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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열심히 놀아야겠다 #2

나이 듦에 대하여


8월 말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물개 가족답게 호텔 선정의 기준은 수영장 유무가 가장 중요하다. 이번 여행에서도 호텔과 풀빌라에서 물개들은 1일 2 수영을 하며 원 없이 물과 함께 했다. 운동 마니아인 남편은 호텔에 가더라도 수영, 피트니스, 사우나하러 다니기 바쁘다. 그런 남편이 컨디션 난조를 보이더니 상비약을 찾고, 비타민제를 털어 넣어도 아파서 홀로 쉬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10년 이상된 여행 메이트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났기에 남편은 약기운에 의지하며 남은 일정들을 힘겹게 소화했다. 피곤해 보인 적은 있었으나 여행 중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새벽 비행기, 난기류, 부족한 수면 등 이유는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 같지 않은 체력과 나이도 무시 못하겠지... 그럼에도 그동안 운동한 보람이 있어서인지 잘 버텼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내가 중학생  날씨 좋은 주말 점심으로 엄마가 김밥을 싸셨다. 아빠는 김밥   도시락에 담아보라며 이웃 친구분께 전화를 거신다.

"날씨 좋은데 놀러 가세."


그렇다. 아빠에게 여행은 일상이었고 떠날 이유는 늘 충분했다.

그냥 날씨가 좋아서, 김밥 싼 김에 소풍 가듯, 지역 축제를 보러, 더우니까 계곡으로, 단풍이 지기 전에 산으로, 눈 구경은 강원도로...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친정엄마는 아빠가 들어 놓은 각종 계모임에 참석해야 했다. 그중 문제가 되는 모임이 있었으니 바로 부부동반 모임이었다. 2명분의 여행 회비를 납부했고 예약이 된 상황에서 엄마 혼자 참석하자니 여러 면에서 애로사항이 발생했다. 다행히도 오랜 시간 함께했던 멤버들은 엄마가 외롭지 않게 잘 챙겨주셨고 배려해주신 덕분에 엄마는 아빠 없이 그 모임을 이어나가셨다.

모임 여행 중 일본은 시집 안 간 막내딸과 다녀오고, 중국은 이모, 설악산은 작은 엄마...

여행마다 엄마의 여행 파트너는 바뀌었지만 아빠가 남겨주신 엄마를 위한 선물을 하나씩 풀어가셨다.


이제 곧 일흔을 앞둔 엄마는 여행 모임은 점차 줄어들고 자식들도 저마다 살기 바쁘다며 홀로 지내시는 엄마를 모시고 여행 가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됐다. 아픈 곳은 늘어나고 기력도 쇠하여 서울에 있는 자식, 손주들 보러 오는 것도 쉽지 않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서서 함께 가자고 해야 떠날 수 있는 엄마인데 아직 건강하고 다리가 성할 때 더 많이 모시고 가야 하는데 이 역시도 실행은 어렵다. 휴가를 맞추기도, 아이들 학원 문제도 핑계가 많다.






시어머님 무릎 상태가 더 이상 주사 치료로는 안된다며 인공관절 수술을 권유받으셨다. 연세도 많으시고 지병도 있으셔서 수술 예후가 좋지 않단다. 어머님은 그동안의 무릎 통증이 심하셨던지 수술을 강행하시겠다는 의지를 보이셨다. 한쪽 무릎 수술, 그리고 2주 후 다른 한쪽 무릎 수술로 한 달 입원, 그 후 몇 개월이 될지 모르는 재활 기간. 수술 전 어머님을 모시고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하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에 여기저기 알아봤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론적으로 불발됐다.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 '내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 맘 껏 다니고 싶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빠 돌아가시고 혼자되신 엄마, 연로하시고 다리가 아파서 일상생활이 불편한 어머님, 그리고 이제 건강을 자랑하지 못할 나이에 접어든 우리 부부.


건강하다는 전제하에 내가 주체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날을 헤아려보니 60대 중반까지 보더라도 20년이 채 남지 않았다. 지나온 시간 돌아보니 40대 중반이 되어 있었고,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쏜 화살처럼 빠르게만 가고, 두 아들 입시가 끝나면 50대 중반이 되어 있을 생각을 하니 더 열심히 놀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지구에 여행 온 이상 후회 없이 더 열심히 대한민국 구석구석, 세계 곳곳을 누비는 꿈을 꾼다.


나의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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