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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아들 엄마는 녹음기가 필요합니다.


첫째 아들이 다니는 논술학원은 매일 15분 정도 문해력 숙제가 있다.

뒤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오느라 밀린 숙제를 제출했더니 선생님께서 숙제 확인  고생했다고 칭찬해 주라는 메시지를 남기셨다.

평소 같으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답변을 남기지만 

이번에는 나 자신을 칭찬하는 답변을 남겼다.  


"밀린 숙제한 00만큼 숙제하라고 백만 스물두 번째 말한 저도 스스로 칭찬합니다~^^"


메시지 확인은 하셨는데 답변이 없다.

'이 엄마 왜 이러지?' 싶어 선생님도 당황하셨나 보다.


초춘기, 사춘기 아들, 연년생 아들......

한 두 번 말해서 듣는 법이 없다.

아니다, 먹을 땐 재빠르다.

냉장고 문짝이 아직  떨어지고 있는 것도 신기하고, 역시 가전은 국산이라며 우리나라 전자 기술력을 인정하게 된다.



"숙제해라, 옷 입어라, 샤워해라, 양치해라, 학교 가방 챙겨라......"

"숙제했니? 옷 입었니? 샤워했니? 양치했니?, 학교 가방 챙겼니?......"



거짓말 안 하고 10번 이상은 말하고 확인해야 그때만 잠깐씩 한다.

집중해서 30분, 1시간이면 끝낼 숙제를 잠잘 시간까지 끄는 걸 보면 천불이 난다.

똑같은 말을 계속하게 되니까 이제는 녹음을 해서 시간마다 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는 나도 지치고 듣는 아이들도 ""라는 기계적인 대답만 하고, "이것만 하고요, 3분이면 끝나요, 이것까지만 읽고요"라는 말은 후렴구처럼 붙는다.



시간을 정해주고, 분량을 줄여주고, 옆에 앉혀 놓고 시켜야 그나마 제시간에 끝내는데 

엄마도  일이 태산인지라 

언제까지 그렇게 봐줄  없는 노릇이다.


방학 동안 자기 주도 학습은 아직  일인이라 여겨졌고, 우선 학습 습관 형성을 위해 애를 썼다.

그날 해야  숙제나 공부를 적어주고 스스로 체크해가면서 확인하도록 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밀리기 시작하니 체크도  하게 되는 일이 빈번했다.

단기간에 쉽게 잡힐 습관은 아니니 장기전으로 돌입해서 자리 잡아가도록 전략을 바꿔야 했다.


"그날 끝내야 할 숙제와 독서는 꼭 하기, 10시에는 취침 준비"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 효과적인 복습 시간,  일을 끝낸 후의 장점들은 알려줘도 결국  귀에  읽기이고, 잔소리  뿐이다.



요즘 들어 먼저  아들을 키우신 둘째 담임선생님이 상담할  하신 말씀이 자꾸 생각나고  위로가 된다.

"전 아들 엄마는 가산점 주고 시작해요. 남자, 여자아이 다 지도해 보지만 아들 엄마는 훨씬 힘들어요.

00 같은 아들이 저희 집에도 있답니다. 사춘기 때는 먹을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주시고 그냥 두세요. 옆집 아들이 잠깐 우리 집에 와서 지낸다고 생각하세요. 시간 지나면 다시  아들로 돌아옵니다."


둘째 학교 생활 상담 전화가 사춘기 자녀를  학부모 교육으로 끝났지만 가장 인상 깊고 도움이 되었던 상담으로 기억에 남는다.


"아들 엄마, 연년생 아들, 아들 셋 엄마들은 가산점 제도는 필요하다."

어디에 쓸지 모를 가산점이지만 정말 아들 엄마는 쉽지 않다.


이제 진짜 실전 돌입 시기인데 어떻게 헤쳐나갈지,

'사춘기 자녀 엄마는 종교가 없으면 주방 싱크대 위에 물이라도 떠놓고 빌어야 내가 버틸  있다' 선배 엄마의 말이  와닿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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