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평 Jun 26. 2020

야 너네 연구원 어떠냐?

장점인듯 장점아닌 단점같은 너어어


사실 난 숨겨진 이직 왕이다. 정확히 말해 전직 전문가랄까. 대학교를 갓 졸업한 스물넷엔 꽤나 유명했던 신발 브랜드의 경영지원팀에서 일했다. 그러다 안타까운 한 사건으로 인해 퇴사를 결심한다. 덕분에 일 년간 지속해온 주경야독 생활을 청산하고 학교에만 파묻혀 있게 되었다.


매일 밤낮없이 읽고 싶은 것만 읽고, 하고 싶은 공부만 하는 일상은 지상낙원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호시절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스물일곱,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시험 삼아 보러 갔던 리서치 회사에 덜컥 합격한다. 6개월쯤 지나니 여기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싶었다. 한 발짝을 더 디뎌 지금의 직장에 도달했다.


몇 번 일자리를 옮기면서, 운인지 실력인지는 몰라도 나의 구직활동은 과거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일터는 바꾸어도 과거의 인연은 이어갔다. 구 직장 동료들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묻곤 했다. "야 너네 연구원 어떠냐?" 이 글은 그에 대한 답이다.




첫째, 노동자로서 존중한다


공공기관이 좋긴 좋다. 노동법에서 규정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지켜지고 있다. 노동분야의 달인인 아버지는 연구원에서 가져온 근로계약서를 보고 처음으로 합격(!)을 외쳤다. 내가 계약서를 들고 귀가하는 첫 출근날이면 그는 빨간펜 선생님으로 변신해 여기가 틀렸고 저기가 틀렸다며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 안타깝지만 그가 공부한 이론과는 다르게,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곳이 우리네 현실이었다.


첫 회사에선 야근의 대가로 저녁식사 비용 6,000원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9시까지 추가 근로를 한다는 전제하에 주어지는 것이었다. 부정한 계산법에 화가 나던 것도 잠시, 이내 나 대신 정신을 승리시키기로 했다. 두 번째 회사에선 밤 열두 시가 넘어 퇴근하면 밥값 6,000원에 택시비 20,000원을 더 받았다. 늘어난 만원 두장에 감지덕지하던 어느 날, 나 자신이 참 별로라고 느껴졌다.


짐작했겠지만 이곳에선 추가 근로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보상휴가제도를 사용한다. 이외에도 육아휴직, 병가 등 휴가 제공, 직원 채용 등에서 노동법을 훌륭히 준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좋은 직장의 첫 번째 계단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직장만이 오를 수 있다. 이 점에서 내가 현재 일하는 이곳은 일단 합격이다.



둘째, 연구자로서 존중(하려고)한다


‘자율성’은 연구자에 대한 존중 정도를 측정하는 좋은 척도라고 생각한다. 우선 이곳에서는 자신의 평일 시간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조금 심한 케이스긴 해도 시공간의 제약이 즈언혀 없이 일하는 분이 있을 정도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선택형 근로시간제 도입 때문이다.


코어 타임이라고 불리는 의무 근로 시간대(월~목 10~15시)에만 필수적으로 일하고, 월별 필수 근로시간(일 8시간 x 월 근로일)만 채우면 된다. 그 밖의 근무시간은 개인이 알아서 조율한다. 오전 10시 출근, 오후 3시 퇴근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간을 충분히 채웠다면 금요일에 연가를 쓰지 않고도 그냥 출근하지 않는다. 물론 눈치를 보지 않도록 하는 바람직한 분위기도 한몫한다.


‘연구능력 개발을 독려하는 분위기’도 연구자로서 존중받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이곳은 여러 제도를 도입해 연구직 직원들의 연구력을 높이기 위해 애쓴다. 직무 관련 교육 프로그램은 때 되면 알아서 떠먹여 주고, 국내 수학 병행이나 연구 휴직 등도 연차가 쌓이면 가능하다. (단, 가장 필요하다고 보는 개인 논문 작업을 장려하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하더라. 아쉬운 일이다.)


무튼 내게 중요한 것은 많은 부분이 연구원 직급에도, 특히 비정규직 연구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이 글을 쓰기 전, 다른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대학원 선배와 동기, 많은 연구기관에서 일해본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연구원 생활에 대해 비교해봤다. 그 결과 우리 기관은 (다른 기관에 비해) 확실히 연구원 직급에 대한 대우가 좋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연구원과 박사에게 보장되는 지원제도가 다른 곳도 있다더라. 보고서에 연구원들의 이름을 싣는 기관은 여전히 많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곳에서는 (조직 차원에서) 연구원이 (적어도) 단순 보조 인력으로 여겨지지는 않는 것 같다. 흠, 단서가 자꾸만 붙는 것으로 보아 아직 갈 길이 꽤 남았다 싶지만.



셋째, 부하직원/협력자로서 존중받(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두 분의 박사님과 집중적으로 일해보았고, 그 외 열몇 명 남짓한 박사님들과 소통해보았다. 그러므로 이는 매우 한정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라는 것을 미리 밝힌다.


