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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Apr 09. 2020

신동진쌀, 어떤 이름은 말이야

호명하고 불리우는 모든 브랜드에 대하여

당신은 알고 있나요?

그 쌀. 그 이름.




 친구네 작업실에서 글을 쓰기로 한 날입니다. 사과 한 알, 배 한 덩이 소박하게 들고 작업실에 도착했어요. 

 "띠링~"

 친구는 부엌에서 빙긋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어, 왔어? 한 5분만 있으면 밥 다 돼!"

 달그락달그락 밥 짓는 소리가 났어요. 주방에서 압력밥솥에서 한 김 식히던 친구는 얘기했어요.

 "밥 많이 먹어도 돼. 쌀이 왔거든!"


 그 얘길 뒤로하고 화장실에 가 손을 씻었습니다. 학교종이 땡땡땡을 부르면서 비누거품을 이리저리 내는 동안 그냥 그 저녁이 소중하다고 느꼈습니다. 밥 한 끼 뚝딱-뚝딱은 없지요. 부단히 손을 움직여서 만든 한 끼를- 차려서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 한 그릇에 윤기가 좌르르 도는 쌀알을 짓고선 마음껏 먹어도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사람. 이 공간 안에서 저는 편안합니다. 한결 자유로워졌습니다. 밥 얘기만 했을 뿐인데 이미 든든했어요. -엄청 허기진 상태가 아니라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지만요. 히-

 한 술 떴는데, 술술 넘어가더라고요.(음식은 꼭꼭 씹어먹어야 합니다.)

 쌀 한 톨 한 톨이 입안에서 톡톡 터졌습니다. 쌀에서 나오는 은은한 단맛은 어떤 반찬이 와도 부드럽게 어울렸어요. 자꾸 밥이 맛있어서 반찬을 하나씩 집다보니 밥 한 그릇을 해치워버렸습니다. -원래 밥 한 그릇을 다 먹기보다 주전부리를 많이 먹어서 스스로에겐 재미있는 변주였어요.- 그러고선 친구에게 "한 숟가락 더 먹을래!"라고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친구는 밥 맛있지, 하면서 "이거 신동진쌀이야." 라며 10kg짜리 쌀 포대를 가리켰습니다.


 신동진쌀.

 신동진 농부님이 만드신 쌀인가, 하고 생각이 스쳤어요. 이름 석자를 걸고 지은 쌀이라면 맛이 없을 수 없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맛있게 먹었던 쌀, 머릿속에 기억에 남는 쌀이 있었나 떠올려봤어요. 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 쌀은 친근하게 들렸어요. 주변에서 맛있다고들 해서 자신도 한번 사봤다고 소개해주는 친구에게서 처음 들었는데 말이에요.


 그리곤 만나도 들어보지도 못한 신 씨 성을 가진 동진이란 이름의 사람이 오늘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안온한 저녁을 선물해준 사람의 하루를 응원해버렸어요. 고마움을 느끼는 제가 다소 당황스러우신가요? 그런 모습을 가진 게 바로 저예요. 왕건이 탐낸 쌀(나주쌀 브랜드), 햅쌀 같은 네이밍이 아니라 신동진의 쌀이라고 들리기 시작한 순간 단지 쌀을 먹고 있다는 생각보다 쌀을 지은 사람의 노고를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여전히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는 시의 구절을 소개하고 싶어요. 어려운 글자가 하나도 없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삶이 잘 쓰였을까요. 단순하지만 강렬한 통찰을 어떻게 이렇게 다정히 담을 수 있을까 질투하면서 문장을 나눕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2011년 여름)




 단지 이름, 누군가의 소망이 들어간 단어일 뿐인 그 '이름'이 주는 힘을 신기하게도 꽤 큽니다. 이름은 왜 이토록 글자의 합 그 이상일까요. 


 이름을 가진 어떤 존재,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의 과정을 물밀듣이 밀려옵니다. 이름 지어진 순간부터 계속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고 또 불렸을 한 사람을 생각하면 왜 아득하면서도 숨 가쁘게 떨릴까요.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흐르면서도 순간은 참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가진 저라서, 그 사이사이 각기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받고 그 사람이 살아온 흔적 속에서 또 다른 뭔가를 피어 올리는 멋진 사람을 마주하곤 해서, 그래서 다른 존재에 감응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름을 호명하고, 불리우는 그 누군가의 이름으로 자신을 충분히 소개할 수 있다니. 저는 제 이름으로 온전히 저를 소개하기 어렵고 모두 표현하기도 어렵다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종종 닉네임을 쓰고 별칭을 사용하면서 때와 장소에 맞는 나의 모습을 강조하기도 하는 듯합니다. 나의 여러 면 중에 내가 집중하고 싶은 어떤 모습에 방점을 찍지 않고 존재로서 소개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나 봐요. 나의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어떤 마음도 있지만 그걸 모두 담아내는 나의 그릇, 전체로 온전히 올게. 라는 마음가짐처럼 느껴졌달까요? 


