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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들 속으로

발리에서 생긴 일 ep1

by 글짓는 목수

일상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인간은 여행을 떠난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别想太多了 就忘掉吧!” (그만 생각해 잊어버려)

“想忘就忘这能行吗?没那么容易嘛” (잊고 싶다고 잊혀지니? 그게 어디 그렇게 쉽니?)

“那我们就离日常记忆去旅游去吧” (그럼 우리 여행 가자. 일상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게)


그렇게 웬웬의 권유에 못 이긴 척 상하이발 발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가방도 싸는 둥 마는 둥 챙겨야 할 것들을 다 챙겼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때 같았으면 여행을 가기 한 달 전부터 여행 갈 준비에 들떠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돌아볼 곳과 여행루트 그리고 묵을 숙소까지 수시로 들여다보며 이미 여행이라도 간 것 같은 기분에 취해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귀찮을 뿐이다. 다행히 웬웬이 그 모든 스케줄과 여행일정을 다 준비해 주었다. 웬웬은 그때 무조건 시간을 비워두라고 했고 난 그저 그냥 짐만 챙겨 비행기에 몸을 싣기만 하라고 했다. 난 그냥 대충 입을 옷과 속옷 그리고 ‘발리’라는 여행지하면 떠오르는 바다의 이미지 때문에 수영복만 잊지 않고 챙겨 넣었다.


“终于结束了”(드디어 끝났다)

“真的? 恭喜恭喜, 那我们开始玩儿去咯” (정말? 추카추카, 그럼 우리 이제 어디 한번 놀아 볼까)


여행 전 토요일 오전까지 드라마 극본 원고를 마무리해야 했다. 늦은 오후 비행기에 타야 했고 웬웬은 이런 나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를 배려해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퇴고가 끝나지 않아 공항 대기실에 와서야 방송국에 원고를 실은 메일을 발송했다. 때맞춰 비행기 탑승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대기 없이 바로 First class로 가장 먼저 비행기에 입장했다.


비행기 엔진의 울림과 떨림이 점점 커지며 활주로로 나아갔다. 창 밖의 풍경들이. 1x, 2x, 3x배속으로 필름이 감기듯 점점 빠르게 지나간다. 어느새 연속되던 피사체들이 만들어 내는 화면이 사라지고 정지된 듯한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푸르름만 가득한 곳에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중력을 받는 몸과 중력을 거스르며 오르는 비행기 힘이 서로 부딪친다. 몸이 비즈니스 좌석 시트에 밀착되며 그 포근함에 스스륵 눈이 감겼다. 저기 땅 밑 희뿌연 미세먼지 속에서 갇혀있던 일상에서 멀어져 간다. 스스륵 눈이 감기고 안식이 찾아들었다.


“우아~”


얼마를 잤을까 내가 눈을 떴을 땐 창 밖에는 붉은 노을이 빛나고 있었다. 구름 위에 반쯤 걸친 태양이 두툼하게 깔린 구름 위를 비추었다. 구름은 마치 솜털 양탄자에 주황색 파스텔 물감에 물든 바다를 연상케 했다. 비행기는 점점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새어 들어오는 붉은빛이 창에 기댄 나의 얼굴에 쏟아졌다. 그 빛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비행기 창 밖의 차가운 냉기와 빛이 만든 온기가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다. 그 느낌이 오묘하여 다시 눈을 감았다. 그 기분을 더 깊이 느껴 보려고…


”霈云!,你醒了?“(페이윈, 일어났어?)


그때 웬웬이 나를 불렀다. 그녀는 한쪽 귀에 이어폰을 빼어내 손에 들고 있다. 그녀의 좌석 테이블에는 태블릿이 놓여 있었고 화면에선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 영상은 다름 아닌 내가 극본을 쓴 드라마였다.


“哎呀,你又看这个嘛?” (아이휴~ 너 또 그거 보는 거야?)

“我觉得这场面可真精彩, 不知道你怎么想出这些, 厉害厉害” (이 장면은 다시 봐도 너무 환상적인 거 같아, 넌 어쩜 이런 생각을 다 해내니,정말 대단해)


나는 판타지 드라마 작가이다. 최근에 방영 중인 나의 판타지 드라마가 세간에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조금 전 공항에서 최종화까지의 모든 극본을 탈고해 방송국 PD에게 보냈다.


“可能下一集这男女主角会有亲亲吧? “ (아마 다음 화에선 남녀 주인공이 키스를 하겠지??)

“哈哈 果然是你呀”(하하 역시 너답다)




드라마 속 두 남녀는 밤이 찾아들면 꿈을 꾼다. 그런데 그 꿈속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는 남녀가 꿈속에서 서로의 삶을 지켜본다.


타인이 자신보다 자신의 삶을 더 많이 알고 있다. 타인은 꿈속에서 상대방의 삶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관조할 수 있다. 1인칭이 아닌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본다. 문제는 서로 다른 국적과 환경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디테일한 내막을 알 수 없다. 왜냐 그 상대방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꿈속에는 자막도 없고 구글 번역기도 돌릴 수 없다. 마치 자막 없이 보는 외국영화 같다. 더욱이 영어도 아닌 제3 세계 외국어다. 답답하다. 꺼버리고 싶다. 하지만 꿈은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그저 가만히 보고 들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드라마를 TV스크린을 통해 보는 시청자에겐 자막 서비스가 제공된다. 시청자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내가 직접 경험하는 세상(1인칭)과 타인이 관조하는 나의 삶(3인칭 관찰자)과 그 둘을 모두 드려다 보는 시청자(전지적)가 느끼는 세상은 모두 다르다. 한 가지 사건은 세 가지의 관점에서 세 가지의 사실을 가진다. 그저 자신이 아는 것만이 진실일 뿐이다.


