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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독가의 서재 Feb 25. 2023

처음부터 잘 쓰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천천히 또박또박 바르게

“오늘부터는 잘 쓰려고 하지 마세요!” 

흔한 말로 청천벼락같은 소리다. 

글쓰기 수업도 아니고 글씨체 수업에서도 이런 소리를 듣다니!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께 배우면 당장 글씨체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순간 낚인 것은 아닐까 하며 일단 뭐라고 말하나 들어보자 하는 반항심도 순간 훅하고 들어왔다. 수업을 들을수록 글씨체도 지름길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숱한 무료영상, 자료, 서적들이 있지만 수업 커리큘럼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못했던 것은 내 노력 없이 지름길로 가는 방법을 알려고 했던 다른 일들과 다르지 않아 헛웃음이 났다. 하나의 글자가 만들어지는 한 획부터 바르게 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조급함이 사라졌다. 


수업 준비물은 달라진 나부터 준비되어야 했다.  

    



수업 첫날부터 수업이 끝난 지금도, 나는 매일 일정한 간격 노트에 세로 대각선 가로 줄 긋기 연습을 한다. 적어도 하루에 이 4줄은 꼭 하자고 다짐을 한다. 글씨체를 바르고 단정하게 쓰기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당장의 욕심을 비워내야 하는 것이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바로 이 줄긋기 연습이 아닐까 싶다.      


줄긋는 게 뭘까 싶지만 희한하게 줄긋는 것도 하루하루 채워질수록 좀 더 바르게 그어지고 편안해진다. 또 어느 날은 그날의 감정상태가 줄긋기에도 드러날 때가 있다. 속이 시끄러운 날은 비뚤어지는 날이 많다. 또 어느 날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며 바르게 긋기보다 한다는 결과에 집착해 예전의 습관들이 툭 튀어나와 빠르게 쭉~ 쭉~ 그어버려 반듯함이 사라지기도 한다.  연습용 노트를 넘기면 그날의 마음가짐이 보이니 뭐 하나 그냥 되는 건 없구나 싶다. 

      

손글씨를 써야 할 때마다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해왔지만 그동안 ‘글씨를 쓴다’는 것보다 ‘글을 쓴다’는 것에 집중하며 살았고 글자가 담는 내용의 가치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내용 못지않게 글자 모양 그 자체에 신경을 쓰는 일은 완전히 색다른 세계였다.  

    

나는 사실 외모나 외형에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나에게 글씨체를 바르게 쓴다는 것은 외모를 가꾸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다시 말하면, '가꾼다'라는 단어를 나는 글씨체를 교정하면서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글씨체를 바르게 쓴다는 게 곧 나를 가꾼다는 거였다. 화장은 선크림까지가 최선이고 모자, 장신구 등도 일절 하지 않는 나는 가꿈보다는 실용적이고 편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선택해 왔다. 그런 내게 가꾼다는 것은 제약적이고 뭔가 불편하고 어색하다. 


딱 글씨체 교정 과정이 그렇다. 어색하고 불편하고 글씨를 빨리 휘리릭 써야 하는데 한 획 한 획 바르게 천천히 또박또박 단정하게 생각하며 글자들 간의 공간도 생각하며 자간, 띄어쓰기, 행간에 어느 위치에 정렬까지 고려해야 하는 그야말로 숨 막히는 계산이 필요한 세계였다. 나에게 다른 세상이 열린 것이다. 글씨체를 단정하게 쓰겠다고 글씨체 교정하겠다는 단순히 스킬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생각에 다른 관점을 넓혀주는 과정이 되고 있다.    


나는 배운 사람인데, 글씨체가 크게 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평이 나올 때는 다시 연습용 노트를 꺼내 줄긋기부터 다시 해본다. 잘 쓰려는 욕심을 부릴 때가 아직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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