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과 귀찮음과 불폄함과 어려움은 다르다.
자녀들이 방학을 하면 만나기도 힘들지만 어쩌다 지인들과 만나거나 통화라도 하게 되면 대화의 첫 물고는 “요즘은 뭐 해 먹고 사느냐?” 다. 서로 반찬 배틀하듯 하나씩 번갈아 이야기하다 보면 “아니 근데, 나도 자기처럼 채식으로 바꿔보고 싶은데 요리를 잘해야 할 거 같아 못하겠어.”라며 미리 손을 든다. 내 대답 어디에 요리를 하라는 반찬을 이야기했다고?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되며 다음 화제로 전환이 된다.
요리를 잘 못해 비건지향이든 채식지향이든 하기 어려운 관문이라고 했다면 다음으로는 어디서 식재료를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거나 비건으로 먹으면 식비가 더 많이 나오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비건 집밥을 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를 나름 정리해 봤다.
첫째, 식재료를 특정한 곳에서 사야 할 것이라는 막연함부터 출발한다. 비건음식을 하기 위해서는 비건 음식 식재료를 파는 지정된 판매처를 생각하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있었다. 비건을 시작할 무렵 초반에는 마켓컬리나 채식한끼몰 등 특정 쇼핑몰에서 구매해야 하는 식재료가 있었으나 요즘은 대형마트를 가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많다. 냉동구역을 살펴보면 ZERO MEET 구역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이도 저도 귀찮으면 한살림이나 초록 마을 등 생활협동조합에서 파는 친환경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둘째, 조리법을 별도로 배워야 한다?
한식의 장점은 채소를 이용한 반찬이 많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물류만 먹어도 채식이다. 거기다 김치류는 얼마나 많은가, 기존에 하던 채식 반찬에 양념류만 조금 신경 쓰면 완벽한 비건식도 가능하다. 대부분 채식 반찬은 젓갈류만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대체할 수 있게 기본양념을 잡아주는 ‘연두’(초록색 뚜껑)가 비건인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양념소스에 해당된다. 채식육개장이라 하여 이름 붙은 채개장이라던지, 비건 부대찌개도 가능한 시대다. 특별한 음식은 비건식이 아니라도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등을 통해 레시피를 보고 하듯 요즘은 비건식 레시피도 많이 공유되고 있어 관심만 있다면 전혀 어렵지도 특별히 요리 학원 등을 다녀야 할 필요도 없다.
셋째, 그냥 불편하다?
스팸,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맛살, 어묵, 생선, 참치캔, 라면 등 이 식재료들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스캔하는 순간 무슨 음식을 할 수 있을지 바로 뜬다. 그냥 구워 먹어도 되고 김찌찌개, 생선조림, 육개장, 닭볶음탕 등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어디서든 먹어봤기에 음식을 하는데 특별한 불편함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편한 식재료를 두고 먹지 말라고 하니 일단 맛을 떠나 막막함부터 생길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 이들 없이 반찬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게 느껴지는지. 나 역시 초반에 그런 생각이 컸다. 정말 가능할까? 할 수 있나? 이런 식재료가 줬던 편안함을 벗어던지니 불편함이 아니라 더 넓은 식재료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흰밥이 진리였다면 현미, 보리, 찹쌀, 콩, 팥, 수수 등 우리가 알던 잡곡 외에도 카무트, 귀리, 퀴노아, 병아리콩, 오트밀 등 다양한 곡물 등을 알게 되었다. 불편한 게 아니라 내가 몰랐던 것뿐이다. 알면 살 수 있는 식재료가 더 풍부해지고 알면 할 수 있는데 알기를 거부하고 있기에 불편했던 것들이다.
나는 요즘 참 좋아하는 식재료가 있다.
햄프시드와 치아시드인데 참깨처럼 요리의 마무리를 위해 많이 사용한다. 주로 나물류를 할 때 참깨 대신 뿌리면 같은 양념의 나물이라도 조금은 다채롭게 해 준다. 햄프시드의 경우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한데 100g당 단백질 함량을 연어와 소고기와 비교한다면 훨씬 더 높다고 한다.
치아시드의 경우는 세계 10대 슈퍼푸드에 속하는데 특히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포만감이 높은 음식이라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미 알고 있을 정도였다. 뭐든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있다고 하는데 참깨 대신해 음식의 화룡정점으로 사용하다 보니 그런 걱정도 없고 같은 음식이라도 작은 디테일 하나 바꿔가며 먹을 수 있어 깨만큼이나 자주 사용한다.
채식이든 비건이든 뭐든 어렵지 않다.
마음을 여는 게 제일 어려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