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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독가의 서재 Sep 01. 2023

단테의 [신곡], 이렇게 완독 했습니다.

친절하지 않은 책리뷰 2

출구 없는 지옥보다 더한 완독 없는 신곡의 무한 도돌이에서 벗어나보자!    


단테의 신곡, 이 책 제목만큼은 꽤나 친숙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책장에 세계문학전집 1번이었던 늠름한 책이 바로 이 신곡이었다. 엄마는 부업을 틈틈이 하며 그 돈으로 우리가 읽을 전집을 한 번씩 들여주셨다. 위인전, 국내외, 세계명작동화 등 전집을 한 번씩 사 주시면  물 만난 듯 그리고 그래야 하는 줄 알고 1권부터 쪼르르 읽어나갔다.  그런데 이 세계문학전집은 이 전에 읽던 책들과 두께도 크기도 다른 위엄을 풍겼다. 당시 초등 고학년 무렵에 접한 세계문학전집은 고등학생이 되는 언니를 기준으로 들였는데, 그 아우라가 엄청났다. 집에 배송이 되자마자 우리 집 가장 눈에 띄는 명당 책장에 떡하니 자리를 잡으며 책장을 넘어 집의 품격을 높여주기까지 했다. 이때부터였다. 언니책이기에 더 읽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당연한 마음에 신곡부터 빼들었던 나는 글자크기, 내용 모든 것에 화들짝 놀라며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이 책을 제자리에 꽂아버렸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전집류를 순서 없이 읽어나가는 자유로움을 얻었고 대신 단테의 신곡은 내 손에 잡히는 일은 그 후로 몇 년간 일어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 대학 도서관에서 신곡을 다시 만났다.

우리 집 책과는 다른 표지, 왠지 이번에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들었으나

에이구머니나~ 또 실패였다.

두께보다 뭔가 시조처럼 3줄식 나뉜 형식이 주는 무게감에 몇 장 나가지 못하고 만 것이다.      


언제였던가? 몇 년 전 다시 다양한 버전의 신곡 표지를 보고 슬그머니 다시 읽어보려는 노력을 했지만 출구 없는 지옥처럼 계속 지옥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책을 또 덮어버렸다.

아니 잊어버렸다.

 세상은 더 신나는 내용의 책들이 많은데 한 줄 읽을 때마다 주석을 동행해야 하는 이 책을 어찌 더 읽어나갈 수 있단 말인가!!!  결국 타인이 읽고 전해주는 정보로 이 책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랬단 말이다.


슬로우리딩북클럽에서 자유도서로 언급되기까지는 말이다. 이 책을 읽겠다는 멤버덕에 미련조차 없을 거라 생각했던 신곡에 대한 완독 의지가 다시 불끈 솟아올랐다. 아... 진짜 이번에는 마지막도전이다라는 마음으로 읽어보기로 했다.


신곡 어느 출판사로 읽을 것인가?


작정하고 마음을 잡고 나니, 어느 출판사의 신곡을 읽을 것인지 선택이 필요했다.


유명세만큼 원문번역에 대한 다양한 출판사가 있었고 또 원문을 최대한 반영해 현시점에서 읽기 편하게 편집된 책들도 많다. 우선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 책들을 기준으로 도서관과 전자책 등을 통해 최대한 살펴 나에게 맞는 책을 선정했다. 일주일간의 고민 끝에 우리나라의 첫 완역본을 쓴 원문에 가장 가깝다고 느껴진 최민순 신부님 버전(가톨릭출판사)의 신곡을 선택했다.


원문에 가까운 번역으로 선택한 이유는

단테는 시인이다. 신곡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당시 라틴어가 지배적이던 시기, 자국어인 이탈리아어로 쓰였으며, 또 이탈리아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러면서도 당시 특유의 구조와 음률/음운등을 살린 시의 구조이기에 원어로 읽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원문에 가깝게 번역된 책을 읽는 게 신곡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이 책으로만 신곡을 읽기에는 버겁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 장점이자 단점인데 이는 주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기에 본문을 읽다가 반드시 아래 주석을 읽고 주석을 읽다가 이해가 안 가면 검색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도서를 같이 병행해 읽기로 했다.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관련 도서를 함께 읽다.


