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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샼호 Jun 16. 2023

나는 왜 스승, 멘토를 원했는가

배움에 대한 열망이었나, 의지하려는 나약함이었나

열흘이 넘게 흘렀다. 내가 ‘두 번째 거짓’과 처음 마주하게 된 날짜로부터 말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두 번째 거짓은 공익 제보를 한 사람과 그 제보를 들은 나, 그리고 위에 있는 하늘, 그리고 아래에 있는 땅이 알고 있다.

참고로 이 거짓을 먼저 접하고 제보자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진실로부터 도망친 자들이니 이 일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한 때, 나는 기나긴 어두운 터널 속에 오래 갇혀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처음에는 그 어두운 터널 속에서 만난 그 전자책을 얼마나 오랫동안 끼고 다녔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책을 쓴 저자를 ‘마음속 스승’이라 여기며 배움을 얻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길고 길었던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 나의 열망은 한 공익 제보와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일의 당사자이자 피해자가 억울한 마음으로 호소하면서 전달한 제보였기 때문에 그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제보대로라면 내가 마음속 스승이라고 여겼던 그 사람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겉은 선한 백색의 가면을 썼지만, 속은 완전히 시커먼 악마가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 제보를 접했을 때는 반신반의한 마음이었다. 내가 마음속 스승이라 여겼던 사람, 선한 스승이라 믿었던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추악한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억울함 가득 담아서 나에게 호소하는 제보자의 말은 나에게 남아있던 반신반의의 반쪽인 의심의 구름을 걷어내 주었다.


그렇게 첫 번째 믿음에 이어 두 번째 믿음까지 나를 배반하고 떠나버린 지금은 스승, 멘토에 대한 회의감이 생겼다.


요즘 나는 내가 스승, 멘토를 원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내가 찾은 새로운 길인 ‘돈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어서, 배움을 얻기 위한 열망 때문에 스승을 원했던 것인가.


아니면, 가 본 적 없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그 길을 먼저 간 멘토를 찾고 그 사람에게 의지하고픈 마음 때문이었는가.


어찌 되었건, 믿음에 대한 두 번의 배반을 경험하고 나서는 내가 이러한 일을 겪게 된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은 그 무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사람’ 공부를 시작하여 현재 하고 있다.


왠지 사람 공부가 돈 공부보다 먼저일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느낌에 몸을 실은 것이다.

그것도 있지만 스승이라 믿었던 그 믿음에 대한 배반을 두 번이나 겪고 나서 그 배신감이 유독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 과정에서 겪은 배신감과 허탈함이 돈 공부에서 사람 공부로 전환하게 한 계기가 된 셈이다.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이 진실은 현재 내가 알고, 공익 제보를 한 제보자가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천지지지여지아지‘. 하나도 아니고 무려 넷이 이 진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은 밝혀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일 말이 있다.


한 사람의 행복을 짓밟은 사람이 과연 행복을 운운할 수 있을까. 나는 그 가증스러움에 칼을 겨누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그 이상이 걸리든 상관없다. 그 가증스러움을 박살내고 스승이라 믿었던 그 사람의 하얀색 선함이 담긴 가면을 벗겨내어 저열하고 추악한 인성을 세상에 밝혀낼 것이다.


그것이 두려움과 무서움 속에서도 나를 믿고 공익 제보를 해 준 제보자에 대한 보답을 하는 길이기도 하고, 믿음에 대한 배반을 당한 나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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