우선 기본적으로 상호 존댓말을 쓴다. 공공부문 노동자에겐 이런 문화가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밖(사기업)에 나가보면 그렇지 않다. 저 사람이 내 삼촌도 언니도 아닌데 얼마나 봤다고 반말인지 모르겠는 경우가 꽤 있다. 주고받는 말씨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관계는 그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실장님이나 박사님들에게 ‘고마워요/감사합니다’, ‘미안해요/미안합니다’ 같은 표현을 자주 듣는데, 들을 때마다 소소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연구원과 박사의 관계가 단순한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라고는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연구에 필요한 부분을 분담해 협력하기 때문에 상호보완을 하는 협력자 또는 동료쯤으로도 여길 수 있다. 물론 주어진 업무의 경중이 다르지만 연구에 참여하는 모든 연구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때문에 연구원은 업무 지시를 받는 동시에 같이 논의하는 입장으로서 더욱 존중받을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요즘 함께 일하는 연구책임자 박사님은 회의를 하거나 논의할 때마다 의견을 많이 묻는다. 그리고 듣는다. 알아서 하라며 전적으로 맡기는 때도 많다.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한 것인데도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물론 영혼을 빼놓지 않은 채로. 나는 이 분을 통해 연구원에서의 바람직한 협동 관계에 대해 배우는 중이다. 좋은 기회를 얻었다.

다음 웹툰 <슬프지만 이게 내 인생>


넷째, 인간으로서 존중한다


사실 이 글을 통해 가장 하고 싶던 이야기는 이것이다. 외모로 평가받지 않는 일은 일터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첫 직장을 이 문제로 퇴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사의 외모 지적과 품평에 질겁하고 퇴직했다. "ㅇㅇ이는 피부관리도 열심히 하던데 너는 왜 아무것도 안 하니"는 전쟁의 서막 같은 멘트였다. 곧이어 나의 사지에 대해서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살이 쪘니, 어휴 몸매 관리 좀 해라"라는 말이 그것이었다.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끝은 아니었다. 놀라운 서사의 피날레는 이 말이 장식했다. "이게 다 널 예뻐해서 하는 말이야, 괜히 여성가족부 같은 데 신고하지 말고." 나는 그를 두려움이라는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 놀라운 것은 이런 사건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외모 가꾸는 일을 권력 또는 능력의 일종으로 인식했던 자신이다. 퇴사 과정을 거치며 그를 비난했지만, 그것은 망언이 아닌 행실에 관한 것이었다. "살이 찌긴 쪘지. 쪘는데 그 얘길 그 사람이 그렇게 할 건 아니지 않냐" 같은 식이었다. 전 생애에 걸쳐 꾸밈 노동에 대해 학습해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이 그렇듯 바비인형 머리를 빗겨주며 아동기를 보냈고, 친구가 학교에 가져온 클린 앤 클리어 훼어니스를 발라보며 청소년기를 시작했다. 대학생 땐 시험 때문에 잠은 한 숨도 못 자도 풀메는 하고 갔다. 이 시간들은 몸에 고스란히 쌓여, '어쩌면 그 사람의 말이 일리 있다'라고 내심 생각하는 나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세상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편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너머로 지켜보던 것들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매일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뻑뻑한 눈에 억지로 렌즈를 욱여넣는 것도, 피부가 가렵지만 두터운 파운데이션 때문에 시원하게 긁지 못하는 것도, 일하는 도중 화장이 떴을까 계속해 거울을 보는 것도, 화장을 고치기 위해 무거운 파우치를 들고 다니는 것도.. 모두 나의 소중한 시간과 체력, 정신을 쏟기에는 아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을 할 때만이라도 ‘예뻐 보이기 위한 노력'을 놓기 시작했다. 처음엔 화장한 얼굴 위 안경을 썼다. 눈은 더 이상 건조하지 않았다. 이 과정은 출근 전 로션 하나면 충분한 단계까지 나아갔다.


게다가 운이 좋았다. 지금 함께 일하는 분들은 나의 달라진 얼굴에 대해 간섭하지 않았다. 잘 치장하는 것이 능력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이곳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 업무력만이 능력이었다. 눈은 모양이 어떻든 잘 보이기만 하면 오케이, 입술은 색이 어떻든 맛있는 걸 잘 먹을 수 있으면 오케이였다. 이 경험을 통해 내 겉모습이 누군가의 눈을 편안하거나 불편하게 할 장식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그를 존중하는 일과 다름이 없다. 물론 이는 무척 어렵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러니까 타인의 껍데기라도 그러려니 해보자는 것이다. 성별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겉모습과 타인의 시선의 관계에서 자유로워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다 보면 더 많은 일터에서 개인의 다양성은 조직의 창의성이 되고, 보다 나은 일터를 누리는 사람들도 더 많아질 수 있지 않을까.




방지턱을 놓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주로 좋은 점을 언급하다 보니 신의 직장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곳에도 이상한 사람과 사건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있다.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켜 동료 사이에서 회자되거나, 나아가 징계조치를 받는 인물들이 있으니까. 그러므로 위 네 가지는 우리 조직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부분은 아니다. 주변 동료만 해도 이곳에서 나와는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선배이며 조직에서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힘든 시간을 보고 들은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그 시간은 너무나도 고역일 때가 많았다.


직장인으로서의 먹고살기 힘듦은 어딜 가나 똑같은 것이 맞다. 또한, 이때의 힘듦은 앞서 언급한 장점들과 완벽히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노동자로서, 연구자로서, 부하직원으로서, 개인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같은 조직, 같은 시간, 같은 주변인이지만 그것들이 모든 사람에겐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명백히 설명하지 못하겠다. 그러므로 어려운 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중히 적어보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이를 감안해 글을 소화해주신다면 고맙겠다는 말로 글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대한스 민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