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글방(2023.4.16. 일 감정)
중학생 때는 매일의 일상을 함께 했지만 이제는 인스타로만 서로의 아이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높은 확률로 나의 스토리에 좋아요를 누르고 가끔은 아기가 정말 귀엽다며 칭찬의 메시지까지 보내왔다. SNS에 아기 사진을 올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주책맞은 나지만 내 애기가 나에게만 예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다. (물론 내 눈에는 객관적, 주관적으로 미치도록 귀엽고 예쁘지만!) 그래서 한 번쯤 친구가 아기가 예쁘다고 해 주는 것은 진심일 수 있다 여겼지만, 꾸준히 보내오는 관심과 칭찬의 표현들이 어쩐지 쑥스럽고 머쓱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어제 장문의 dm을 보내왔다. 부쩍 사회적으로 자주 이슈가 되어서인지, 직업의 어려움에 대한 염려와 안부를 물으며 노력해서 얻은 자리가 일부 사람들에 의해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친구의 진심 어린 마음이 화면을 넘어와닿았다.
곧이어 친구는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지만 너만큼은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줄줄이, 정말이지 가득 써서 보내주었다. 나는 당황했다. 친구의 과거 속 나와 내 과거 속의 내가 다른 인물처럼 느껴졌다. 친구는 자기가 마음이 어려울 때 내가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했고, 나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친구는 내가 자기를 잘 챙겨줬다고 했지만, 챙겨준 게 아니라 그 애에 대한 애정으로 잘해주고 싶어서,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었을 것이다. 나는 그 친구를 너무나도 좋아했으므로 때로는 기뻤고 때로는 슬펐다. 친구가 나보다 다른 친구와 가까워질 때 나를 맹렬하게 사로잡았던 질투의 순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자연스레 멀어지거나 거리가 가깝고 멀어지던 순간들, 그 거리에 얼마나 연연했던가. 구김살 없고 자존감 높고, 친구들의 좋은 점을 많이 봐주고 자기 일 까지 열심히 했다는 칭찬에 나는 얼굴이 벌게져 손사래를 치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기억이 많이 미화된 것 같다고. 나야말로 네 덕분에 학창 시절 행복했고 자존감도 마음도 채울 수 있었다고. 친구가 그때의 내 구깃구깃하고 쭈굴쭈굴한 불안과 마음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물론 나는 안다. 완전히 알지 못하면서도 서로를 조건 없이 사랑했던 학창 시절의 마음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불교에서는 오욕칠정(五慾七情) 사람의 다섯 가지 욕망과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하는 용어가 있다. 이 중 칠정은 우리에게 주로 ‘희로애락’으로 알려진 ‘희노애락애오욕’으로 사람의 오관(눈, 코, 귀, 혀, 몸)을 통해 일어나는 일곱 가지의 감정을 말한다. 각각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망을 뜻하는데 이 중 희가 정신적 즐거움을, 낙(락)은 육체적 즐거움을 의미한다. 나의 모든 희노애락애오욕은 쪼끄맣고 뽀송한 아기가 차지하고 있다. 아기 웃음에 희, 변비에 노, 접종 후 열오름에 애, 머리를 쥐 뜯을 수 있는 손의 발달에 락, 매일 더 볼록해지는 뺨에 애, 아기를 위협하는 먼지에 오, 뒤집기와 되집기에 욕. 나의 모든 재산과 체력과 감정과 감각을 끌어다가 육아에 쏟아붓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잠들기 전에)에게 축복을 내려준 요정들처럼 아이의 앞날에 시도 때도 없이 바람과 희망을 쏟아낸다. 건강만 해라,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누가 널 때리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크면 엄마랑 바다에 가자, 그럴 순 없지만 평생 안 아팠으면 좋겠다 따위의 말들을 말이다.
어제의 나는 아기의 귓가에 속삭였다. 좋은 친구를 만날 거야. 엄마가 그랬듯이, 너도 그럴 거야. 마음이 오르락내리락거릴 때는 힘들 수 도 있어, 하지만 그 마저도 너를 자라게 할 거야. 그리고 나는 마음속 깊이 바랬다. 친구의 딸에게도 내 친구 같은 친구가 생기기를,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이어서 나는 바랬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그러다가 울컥 눈물이 맺혔다. 임신과 출산 때문인가, 어쩔 수 없는 아줌마의 주책맞음이 기본 장착되어 버린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나는 원래 이런 인간인 건가.
오늘도 친구에게 dm이 왔다. 곧 있을 다른 동창의 결혼식에 참석하냐고, 아가를 볼 수 있는 거냐고. 나는 기쁘게 참석한다고 대답하며 너의 아가도 볼 수 있겠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아, 이건 분명하고 확실한 기쁨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