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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의 추억

엑설런트를 잊을 수 없다던 그.



음식이나 물건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 또는 그와 관련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저녁을 먹은 남편이 주전부리를 찾더니 아들과 간식을 사러 다녀왔다. 한 봉지 가득 사 온 것은 바로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이었다. 그중 "엑설런트"라는 상자가 눈에 들어온다. 연애시절 남편과 아이스크림 먹으러 갔을 때 남편이 엑설런트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같은 반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어머님이 간식으로 주신 아이스크림이 엑설런트였어. 100원짜리 쭈쭈바, 아이스바 먹던 시절에 엑설런트는 생김새, 포장부터가 고급지더라. 포장지를 열고 한 입 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었고 그 친구 생각하면 엑설런트가 떠오르더라고."

"와~ 그 시절 엑설런트면 진짜 고급 아이스크림이었잖아"

"그 친구 아버지가 방송국 기자 셨던 거로 기억해. 집 분위기나 친구 어머님도 교양미가 넘치셨던 거 같고. 맛있는 간식을 내어 주시고 따뜻하게 반겨주셔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우리도 아들 친구들 놀러 오면 하겐다즈, 배라 아이스크림 간식으로 주자. 치킨, 피자도 시켜주고~

교양과 우아함은 내가 맡을게.ㅋㅋㅋ"


그날의 따뜻한 기억 때문인지 남편은 나에게 아들 친구들이 놀러 오거든 맛있는 간식을 주고 다정하게 맞으라고 했다.






나 역시도 초등학교 때 옆동네 사는 친구 집에 자주 놀러 다녔다. <대우전자대리점>을 운영하던 부잣집 딸인 친구는 인기 쟁이었다.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게임기와 텔레비전을 연결하여 슈퍼마리오부터 양배추 인형 게임까지 아낌없이 게임을 시켜주던 친구였다. 오락실에도 안 들어온 게임을 무료로 시켜주던 친구의 인기는 당연했다. 결혼을 한 후에도 지금까지 연락하고 만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성격 하나는 끝내주는 친구이다. 내가 어렸을 때 부러워하던 친구들이 슈퍼마켓 집 딸, 문방구집 딸, 그리고 전자대리점 집 딸이었다.^^


시간이 지나 사회인이 되고 초등 동창들을 만났을 때 <대우전자대리점> 안집에 가서 게임했던 친구들의 게임 무용담이 이어졌고 우리들의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큰아들이 같은 반 된 친구가 같은 아파트 앞동에 산다며 둘 다 학원시간이 비니까 우리 집에서 잠깐 놀아도 되냐고 묻는다. 흔쾌히 허락을 했더니 하교하자마자 친구와 집으로 들어왔다. 작고 왜소한 아들 친구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고 아들이 친구를 소개한다.


"엄마, 작년에 나랑 같이 토요 방과 후 한자 수업 같이 들었던 OO이야. 이번에 같은 반 됐어."

"아, 그러니? 얼굴은 처음 봐서 못 알아봤네. 반갑다. 어서 와"



마침 냉동실에 피자가 있어서 데워 주고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말도 잘하고 수줍게 웃는 게 사춘기가 온 아들에 비하니 순수해 보였다.


"우리 춘기 학교 생활 잘하고 있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내가 생각해도 질문이 너무 엄마스럽고 진부하다.

아들 친구와 아직 래포(rapport)가 형성되지 않았으니 그저 안부를 묻는 질문과 답을 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춘기 책을 많이 읽고 선생님 심부름을 잘해요. 아, 자세가 삐딱해서 샘한테 가끔 혼나요."

"야, 네가 더 혼나잖아. 엄마, 얘는 나보다 더 많이 혼나."

"혼날 수도 있지. 혼나고 난 후 태도가 개선되는 게 중요해."


초등학생들 눈높이에서 학교 생활, 교우 관계 등 셋이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아들 친구는 첫인상과 달리 서슴없이 말도 잘하고 성격도 밝았다.


"다음에 올 때는 미리 말해주고 좋아하는 간식 알려주면 아줌마가 준비해 놓을게. 또 놀러 와."

"오늘 피자도 맛있었어요. 안녕히 계세요."


아들과 그 친구는 베프가 되었고 운동도 같이하는 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지난 후 아들이 말한다.

"엄마, 앞 동 사는 OO이가 나한테 너희 엄마 너무 좋대."

"아, 이 엄마 또 매력 발산했나 보다. ㅎㅎ 엄마 성격 좋은 거 너희 빼고 다 알아. 너희 영어 학원 클레어 티처도 '데이비드 & 대니얼 맘 나이스 하다'라고 말씀하셨대. 그런데 OO 이는 엄마 왜 좋대?ㅎㅎ"


아들 친구에게 너희 엄마 우아하고 품위 있으시더라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친구 엄마와 나눈 이야기가 제법 인상적이었나 보다.


"지난번 우리 집 놀러 왔을 때 엄마랑 이야기하면서 엄마 멋졌대. 엄마가 했던 이야기 기억하면서 부러워하더라고. 내가 잘못하면 무릎을 꿇려서라도 사과시키고, 내가 괴롭힘 당하면 엄마는 참지 않을 거라고 한 말은 되게 든든했대."

"아, 그건 모든 부모가 같은 생각일 거야. OO이 엄마가 지금 다른 지역에 발령 나서 떨어져 지내니 엄마가 했던 말이 더 기억에 남았나 보다. OO이 학교 생활하면서 힘든 일 있으면 엄마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돕겠다고 해."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정말 어이없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애들이 있다. 애들에게 시비를 걸고 잘못된 영웅 심리로 뭐라도 되는  우쭐대는 못된 아이가 있다. 당하는 아이가  아들이라고 생각해도 분하고, 시비 거는 아이가  아들이라면  손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100 맞고 공부 잘하는 것보다 인사성 밝고 예의 바르고 인성이 좋은 아들로 키울 거라는 엄마의 바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아이들도 유년시절에 따뜻했던 기억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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