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글쓰기(2022.08.24. 운동)
운동이라 함은 나에게 늘 본격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운동 그 자체뿐 아니라 그 운동에 따라오는 것들이 너무 많아 운동이라는 건 큰 맘을 먹어야만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는 테니스를 아주 오랫동안 쳤는데 그에 수반하는 각종 잡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모든 잡일에 우리 삼 남매를 동원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테니스장 모래가 젖어 움푹 파이기 때문에 눈이 오면 재빨리 치우고 비가 오면 배수로를 뚫어줘야 했다. 물이 빠지면 소금을 뿌려 땅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고 월례회다 뭐다 매주 행사가 있어 간식이며 밥이며 선물이며 준비하기 바빴다. 테니스 레슨이라도 받는 날이면 온 테니스장을 채운 형광노랑 공을 줍고 줍고 또 주워 바구니에 넣어야 했다. 이쯤 되면 이건 테니스보다 다른 잡일이 더 많은 거 아닌가 싶어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세레나 윌리엄스, 노박 조코비치, 나달이 으! 으! 하는 재미대가리 없는 호주방송도 지겨웠다. 티브이에서는 모든 테니스 경기를 중계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나에게 영어 공부를 해서 중계 없이도 방송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호주 발음까지 알려면 꽤나 오래도 걸리겠군 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중고딩 때 발목이 드러나는 발목양말이 유행했지만, 우리 집에는 심지어 발목에 밴딩까지 들어간 단단한 헤드 테니스 양말뿐이었다. 내 친구들은 내가 유행하는 양말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쿨한 사람인 줄 알고 멋있다고 했다. 무슨 소리. 나는 테니스 양말이 부끄러운 사춘기였지만 애들이 오해하도록 잠자코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운동이 싫었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겁 때문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동네가 워낙 산속에 있고, 지체장애인 집단 성폭행이 바로 학교 뒷동네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이거 안 되겠는데 싶었다. 그때 마침 <합기도> 동아리에서 호신술을 알려준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우르르 합기도 동아리에 들어갔다. 새터에서 인기가 많은 선배가 그 동아리에 있던 바람에 새내기들이 유래 없이 합기도에 많이 몰렸고, 진짜로 남을만한 아이들을 가린가는 명목하에 첫 한 달 동안 가차 없이 운동을 시켰다. 나는 운동을 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말을 잘 듣는 학생이어서 시키는 대로 매일 구르고, 달리고, 발차기를 했고 정신 차리고 나니 <합기도 00기(몇 기 인지도 생각이 안 난다)>가 되어있었다. 내 몸에서 그렇게 땀이 날 수 있는지도 몰랐고 그렇게 땅바닥에 몸을 내던질 수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매일매일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체육관에서 굴렀다. 낙법은 지겹게 배웠지만, 호신술은 배울 수 없었다. 선배는 교통사고가 나면 이렇게 요렇게 낙법을 하면 덜 다칠 거라고 했지만 실제로 사용할 일은 물론 없었다. 아, 합기도는 몇몇 이상한 OB선배들이 “라떼는 아스팔트에서도 굴렀어~!”라며 일과 중에 술마시자고 불러대는 미친놈들이길래 휴학과 동시에 그만둬버렸다. 그때 만난 친구들과는 지금도 끈끈한 사이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합기도 덕분에 몸치인 줄 알았던 나는 운동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즐거운 것이라는 경험을 얻었다. 덕분에 여러 종류의 운동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에도 나는 교대생들과 스타킹에 나가는 게 꿈인 태권도 교수님 덕분에 태권도 수업시간에 음악줄넘기를 마스터했고, 헤어짐 비슷한 것에서 벗어나려 하루 만 번씩 줄넘기도 했다. 화가 날 때 줄을 세게 돌리면 기분이 좀 풀렸다. 그러다 줄에 맞으면 빠르게 정신이 돌아온다. 런데이 아저씨와 함께하는 달리기도 1년 가까이 유지했으며, 공 튀기는 게 무섭지만 공 주울 일은 없는 스쿼시가 나와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자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때는 달리고 두드리고 머리이~! 소리 질러야 하는 검도가 좋으며 요가를 하면 머리가 아프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마 숨 쉬는 게 이상한 모양이다. 볼링, 티볼, 축구 등은 맛보기만 해봤지만 언젠가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다.
비록 지금은 내가 뛰기만 해도 주변이 난리여서(이때는 임신 중이었다!) ‘걷기’를 최애 운동으로 선택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운동들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