았다. 수면 위로 상승하고 회복 호흡을 한다. 범수쌤이 묻는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어땠어?” 내가 대답했다. “고요했어요. 너무 좋았어요. 재미있는 거 같아요 쌤” 쌤이 씩 웃는다. “나도 그 고요함이 좋았어, 금방 할 수 있겠다 너는” 다이버들이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으뜸은 이 바닷속의 고요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말이지, 온 우주에 나밖에 없는듯한 이 고요함.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 아까 전까지만 해도 두려웠던 바다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아름다운 바다만 남아있다. 나, 다이빙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