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글방(2023.2.3.금 운동)
엄마말에 의하면 어릴 적 나는 여름이면 땀에 머리가 폭 젖은 채 거실에 누워 쌕쌕 숨을 쉬며 자고 있었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더위를 많이 탄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름이면 느껴지는 열기는 어느 계절에 떠올려도 생생하다. 뜨거운 햇살이 비추고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면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슬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머리로 시작한다. 햇빛으로 정수리가 뜨거워지면 모락모락 피어나는 열기가 빽빽한 머리숱 때문에 쉽게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러면 다음은 얼굴이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뺨이 바짝바짝 타는 게 느껴진다. 이어 온몸에 뜨거워졌다. 땀은 이미 피부로 더위가 느껴질 때부터 나기 시작한다. 애초에 땀도 많이 났지만 땀으로 내릴 수 있는 온도보다 더위로 덥혀지는 게 더 빠르곤 했다. 그러면 더 이상 빠져나갈 곳 없는 수분이 증기기관차가 김을 내뿜듯 눈을 통해 나왔다. 이런 이유로 나는 너무 더워지면 눈물이 주룩 나오는 사람이었던 거다. 꼭 여름이 아니어도 운동을 해서 더워져도 마찬가지였다. 금세 얼굴이 바짝 마르다 못해 눈에서 눈물이 났다. 그래서 나는 운동이 싫었다. 핑계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땀이 나다 못해 눈물이 날 정도의 더위나 땀에 젖어 찝찝한 옷, 끈적이는 살끼리 부딪히는 것 등 어느 것 하나 좋은 부분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이나 그걸 막을 수 없는 나의 허둥대는 몸과 형편없는 방어능력도 운동을 멀리 하는 데 한 몫했다. 영화 <우리들>을 보고 나서야 피구공이 날아오는 두려움이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는 걸, 소수의 사람만이 피구공을 컨트롤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슬프고도 기뻤다.
애초에 나는 게임도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거나, 싸움을 해서 이겨야 하는 경쟁형 게임에는 잼병이었다. 스타크래프트도 치트키를 쓰고 컴퓨터와 대결하는 게 좋고 롤러코스터나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목표가 있으나 이루나 마나 한(?) 게임을 선호했다. 경쟁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스포츠는 내 취향일 수 없었다. 경쟁은 싫어하지만 타인에게 뒤처지거나 남들보다 확연히 쳐지는데서 오는 패배감 또한 싫어했는데, 일례로 어릴 적 수영 수업이 있었다. 물놀이를 좋아하니 수영은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뿔싸. 나는 배우는 게 느렸고 혼이 나면 더 느려지는 타입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평영, 접영을 배우고 있을 때 나는 음파음파와 발장구를 구석에서 연습해야 했다. 그 패배감, 부끄러움, 아무리 해도 따라갈 수 없다는 절망감. 친구들이 단체줄넘기 줄에 박자 맞춰 가볍게 들어갈 때 아무리 봐도 박자를 알 수 없어 눈 딱 감고 들어가 줄에 맞을 수밖에 없는 낭패감. 신기록이 나 때문에 깨져서 친구들의 야유소리를 들을 때의 당혹감. 자연스럽게 어릴 적부터 쌓여온 소소한 실패경험이 나를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습게도 수행평가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목표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내신관리가 필수였다. 문제은행식의 난이도 하인 체육 시험은 성적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100점 또는 90점 이상이었다. 자연히 비중이 높은 수행평가에 따라 체육과목의 등급이 좌지우지되었는데 당시 우리 학교 친구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운동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내신이 아주 치열했다. 타고난 재능과 즐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뜀틀 대신 피아노 의자로 연습하거나, 앞 구르기 3번 후 다리 벌려 일어나기를 성공하기 위해 매일 밤 요를 깔고 연습(지치지 않고 내 등을 밀어준 우리 가족들 고맙습니다.), 농구공을 수천번 미리 던져보고 다리에 줄이 쫙쫙 가도록 2단 줄넘기를 연습했다. 정말 말 그대로 죽도록 연습했지만 1등급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1등급 말고 더 값진 것을 얻어냈다. 기본 체육 능력이었다.
체육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은 대학교에 가서야 깨달았다. 교대에서는 체육 학점 1학점에 무려 2-3과목을 배우게 되는데, 이 모든 게 내가 고등학교 때 말 그대로 굴러가고 부딪히며 배운 것들이 아니던가. 앞 구르기, 뒷구르기, 다리 벌려 구르고 일어나기 쯤이야 고등학교 수행평가 풍차돌기(맞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옆으로 두 바퀴는 돌아야만 1등급을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 학교 여고생들은 체육에 진심이었다.)에 비하면야 껌이었다. 줄넘기, 티볼, 배구에 골프까지 마치 선행학습을 한 듯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더불어 합기도 동아리를 하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체육교육과정에(정확히는 체육 교육 과정을 열심히 가르쳐주는 선생님과 학교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매일 공만 던져주고 하는 피구 말고, 차곡차곡 여러 종류의 스포츠 기능을 배우는 수업을 아이들이 듣는다면 커가면서 스스로 좋아하는 운동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이 아니다. 축구공은 발 안쪽으로 차며 시작하는 것이 좋다거나 티볼공을 배트에 맞추기 위해 천천히 여러 번 배트를 휘둘러볼 기회가 있다거나, 매트에서 실컷 놀고 구르다 앞으로도 뒤로도 굴러볼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학교에서 배우는 체육의 힘 아닐까.
나는 지금 걷기를, 달리기를, 검도를, 스쿼시와 줄넘기를 좋아한다. 합기도, 티볼, 축구등을 해봤으며 클라이밍과 수영, 필라테스를 배워보고 싶고 요가와 태권도, 러닝머신은 좋아하지 않는다. 걷기와 달리기를 제외한 맨몸운동보다는 도구를 사용한 스포츠가 배우기 더 쉽다. 이렇게 내 몸과 선호하는 방향을 이해하는 것이 나를 더 건강하고 즐겁게 만든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느껴지는 더위나 땀은 생각보다 보람차다. 뭔가 성실한 노력의 결실 같달까.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서 간신히 러닝머신을 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쾌감이다. 머리잇! 소리치며 죽도를 두드린 후 땀으로 무거워진 도복을 벗거나 달리기를 한 후 찬물에 씻는 상쾌함 말이다. 꼭 학교가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천천히 시작해 보자. 그리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의 기쁨을 맛보기를 바란다.
20여 년 동안 운동의 ㅇ도 싫어하던 사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