남주와 여주는 언어적 한계로 인해 정황적인 추측과 짐작만으로 상대방의 삶을 알아간다. 중요한 건 서로가 보고 있는 상대방의 시점(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 오랜 시간 꿈을 꾸어 왔지만 서로의 시점이 드러나는 장면은 절대 꿈속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꿈속에서 시계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서로가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를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은 시간을 의식하지만 꿈속은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 남녀의 시점이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배경적 정황적으로 두 남녀는 분명 비슷한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출현하는 주변 인물들과 사물들이 현대적이다. 남녀 모두 정확한 모델명은 알 수 없지만 스마트 폰을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두 남녀가 동시대를 살고 있음을 의미했다. 정확한 시간차 모를 뿐이다. 이건 시청자들도 또한 알 수 없다.


드라마 속 남녀가 같은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는 마주치지 않았다. 분명 같은 장소였다. 이런 시간차로 남녀는 여러 번 서로를 비켜간다. 그러다 두 남녀가 똑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웬웬은 그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인 두 남녀의 첫 물리적 만남, 즉 똑같은 시공간에 놓이는 순간을 보고 있었다. 보통 이런 장면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다음 주 이 시간에…>


자막과 함께 시청자의 한숨 섞인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며 다음 주 시청률을 미리 확보한다. 수많은 영상 콘텐츠가 난무하는 세상, 일주일 동안 그들을 잡아둘 만큼의 긴장감과 여운을 남겨야만 한다. 이건 드라마 작가가 갖추어야 할 아주 중요한 자질이다.




“以后发生什么事呢?” (이후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거야?)

“不告诉你 하하” (안 알려줘 하하)

“哎呀,别这样嘛 拜托 告诉我嘛”(야~ 이러기야? 제발 좀 알려줘)


웬웬은 다음화의 내용이 궁금해 죽을 모양이다. 그렇다고 다음화의 내용을 누설하는 건 방송사와의 계약 위반이다. 작가가 돈을 받고 일을 하게 되면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팔린 글의 소유권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창조했지만 그 소유는 내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곤 한다. 만약 나의 창조물이 시원찮으면, 여기서 시원찮다는 의미는 독자 즉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만든 창조물을 그들의 구미에 맞춰야 한다.


신이 만든 세상을 인간들이 바꿔간다고 해야 할까? 세상의 주인은 신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 되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주객이 전도된다. 작가가 원하는 스토리와 시청자가 원하는 스토리는 다를 수 있다. 문제는 작가와 시청자 사이에 돈이 엮이면 원하는 스토리만 쓸 수는 없다. 이상적인 세상을 원하지만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은 이유다.


신과 인간 사이엔 또 다른 신이 존재한다. 그건 바로 돈이다. 그리고 돈은 나의 욕망을 대변하고 또 그것을 실현시켜 준다. 언제 실현시켜 줄지 모를 신에게 의지하느니 돈에게 의지하는 편이 더 낫다. 그래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나온 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신에게 기도하며 간절히 원하는 것 또한 재물이 아니던가.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데로만 쓸 수 없다.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그렇게 세상과 현실의 제약에 의해 변해가고 나중에는 그 원형을 알 수 없는 이야기로 흘러가 버린다. 그런 이야기는 사실 나의 기억이 아니기에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인 적은 없다. 나의 극본은 거의 손을 대지 않고 99% 반영된다. 1%는 스토리 전개나 내용과는 상관없는 맞춤법 수정이나 상황에 맞는 어휘의 수정 정도이다.


프로듀서도 시청자도 모두 반응이 좋다. 이제 드라마 방영 초반인데도 시청률이 10%를 넘어섰다. 아직까지 시청자들은 나를 잘 따라오고 있다. 나는 단지 이런 반응이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나는 내가 창조한 이야기가 변형되지 않기 바란다.


이미 모든 이야기는 좀 전 상하이 푸동 공항에서 마무리되었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메인 프로듀서만 알고 있다. 아직 그에게서 아무런 회신이 없다. 뭐 항상 그랬다. 매회 극본을 보내면 감사하다는 짧은 답장 이외에 극본에 대한 그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감사 답장이 없다. 조용하다. 마지막이 너무 셌나?


“你看,你看”(와우!~ 저기 봐)

“终于到巴厘岛了”(드디어 발리구나)


칠흑 같은 어둠만이 가득하던 창 밖 아래에서 점점이 별빛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 별빛 올려다보다가 이제 반대로 내려다본다.


발아래 별빛들은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많아지고 밝아진다. 마치 별들이 모여있는 은하수처럼…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며 점점 그 별빛으로 다가간다. 별빛에 다가갈수록 별빛은 불빛으로 불빛은 할로겐빛, Led빛, 네온빛, 형광빛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것들은 스스로 빛나는 별이 아니었다. 인간이 만든 전기에너지가 별빛으로 둔갑한 것이었다.


세상에는 많은 빛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가짜다. 땅 위에 수많은 눈부시고 현란한 빛들은 우리를 속이려는 것들이다. 세상에 모든 전원을 내려버리면 그땐 아마 진정한 빛이 드러날 것이다. 스스로 빛나는 빛만 남을 것이기에…


“要有光, 就有了光。。。”(빛이 있으라 하심에 빛이 생겼다…)

“霈云~ 你说了什么?”(페이윈~ 너 방금 뭐라고 했어?)

“没有,没什么”(아니 아무것도 아냐)


지금 나는 그 눈부시고 현란한 빛들 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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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