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를 닮은, 와이바이.
젊은 사람은 다 떠나버린 시골.
열심히 일을 하다가도 가끔 찾아오는 자식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 곳의 이름은 고향이다.
이곳에서 양계장과 농사일을 하는 용일은 항상 부족한 일손 탓에 고민이 많다. 용일은 탐탁지 않지만 최 씨의 조언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다. 집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칸, 이리띤, 나일, 마리아는 그렇게 최 씨와 용일의 집에 고용되어 일하기 시작한다.
최 씨는 고분고분하게 사장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그들의 생명줄처럼 쥐고 협박한다. 그에게는 별생각 없이 던지는 말일 수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흘려들을 수 없다. 비자 기한이 만료되었거나 취업 비자가 아닌 터라 들킨다면 고향으로 강제 귀국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장님의 말은 거의 절대적이다. 잠깐 쉬고 있으면 호통소리가 들리고, 컨테이너 박스나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청해야 하지만 꾹 참는다. 이곳에서 잘리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막막하다. 아직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지킬 것들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고된 일을 버틴다.
비슷한 시기 용일과 은희의 딸 '베이비'가 고향으로 내려온다. 작곡가로 서울에서 성공하겠다던 꿈은 시간이 갈수록 빛바래간다. 길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지친 베이비는 엄마가 있는 집에 돌아온다. 언제든 집에서는 엄마의 베이비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 익숙한 베이비에게 고향으로 돌아와 만나는 사람들은 불편하기만 하다. 요즘 여자들은 많이 배워서 문제라며 한탄하는 남성 택시 기사, 차린 밥상에 수저만 들었다 자리를 뜨는 아빠 용일과 최 씨. 이들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을 수 없어 큰 소리를 낸다.
게다가 처음 보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집에 가득하다. 고물과 다를 것 없는 핸드폰을 사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삶, 남편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이 베이비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집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찾아온 외국인 이주노동자, 계속되는 실패에 지친 이 시대의 청년, 돌아올 수 있는 집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어른들. 연극 '와이바이'는 이처럼 각자의 꿈과 지킬 것들을 안고 우연히 모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낯설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던 이들은 와이파이를 통해 하나의 동그란 형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무대 한 쪽 구석에 위치한 마루는 용일 가족만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가족들은 밥을 먹거나 편안히 쉰다. 집에서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이기도 하다. 무대 위의 동그란 흰 선이 와이파이가 미치는 범위다. 선 밖으로 나가는 순간 툭 끊긴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하기 위해 와이파이가 필요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 선 안에 들어가고 싶다. 가족만을 위해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만큼 그 잠깐의 통화가 하루의 유일한 위안이다.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 핸드폰을 얻어냈는데, 마음대로 와이파이를 쓰기도 눈치가 보인다.
은희는 이들이 왜 모여있는지 알아차리고 기꺼이 그들에게 와이파이를 나눠준다. 나눠 쓴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떠냐며 선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은희가 베푸는 것은 와이파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가족처럼, 가끔은 자신의 젊었을 적 모습을 떠올리며 잠깐 스쳐갈 이들이 쉴 수 있는 집을 만들어주고자 한다. 먹을 것을 차려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고,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눈다. 자기가 받았던 과거의 다정이 이들에게도 미칠 수 있도록 말이다.
처음에는 꺼려 했던 베이비도 이들에게 스며든다. 어디서 감히 공짜로 와이파이를 쓰냐는 용일보다 베이비는 은희를 많이 닮았나 보다. 마리아가 겪는 부당한 대우에 대신 화를 내고 마리아가 더 스스로를 위해 살기를 바란다.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은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된다. 그 사람은 이내 응원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울퉁불퉁하게 모이던 이곳의 사람들은 점차 하나의 원이 되는 일에 거리낌 없어진다. 원으로 견고히 지어진 집에서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들이 공유된다.
몽골의 4년제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이리띤의 꿈,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던 칸의 야망, 은희처럼 자신과 나일의 아이에게 돌아올 수 있는 집이 되고 싶은 마리아까지. 일만 하며 지내는 나일의 꿈도 같다. 자기 가족만은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다.
각자의 목소리가 섞여 하나의 대화를 이루듯이 어느새 마루에 차려진 밥상에는 모두의 음식이 차려진다. 은희가 차린 상 위에 이리띤이 가져온 술과 마리아의 음식이 곁들여진다. 옹기종기 의자를 끌고 와 모여 앉았다. 칸이 튼 음악에 최 씨가 춤을 추고 베이비는 다른 노래를 듣자고 핀잔을 건넨다. 해결된 것은 없지만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지는 그 순간, 누군가 찾아온다.
불법체류자 제보.
짧은 꿈은 산산조각 난다.
연극의 제목을 다시 한번 곱씹는다. 와이파이를 닮은, 와이바이. 와이파이로 연결될 수 있던 가족들의 이야기는 결국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지의 와이바이(Why, Bye)를 품에 안고 끝이 난다.
불법체류 중이던 외국인 노동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일은 다행히 어느 미래에 그들을 기다린 용일과 은희의 집으로 돌아온다. 베이비와 마리아도 달려와 나일을 반긴다. 하지만 아직은 지키려고 하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다. 아이의 집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여전한 헤어짐이 필요할 것이다.
강제로 귀국했을 이리띤과 칸의 이야기는 그 뒤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연극은 이들의 마지막을 보여주지 않는다. 꿈을 포기하고 한국에 와서 돈을 벌 수밖에 없던 이리띤과 돈을 벌어 다시 꿈을 꾸고 싶어 하던 칸의 이야기. 보이지 않지만 이리띤과 칸, 그리고 이들을 닮은 연극 밖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다시 하얀 원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아니, 세상에 정말 하얀 원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와이파이는 일정 범위 내에서라면 무한히 공유할 수 있지만 사회의 많은 것들은 그렇게 될 수 없다. 어쩔 수 없다는 무책임한 말로 끝내기엔 너무도 많은 원 밖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무대 위에 와이파이라는 하얀 원이 있던 것을 기억하며 나는 은희의 보이지 않는 하얀 원을 생각한다. 은희 역시 그녀의 원에 모든 것을 담지는 못했다. 자신의 희생에 기대고 있는 부분도 분명 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로 가끔 찾아올 뿐인 아들을 말없이 기다리며, 상을 차려놓고 자기는 상 없이 쪼그려 앉아 식사를 하면서, 거짓말을 하고 춤을 추러 가는 용일을 보며. 은희는 그저 둥글게 자신의 원으로 감싸 안아 사람들과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점점 커지는 은희의 원을 나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무한히 공유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다정은 다정을 낳지 않는가 하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원을 조금씩 키우다 보면 이 세상은 어느새 하나의 큰 원이 되어 있지 않을까. 경계도, 끝도 없는 큰 원. 고분고분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외로워지지 않아도 되는 어떤 원. 그 커다란 원이 우리 모두가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집이 될 수 있다면 우리에겐 와이바이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로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