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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영업왕

옥수수 아저씨


집 앞 도서관에 다녀오던 작은 아들이 손에 검은 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엄마, 옥수수예요."

"응? 어디서 났어?"

"옥수수 아저씨가 주셨어. 도서관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 기다리다가 아저씨께 인사하니까

아저씨가 옥수수 하나 먹고 가래서 괜찮다고 했는데 세 개나 싸 주셨어."


이 옥수수 아저씨로 말하자면 친절과 신뢰로 영업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아파트 길가 건너편에 자리 잡고 강원도에서 공수해 온 찰옥수수만을 즉석에서 쪄서 팔았다. 다른 msg를 넣지 않아도 옥수수 자체로 맛이 좋아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줄을 서서 사가던 곳이다. 한 솥 쪄내도 오천 원, 만원 어치씩 사가면 금방 바닥이 나서 옥수수를 사기 위해서는 '언제 오면 되는지'를 물어야 한다. 얼마 후에 오라는 말을 듣고 그 시간에 가면 대기 번호가 없는데도 사람들이 자기 순번을 알고 옥수수를 사 간다. 내가 먼저 왔다는 사람도 없고, 새치기하는 사람도 없고 암묵적인 순서가 있었다. 그저 아저씨가 친숙하게 '어머니, 애기 엄마' 등 호칭을 부르면 알아서들 본인 차례를 알고 필요한 개수를 말하고 옥수수 봉지를 받아 유유히 사라진다.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옥수수 사장님만의 영업 노하우가 담겨 있음을 알았다. 항상 친절하시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하시고 잠재적 고객, 동네 주민들에 대해 항상 관심 있게 지켜보시고 손님을 왔을 경우 오는 순서를 다 파악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장님만의 영업 철학도 있으셨다. 최고 품질의 옥수수를 취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한 재료로 맛있는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며, 옥수수 크기까지도 깐깐하게 선별하여 판매하신다.


옥수수 맛있다는 소문이 인근 지역까지 나서 차를 타고 찾아오기도 하고 줄을 서서 사가기도 한다. 그 덕에 길가 트럭에서 팔던 옥수수가 사거리 횡단보도 앞자리 좋은 간이 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이 내 일처럼 기뻐해 주고 이탈되는 고객 없이 몇 년째 여전히 성행 중이다. 사장님의 친절과 서비스도 여전하시다.


둘째가 받아온 옥수수 3개는 모두 사이즈가 달랐다. 이는 사장님이 일부러 판매하지 않고 따로 빼놓은 것이다. 균일한 사이즈의 옥수수만 판매하시고 서비스는 확실하게 주신다. 옥수수를 못 사고 가는 손님이나 인사 잘하는 아이들, 배고플 나이의 중고등학생들, 애기 데리고 와서 허탕치고 갈 애기 엄마들까지 고려해서 서비스로 남겨 놓으신 것이다. 첫째가 친구들과 운동하고 지나오는 길에 옥수수 아저씨가 옥수수 하나씩 먹고 가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이번에 둘째도 아저씨께 인사하니 일부러 챙겨 보내신 것이다. 도서관 앞이라 오다가다 옥수수가 없어 발 길 돌리는 손님들에게 한 두 개씩 봉지에 담아 챙겨 주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뜨거운 불 앞에서 종일 옥수수 삶고 판매하시느라 힘드실 텐데 항상 밝게 웃으시고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시는 영업왕이시다.






또 다른 영업왕은 젊은 뻥튀기 사장님이시다. 음악과 함께 하시며 오고 가는 손님들께 인사를 건네고 항상 감사해하신다. 뻥튀기 사장님은 우리 아파트 후문 앞에 매주 수요일마다 찾아오신다. 트럭에서 즉석 뻥튀기를 바로 포장하여 판매하시는데 80-90년대 음악과 함께 솔로 콘서트를 하듯 열창을 하며 뻥튀기 작업에 한창이시다. 강냉이 한 봉지를 사도 지금 막 나와 더 고소하다며 뻥튀기를 서비스로 한 봉지 가득 담아주신다. 서비스 치고 양이 많아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또 찾게 된다. 강냉이 사장님 역시 옆동네까지 입소문이 났는지 다들 젊고 싹싹한 사장님이라 알아보신다. 물건을 사면서도 기분이 좋아지고 안부가 궁금해지는 분이시다.



오래도록 옥수수 아저씨, 뻥튀기 아저씨 두 사장님네 단골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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