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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봐야 알게 되지

기분이 좋아 보여 다행이다


2022년 1월 중순.

설 연휴를 며칠 앞둔 평일 오후 시간대에 병원 진료 예약이 잡혀있었다.


작년 말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부인과 쪽은 유방 촬영까지 끝냈고, 초음파는 대기가 길어 예약을 해야 진료 가능하다는 말에 가장 빠른 시간대인 1월 중순으로 예약했었다. 유방에 혹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고 별 다른 이상 소견은 없으니 매년 정기검진 하라는 말을 들어왔던 터라 별 걱정 없이 진료에 임했다.


두 아들 임신 때부터 출산, 그리고 이후 부인과 검진이 있을 때마다 다니던 병원이라 초음파실도 익숙했다. 딸을 바랐던 우리 부부에게 첫째 성별이 궁금하여 물어보니 보라색으로 준비하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고, 둘째 입체 초음파를 볼 때 모니터를 보던 남편은 매의 눈으로 전문가의 소견보다 빠르게 딸이 아님을 알아채는 신공을 발휘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남편이 보호자로 함께 다니던 병원 초음파실에 나 홀로 누워있다. 복부가 아닌 유방 초음파를 확인하기 위해서. 간호사가 진료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고 잠시 후 의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신 후 촬영 결과를 세심히 보신다.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뱉는 호흡만이 적막을 깨우고 있었다.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혹이 많이 있는 건 아시죠?"

"네~"

"초음파까지 보고 말씀드릴게요."

"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다시 오른쪽, 그리고 한동안 계속되는 검사가 이어졌다.

보통 초음파실 입실부터 진료까지 15분 남짓이면 됐는데 '왜 이렇게 길어지지?', '무슨 문제 있나?' 초음파실 벽에 붙은 시계는 이미 예전에 받았던 진료 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양쪽 모두 혹이 많아요. 그런데 혹이 유방 조직의 결을 따라 있는 거는 지켜보면 되는데 왼쪽은 조직을 치고 올라가서 모양이 의심스럽습니다. 크기도 작지 않고요. 맘모톰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일단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봐야 할 것 같네요."

"네? 그럼 조직검사는 언제 해요?"

"지금 바로 할 건데요. 국소마취 후에 총조직검사로 금방 끝납니다."

"네..."


다 큰 어른이 아이처럼 하기 싫다고 떼를 쓸 수도 없고 생각지 못한 전개에 너무 무서웠다.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검사는 시작됐다. 마취 주사가 아픈 건지 무서워서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고 눈은 이미 폭포가 되어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깜깜한 검사실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마취가 된 걸 확인 후 검사 도구가 들어갈 만한 크기를 절개해야 한다고 하셨다. 절개 후 아주 기다랗고 굵은 바늘처럼 생긴 무시무시한 걸 들더니 이제 검사에 들어가겠다고 하셨고 나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도 새어나가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주사가 삽입되는 느낌에 이어 "탕" 소리가 난다. 소리에 더 놀라 아픈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에 떨고 눈물과 함께 했던 조직검사가 끝났고 검사실 불을 켠 후 내 얼굴을 보신 선생님은 오른쪽도 조직 검사해 보는 게 좋은데 너무 힘들어하시니 결과 나오는 거 보고 이야기하자고 하셨다.


집에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고, 가슴은 처치 후라 거즈로 덮여 있어 짝짝이 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검진 후 심각한 병에 걸린 인물들은 하나같이 답답하다며 가족에게 알리고 함께 이겨나가야지 왜 숨기는지 모르겠다고 호기로운 발언을 하던 나는 남편에게도 바로 말하지 못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더니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니 머릿속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고,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유방암, 유방암 조직 검사,  조직 검사 결과, 유방암 초기 증상, 맘모톰 수술, 유방외과 유명 의사, 유방암 병원...


이미 수많은 유방암 관련 검색어로 나는 반은 환자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갔고 아직 어린 두 아들이 불쌍해져 눈물이 났다. 언젠가 남편에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혹시 우리 둘 중 누가 먼저 떠나든 두 아들이 20살 될 때까지는 재혼하지 말자. 안 그래도 예민하고 까칠한 녀석들인데 새엄마나 새아빠 눈치 보면서 클까 봐... 그냥 우리가 힘들어도 품고 키우자. 난 자신 있는데 오빠는 혹시 모르니 내가 '아들이 20세 되기 전까지 재혼금지'라고 유언으로 남겨야겠다. ㅋㅋㅋ"




설 연휴가 끼어 검사 결과가 평소보다 더 늦어진다고 하셨고 드디어 결과일이 다가왔다.

"다행히 악성은 아니에요. 아직은 지켜봐도 되겠지만 6개월 후에 다시 검사해 보시죠."

"네. 감사합니다."



다행히 악성은 아니고, 당장 오른쪽마저 조직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안도를 했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40대가 넘어가니 지척에서 부인과 쪽으로 안 좋은 사례들을 많이 봤기에 걱정이 됐다. 비록 1년에서 6개월 추적관찰로 검진 기한이 당겨졌고 딱히 예방할 방법도 없지만 정기검진이라도 잘 받아야겠다.


그리고 다시 6개월 후.

검사실에 들어서자마자 조직검사에 필요한 생검 총이 보인다. 다시 무서워진다. 오늘은 오른쪽 조직검사를 해야만 하나? 마취주사, 총소리, 검사  상처가 아물  아팠는데... 너무 싫었다.


선생님께서 지난 검사 결과를 꼼꼼히 보신다. 검사  위치와 크기를 확인하고 초음파로 검사 결과를 보고 비교해 주시며 혹이  생기고 조직이 치밀하단다. 오른쪽1.1센티 혹이 있는데 아직은 지켜보자조직검사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셨고 다음 정기 검진  보자고 하셨다. 이게 뭐라고 기분이 좋아졌다.



퇴근 후 남편이 내 기분을 살피더니 한 마디 던진다.

"검사 결과가 좋은가 봐? 기분이 좋아 보이네."

"응. 결과는 더 나빠지지 않았고 다음 정기검진 때 오라고 하셨어. 조직검사 안 해서 기분이 좋은 거야."

"다행이네. 검진  받으면 괜찮을거야."


계속해서 정기검진 받고  악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겪어봐야 안다고 했던가, 일이든 사람이든 내가 겪고  상황을 직면해 봤을 때야 비로소  속이나 사람을 이해할  있게 되고 깊이 알게 되는 거겠지. 아직 겪지 않은 일에 대해 어설픈 조언이나 위로는 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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