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평 Jan 26. 2020

막내 연구원의 사정

내가 연구원이 된 이유


"특정한" 일을 하는 것으로 운명 지어져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영유아기를 거치면서 성향을 정립하고 아동기를 거치면서는 선호를 가지며 청소년기를 거치면서는 좀 더 확실한 호불호와 더불어 기준 같은 것을 갖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는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판단하기 시작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실제로 이 세 가지는 좋은 일을 선택하기 위해 매우 효과적인 기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기준과 과정을 차치하고 개인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개인의 환경, 그중에서도 일차 집단이다. ‘태어나보니 아빠가 이재용’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선천적인 부와 평안에 대한 동경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조건과 환경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을 테다. 그렇다면 나는 스물여덟 살이 된 지금 어쩌다 연구원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태어나보니 부모가 멀쩡히 있었다

그렇다. 부모가 존재했을뿐더러 사지도 멀쩡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꽤 훌륭한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했더랬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다니는 청년들이 많았던 시절에 대학을 졸업했으니, 적어도 배를 곯진 않고 자랐다는 말일 것이다. 엄마가 김태희거나 아빠가 방탄소년단은 아니었어도 ‘뒷배가 아주 없진 않은 배운 청년들’이었던 거다. 심지어 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는 아빠가 승승장구했다. 엄마는 부동산 좀 볼 줄 아시는 사촌 올케를 둔 덕에 우리 집은 이사만 한다 치면 흑자를 봤다.


그렇게 나는 신도시 중에서도 '마용성'의 집값에 버금간다는 한 동네에서, 나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부모의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내 기준에는) 아낌없이 받으며 풍족하게 자랐다. 이런 환경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따금 내 행복만을 위한 선택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난 잘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유럽으로 훌쩍 떠나버렸으며, 학교를 떠났다가도 돌아왔고, 여러 하고 싶던 일을 얻어내기도 했다.


반면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분명 있다. 자신의 행복을 선택하고 싶어도 인생에 그런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당장의 생존을 위한 선택지만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내가 그런 유형에 속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부모의 운과 노력, 그리고 그들이 속해온 국가와 사회, 환경의 덕이 팔 할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자유로움을 당연하게 여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권이 싫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특권’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나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졌다. 복수전공으로 사회학을 선택했다. 대학교 2학년부터 공부한 사회학은 재미있었다. 인간의 행위와 삶, 다양한 분과의 사회에 대한 통찰. 그리고 올바르지 못한 사회를 정의롭게 바꾸려는 행동 의식. 이것이 내가 교과서와 강의실에서 본 사회학자와 사회학의 가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회 불평등과 인간의 일탈행위에 대한 담론 두 가지가 내 머리와 가슴을 뜨겁게 했다.


학부 졸업 무렵엔 늦게 재미 붙인 공부가 아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연구원이 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고, 좀 더 알고 싶을 뿐이었다. 해서 대학원에서 일탈과 범죄의 사회학(이하 범죄사회학)을 공부했다. 범죄사회학(犯罪社會學, criminal sociology)이란 인간의 일탈과 범죄 행위 또는 현상을 행위자가 속한 사회의 환경과 맥락, 구조, 상황 등으로 설명하는 학문으로 사회학의 분과에 속한다. 예컨대 사회적 유대(인간관계)가 약할수록 범죄를 저지른다든지(사회통제이론), 특정 행위에 대한 타인의 부정적 반응으로 인해 받게 된 범죄자라는 낙인이 재범에 영향을 미친다든지(낙인이론) 하는 이론들을 증명한다.


‘범죄’가 들어가는 학문 중 그나마 대중에 인지도가 있는 학문은 범죄심리학(犯罪心理學, criminal psychology)일 것이다. 해당 학문과 연관 있는 유명 프로파일러나 교수가 범죄 탐사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할뿐더러 범죄자의 심리를 꿰뚫는다는 것 자체가 지닌 매력 덕분이다. 범죄심리학은 범죄 행위자 개인의 심리적•환경적 특성을 분석함으로써 범죄 예방과 수사 등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응용학문이다. 두 학문은 분석 단위(개인과 사회)부터가 크게 다른 것이다.


대학원 입학 당시 나는 범죄사회학 중에서도 대상으로는 아동•청소년에, 유형으로는 사이버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지도 교수님은 이 분야의 대가(大家)이면서도 지도 학생의 졸업 후 미래까지 고민해주시는 참 스승이셨다. 빈말이 아닌 진실이다. 그래서 난 졸업 전까지 내 이름이 들어간 세 편의 학술지 논문을 얻을 수 있었다. 졸업논문에 있어선 나보다 더 열과 성을 다한 꼼꼼한 지도를 받은 학생은 없을 것이라 자부할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온실 속 잡초처럼 안전하고 치열하게 졸업했다. 다시 사회로 나갈 채비를 마친 참이었다.


연구원은 처음이라

석사학위를 받고 처음으로 얻은 직함은 ‘연구원’이었다. 다만 지금처럼 정부출연연의 것은 아니었고, 리서치 회사의 것이었다. 내 전공에 가장 부합하는 정부출연연은 딱 하나 있다. 때마침 졸업 시즌에 공고가 올라와 지도 교수가 같은 대학원 동기와 함께 지원했다. 결과가 예상이 가는가? 동기는 최종 합격을, 난 무려 서류 탈락이라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얻게 됐다. 타격감이 엄청났다. 평소 좋아하는 친구였음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의 참뜻을 이해하며 선조들의 지혜에 감복했다.


다른 연구원은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차선책으로 잡코리아에 들어가 공공 조사를 하는 리서치 회사를 찾았고 대충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덜컥 합격했다.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공적인 일을 할 것이라 외치고 다녔던 나는 그 꿈을 잠시 접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고학력 백수가 되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리서치 회사를 6개월 동안 다니게 된다.


불행하게도, 지루했다. 제안 서류를 구비하고 확인하는 등의 행정업무가 95%에 육박했다. 하도 많은 클라이언트를 다뤄 머릿속이 짬뽕이 되기 일쑤였다. 호기심 많은 사회학 학사가 오기엔 너무나도 좋은 직장이었지만, 본인의 세부 전공에 대한 애정도가 높은 따끈따끈한 사회학 석사에겐 적합하지 않은 일터라고 느꼈다. 아쉬웠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선택했다. 더 늦기 전에 원래 가려던 길을 다시 가보자 용기를 냈다.


연초에 지원했던 그 연구원은 아니었지만 한 연구원에 합격했다. 드디어 연구원의 연구원이 되었다. 사회학, 그중에서도 범죄사회학도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나는 매일을 수양하는 심정으로 배워나가고 있다. 다만 내가 애당초 꿈꿨던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 일’과는 더 가까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연구원은 처음이라’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니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그대에게 앞으로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줄씩 적어주시길 특별히 부탁드린다. 그렇다면 매우 큰 동력이 될 테다. 모쪼록 당신이 앞으로의 이야기들도 거기에 그대로 앉아 흥미롭게 들어준다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구원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