 자신있게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사람과 그런 그를 알고 단단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 호명하는 이와 불리는 이를 상상해봅니다. 어렸을 때 친하지 않았던 친구네 아버지가 하는 세탁소가 있었는데요. 이름이 '민정 세탁소'였습니다. 민정이네 아버지께서 하시는 세탁소인지 모르고 지나갔을 때는 아 그냥 이름인가 보다 싶었는데, 그네 아버지가 하는 가게라는 걸 알고나서는 왠지 딸의 이름을 걸고 매일 옷을 다루는 아빠가 왠지 모르게 자랑스러워지고요. 정직할 것 같고요. 옷에는 사랑이 묻어있을 것 같고 그러더라고요.

 이사를 다니고 동네에는 단골 세탁소들이 생겼지만 잘 떠오르지 않아요. 다른 온통 세련된 이름보다, 000 런드리 같은 세련된 네이밍보다 오래 남는 건 이런 마음이 아닐까요. 각각 어떤 바람으로 간판을 걸어놓으셨을지까지 그 깊이를 상상할 수 없지만, 이름 석자를 걸고 또는 딸내미의 이름으로 운영한다는 건 얼마나 진심일까요.


 그래서 처음 만난, 딱 하루 저녁 먹은 이 쌀을 아끼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세련되고, 유려한 브랜드의 문제를 떠나서 이름은 그리고 이름을 해치지 않으려 새겨 넣었을 정성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 진심이 담긴 마음과 마음으로 만든 작고 사소한 과정들이 쌓여서 브랜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름만큼이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씀을 만나왔으니까요. 자신의 몫, 하겠다고 다짐했던 일을 마무리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딱 결괏값까지만 해도 괜찮고 탈 없지만 기어코 스스로 설정한 어느 경계까지 닿아 온전한 맥락으로 결과물을 공유하는 사람들.

 저는 그들이 만든 공간을 다니고, 그들이 꾸준히 내는 목소리를 듣고, 그가 써 내려간 소설을 읽어요. 그들이 한 김 한 김 재봉틀로 깃을 잡은 옷을 입으려 애쓰고 농부님이 날씨에 따라 노심초사하며 손길로 지으신 과일을, 쌀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쉽게 움직이고 제멋대로 작동한다고 불평하면서도 오늘을 꾹꾹 눌러 담아서 내 주변의 한 걸음 한 걸음 힘써 걷는 이들과 기어코 연결되려고 다시 이야기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혼자 감동의 쓰나미를 맞이하고 있던 그때.

저는 신동진씨와 조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초록창에 신동진쌀을 검색했죠. 사실 구글 창에 검색했습니다. 호호. 응? 아닐거야. 신동진 농부님의 쌀이 어디에 있나. 왜 이렇게 많지? 그렇게도 유명한 쌀인가?? 물음표가 점점 커져갈 때쯤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네, 신동진쌀은 신동진 농부님이 만든 쌀이 아니라 쌀의 품종명입니다. '신동진'이라는 쌀이 있대요. 1990년대 대한민국 농촌진흥청이 개발했고요. :-).. 2018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쌀이라네요. 하하. 재밌지요? 저는 아주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어요. 이쯤 되면 제가 머쓱함을 온몸에 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셨겠지요? 하하. 찾아본 김에 신동진 쌀의 특징도 알아봤어요. 여러분 신동진 쌀의 특장점이 뭔지 아시나요? 전 압니다. 김밥용으로 쓰기 좋대요. 식당에서 윤기나는 밥, 그거 신동진쌀로 만든 거래요. 호호.


저는 덕분에 현미, 잡곡, 7곡 외에도 신동진이라는 쌀의 품종을 확실히 기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농부님의 이름, 그 사람의 일생, 1년 동안의 농부님의 땀방울이 제게 흘러오지는 않았지만요. 90년대 우리나라에서 개발되어 2018년 기준 가장 높은 생산량을 보이는 쌀 종류라는 것. 아마 할머니가 되어서도 신동진쌀은 잊지 못할 거예요.(스르륵...)


꼭꼭 잘 씹어먹어 소화가 잘 될 것 같은 저녁을 선물해준 신동진쌀에 고마웠습니다. 그가 사람이든 품종이든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지요.  끝.






이 글은 청년인생설계학교 자율기획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브랜딩'을 공부하고 해석한 글입니다. :-)


글과 사진은 모두 채소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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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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