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라하는 몇 년 동안 안온 눈이 한꺼번에 오듯 눈이 많이 왔어요.
올 겨울 한국에도 눈이 제법 왔다죠?
이곳에는 국가비상사태로 스키장까지 폐쇄된 요즘이라 함박눈이 두껍께 쌓이니 어른들은 노르딕 스키를 신고 시내에서도 크로스컨트리를 즐기고 애들은 눈썰매 타느라 동네 모든.. 언덕배기가 바쁜 나날입니다.
프라하에 눈이 내리면 볼 수 있는 이런 광경이 예전 그때도 그랬다는 걸 우린 아래 그림을 보면서 또 알 수 있습니다. 역시 프라하 국립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하나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요.
Jiří Jilovský(1884-1958)
이곳은 익숙한 프라하성이 멀리 보이고 오른편에 루돌피눔이 있는 광장 교차로입니다.
루돌피눔은 작가가 태어난 해인 1884년 지어진 건물이에요. 화가가 그림을 그린 시점에는 30년 된 건물이었겠네요. 그 모습 그대로 지금은 137년째 멋진 클래식 공연장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
눈이 가득 덮인 광장에 트램과 눈썰매와 마차가 오가는 풍경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눈썰매를 즐기던 광장에는 지금은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요.
그림과 같은 뷰포인트를 찾긴 어렵지만 구글맵을 통해서도 작가가 어디에서 그림을 그렸는지 찾아볼 수 있구요. 이렇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의 프라하를 볼 수 있는 게 재미있습니다.
이 그림을 눈에 담은 첫 번째 이유는 눈을 표현한 작가의 붓터치였습니다.
온통 하얗게 눈 덮인 광장을 표현한 흰색과 회색, 아이보리와 아주 조금의 프러시안블루..
붓끝에 미묘하게 섞인 물감의 색을 아주 섬세하게 눌러 담았구요. 프라하 성도 회색의 점묘로 덧칠하여 그 멀리 보이는 형상을 잘 담아주었거든요. 그 앞을 지나는 트램도 프라하의 상징이 되어 이곳이 어디인지 잘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 역동적인 움직임만으로도 그들의 표정이 보일듯하구요.
브뤼겔의 그림 속 사람들처럼 다양한 그림 속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쫓아 들여다보게 되더라구요.
눈길에 넘어지는 아저씨,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눈썰매를 끌어주는 엄마, 그리고 눈길을 함께 걷는 다정한 연인들까지..
흰 눈을 표현한 점묘 기법 위에 사람들은 개미처럼 검정색으로 그려졌지만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정확한 동작을 그려내어 굉장히 자연스럽게 그림을 즐겨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과 비슷한 시기의 프라하의 겨울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어 함께 담아보았는데요.
중절모의 아저씨와 썰매를 끌어주는 엄마.. 그리고 흰 눈밭에 검정색으로 보여지는 사람들이 그림 속 모습과 아주 비숫하죠?
그리고 요즘도 여전히 체코의 엄마들은 아이를 썰매에 태워 끌고 다녀 줍니다.
오래된 사진에 있는 앞코가 둥근 나무 썰매도 산타클로스나 타고 다니는 모양인 줄 알았는데 여기선 여전히 그 모양 그대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도 용감하게 배를 아래로 깔고 눈썰매를 즐기는 체코의 아이들.
동네에서 너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볼 때마다 너무 귀여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전쟁통 같은 험난한 시절에 마스크 속 갇혀 지내는 꼬맹이들을 위해 하나님이 함박눈으로 온 동네를 놀이터로 만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눈썰매를 타며 눈밭을 구르는 아이들에게 '까르륵..'건강한 웃음이 넘쳐 납니다.
그리고 그 웃음을 들으니.. 저도 살 것 같네요 ^^
이 그림을 그린 작가 - 이지 일로브스키(Jiří Jilovský) 는 풍경화와 무대미술 등 다방면에 재능을 보였 체코의 화가입니다. 위에 소개드린 그림을 그릴 당시엔 프라하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스무 살의 앳된 청년으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 수 없던 시기였죠.
하지만 그는 격동의 1,2차 세계대전을 겪는 시기에 프라하에 살던 '유대인' 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전쟁 중에 나치에게 쫓겨 유대인 수용소 구역인 테레진으로 이동되었다가 나중엔 가족 모두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서 두 아들을 거기서 잃기도 한.. 슬픈 역사를 온몸으로 겪은 아픔이 있는 화가입니다.
혼란스럽던 세상에서 재능을 가진 사람이 견뎌야 했던 삶이 어땟을지.. 차마 가늠을 하기 어렵습니다.
ⓒ hada
ⓒ 1923년의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