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핸드폰을 가루로 만들 수 있다고?

자녀와 핸드폰, 그리고 전쟁


딸을 주십사 간절히 기도했지만 내게 딸은 허락되지 않았다.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면서 나는 단순하면서도 쿨한 남자아이들이 내 성격과 맞다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해 왔다. 아들 둘이지만 첫째는 FM 기질로 인사성도 밝아 나도 모르는 친구 엄마께 초대를 받기도 했고, 둘째는 동글동글 그냥 귀여움 그 자체였다.      


어느덧 첫째는 단신인 엄마를 뛰어넘는 키로 초등학생 마지막 학년에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고, 둘째는 곧 사춘기가 올 태세를 갖추고 가끔씩 도발하는 중이다. 공부는 못해도 된다고, 인성이 먼저라고 가르쳤는데 한 번씩 버릇없는 언행을 보이면 욱하게 된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다 보니 학원이 밤늦게 끝나기도 하고 얼굴 볼 시간도 많지 않은데 그 짧은 시간에도 몇 번의 전쟁이 발발한다. 가장 자주 일어나는 전쟁의 불씨는 첫째의 핸드폰 사용이다. 핸드폰은 최대한 늦게 허락하겠다는 우리 부부의 교육 지침을 알렸고 첫째가 5학년이 된 후 그해 6월에 핸드폰을 사줬다.




핸드폰을 개통해주면서 조건이 있었다.    


        [휴대폰 사용 지침]     

- 패밀리 링크로 관리를 받을 것

- 주중에는 꼭 필요한 경우만 사용할 것

- 사용 시간이 최대 2시간을 넘지 않을 것

- 모든 숙제를 다 끝낸 후 사용할 것

- 밤 10시에는 휴대폰 제출할 것      

    

처음에는 핸드폰이 생긴 것만으로도 좋아서 약속을 잘 지켰다. 그러다 점점 하나씩 약속을 어기기 시작하고, 사용 시간 통제로 인해 화를 내고 점점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핸드폰에 빠지니 간신히 챙기던 눈치마저도 외면하고 급기야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도 아들에게 질세라, 버릇을 잘 들여야 한다며 더욱 강력하게 통제했다. 자발적 제출은 이미 물 건너갔기에 압수에 이르렀고 일주일 사용 정지를 당하니 아들은 눈이 돌아갔다. 처음 하루, 이틀은 휴대폰 사용 금단현상으로 혼자 화를 내고 분을 삭이지 못해 안달이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체념 단계를 거쳐 하루라도 빨리 받고 싶은 마음에 숙제와 테스트를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과외 선생님께 칭찬 문자를 꼭 엄마에게 보내 달라며 당부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춘기의 절정을 보내는 중학생들을 수십 년간 가르친 지인으로부터 핸드폰을 빼앗은 것은 팔다리를 짤린 기분과도 같은 거라며 절대 뺏아서는 안되며 와이파이를 차단하라는 팁을 얻었다. 조언을 듣고 작전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인내심 부족한 우리 부부에게는 와이파이 차단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이쯤 되니 아들이 중독인지, 부모가 아이를 너무 규범화하여 키우는지 도통 모를 지경이다.


집집마다 휴대폰 전쟁은 비일비재하다고 들었다. 아들이 친구도 몰폰(몰래 핸드폰하는 것)하다가 아빠에게 폰압(핸드폰 압수) 당했다는 말을 종종하곤 했다. 몰폰, 폰압 무슨 줄임말과 신조어가 넘쳐나는지 가끔은 알아듣는 내가 신기하다고 생각된다.      





아는 언니와 오랜만에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했다.      

“중2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핸드폰, 침대와 하나가 되어 방에만 있는데 정말 돌겠어. 남편은 그냥 내버려 두라는데 속이 썩어.”

“사춘기 온 거지?”

“사춘기 진작 왔지. 침대에 붙어사는데 정말 핸드폰 던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야.”

“언니, 지금 우리 집 이야기하는 줄. ㅋㅋㅋ. 나는 보는 앞에서 망치 들고 속 시원하게 깨 버리고 싶어.”

“맞아, 가루로 만들래도 만들겠어. 다 똑같구나.”

“ㅋㅋㅋㅋ 100% 공감.”

“공감만 해 줘도 위로가 된다.”

“난 아들 둘이라 여러 방면에서 위로가 될 것 같네.”   


       

아이들도 저마다의 입장이 있겠지만 엄마들은 정말 휴대폰 사용 문제로 돌 지경이다. 어르고 달래는 것도 그때뿐이고 휴대폰은 사용해야 할 핑계는 넘쳐난다. 중학생 때 뒤늦게 휴대폰에 빠질까 봐 최대한 늦춘 시기가 초등 고학년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언제쯤이면 적당하게 필요할 때만 사용할지 감감하다. 2G폰을 사용해도 만족해하고, 스마트폰이나 패드는 적정 시간 필요시에만 사용하는 모범적인 아이들도 있던데 역시 그건 남의 아들 이야기였다.      



전문가들, 선배 엄마들이 말하길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은  아들이 아닌 ‘옆집 아들또는 ‘하숙생취급하라는데 쉽지 않다.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은  같은데 그땐 내가 감당해   있을지 궁금하다. 갱년기가 사춘기를 이긴다는데 갱년기라도 빨리 와달라고 기도해야 되나 싶은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보건실 출입 금지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