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글방(2023.02.12. 일 아파트)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지만 최초의 아파트 방문은 내게 당혹스러운 느낌으로 남아있다. 102동 1503호 식의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과외 선생님 집 방문이었던 것 같은데 거대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102동을 찾느라 한참(도대체 왜 2동도 아니고 102동이란 말인가), 3호 라인을 찾느라 한참(1-2라인에 가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다행히 그 집에 사람이 없어 망신은 면했다) 걸린 탓에 어마어마한 지각을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동호수를 제대로 찾아가는 걸로 끝나지도 않는다. 카메라다 달린 키패드 앞에 서서 동과 호수를 누른 후(이것도 아파트 별로 방법이 천차만별이다.) 내 얼굴을 비추는 작은 불빛과 함께 머쓱하게 서서 호출 멜로디를 듣는다. 화면 저 너머의 집주인이 <문 열림> 버튼을 눌러주면 비로소 집에, 아니 엘리베이터 앞에 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층을 누르고, 다시 그 집 문 앞에서 또 한 번의 초인종화면 앞에서 머쓱함을 참고 기다리면 드디어 집 안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이미 녹초가 된 마음으로 들어선 그 아파트에서는 땅이 아래로 내려다보였다. 땅 위에 바로 붙은 주택에서 대지와 나란한 눈높이로 살아온 나에게는 제법 큰 이질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더군다나 똑같은 구조의 집이 층층이 쌓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정우아파트, 삼진빌라 등 이름만 아파트고 빌라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이하의 주거형태만이 존재했다. 나는 그때까지 아파트란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다. 아파트라고는 하지만 각각의 집의 분위기가 모두 달랐던 친구들의 집. 이름은 아파트지만 3층집 같고, 4층집 같았던 정겨운 가구들. A단지, B단지, C단지로 이루어진 동들과 아파트 사람들이 함께 가꾸던 정원, 여름밤이면 동과 동 사이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놀던 동네 아이들. 또래 아이들이 잔뜩 살던 그 아파트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내가 어렵사리 찾아 들어간 아파트는 내가 알던 아파트가 아니었다. 내 안에서 아파트가 새로이 정립되던 순간이었다.
지금은 각종 브랜드 아파트, 1차 2차로 분리된 아파트, 거대단지 어딜 가도 당황하지 않고 집을 찾아갈 수 있다. 요즘 아파트에는 무려 입구가 열리면 엘베가 내려와 나를 기다리는 시스템도 있는데 여기에도 쉽게 놀라지 않는다. (사실 처음에는 적잖이 놀랐지만) 헬스장에 독서실은 물론 키즈 스테이션이니, 손님용 게스트룸까지 있는 오늘날의 아파트들의 무한한 발전을 보며 “역시 아파트가 좋네. “ 싶다가도 문득문득 떠올린다. 어린 날의 내가 부러워하던, 옹기종기 옆집 같고 한 집 같던 아파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