명화로 읽는 단테의 신곡(이선종 번역, 미래타임스)과  단테의 신곡 강의(이마미치 노모노부 저자, 교유서가) 2권이었다.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은 내용이 궁금해 알고 싶다면 이 한 권으로도 강추한다. 단테의 신곡은 당시 그림에도 영향을 끼쳐 명화로도 남아있기에, 이 책은 명화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내용을 풀어주고 있어, 눈도 만족스럽고 쭉~ 읽어 나가면 된다. 나의 경우에도 원문번역문의 내용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읽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점검용이었다. 때론 어느 날은 원문 번역본을 읽기 전 먼저 읽고 원문 번역본을 읽으면 내용이해가 빨라 책 읽는 속도감을 높일 수 있었다.      


[단테의 신곡 강의]는 어느 출판사든 원문 번역본을 읽는 분이라면 무조건 같이 읽길 권유하는 책이다. 이 책은 일본의  단테연구가이자 인문학자인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강의를 책으로 집약했다. 일본 내 신곡의 번역본 비교부터 신곡을 읽기 전 필요한 배경지식들을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는 분량에 맞춰 이 저서를 강의 듣는 마음으로 활용 했는데 사실 이 책 덕에 신곡을 완독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텍스트였지만 강의를 듣는 것처럼 내가 궁금했던 것들이 다음 페이지에서 질문과 답이 되어 나오기도 하고, 이탈리아어로 얼마나 신곡이 아름답게 발음되고 구조화되었는지 원문까지 들고 와 속속들이 알려주어 순간 이탈리아어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면 옆길로 빠질 뻔도 했다. 단테의 신곡을 읽는다면 혹은 읽었더라도 꼭 한번 읽어보길,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만 부여했던 내게 이 책은 신곡안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정보와 철학적 질문들을 던져주고 고전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지옥과 연옥을 마무리할 때쯤, 새로운 참고도서를 한 권 더 발견했다.  

바로 민음사  출판, 신곡을 번역한 박상진 교수의 [단테]라는 책이다. 이 책은 단테에 대한 평전과 단테의 일생을 따라 이탈리아를 돌아보는 기행문적인 요소로 쓰였다. 대부분의 내용이 신곡과 단테의 글을 토대로 진행되고 있어 지형적 그리고 시대적으로 단테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신곡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책이다.  동시에 현재 이탈리아에 남아있는 단테의 흔적들을 보며 이 책 한 권을 들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현재에도 단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700년이 넘은 고전이라도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신곡이 더 이상 오래전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 주었다.      


이렇게 약 3개월을 읽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지옥에서 연옥으로 그리고 천국을 이어 지금 나의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단테의 신곡을 왜 읽어야 할까?


이 글은 신곡을 읽으라고 권유하는 글이 아니다.

이미 읽고자 하는 분들에게 혹은 나처럼 완독을 해보고자 하는 분들이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쓴 글이다. 사실 신곡을 읽고 감상평 혹은 서평을 쓸려고 했으나 여러 참고 도서를 읽고 난 뒤라 그런지 이 생각이 내 생각이 맞는지 혼동이 왔다.


다만,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 중 만난 질문들을 신곡 번역본 외 다른 참고도서들을 통해 얻기도 했고 , 내가 갖는 질문이 누군가도 생각하고 거기에 답을 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사유하고 답을 찾고 있다는 것에서 작은 희열을 느끼며 이 책들을 함께 읽어 나갔던 거 같다.


원체 유명하기도 하고 이미 신곡 지옥, 연옥, 천국에 대한 정리는 똑 소리가 날 만큼 잘 되어 있어 나의 정리가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번역본을 읽으며 원문보다는 못하겠지만 충분히 아름답게 혹은 처참하게 상황을 표현해 내는 주옥같은 문장들을 읽으며 신곡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깊게 고민했다.


연옥 편 제18곡에서 단테는 대체 사랑이 무엇이냐며 안내자 베르길리우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있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베르길리우스는 사랑이 그 자체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무엇을 향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고 답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이 잊히지 않는다.  


지옥편을 읽으며 죄를 짓는 것도 두렵고 죽어서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무서웠지만 내가 옳다고 혹은 좋다고 여긴 것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올바르게 나아가지 못한 것 그래서 연옥이라는 곳에서 깨우침을 얻고 자신을 정제해 나가는 과정 역시 하나의 형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사실 더 무섭게 다가왔던 거 같다.   

   

지옥, 연옥, 천국을 오가며 나는 가장 인간사와 닮았던 연옥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세븐]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진 것이겠지. 잔인해 한 번 보고 절대 잊지 못했던 이 영화를 오늘 밤 다시 보며 신곡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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