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않음에 대한 구차한 변명
다시 쓰리라!
작년 글쓰기에 대해 접은 마음을 다시금 다잡았다. 그런데 연말이 되어 되돌아보니 나의 글쓰기는 어느새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더 정확히 들여다본다면, 마음속에는 글쓰기에 대한 강한 압박을 느끼면서 몸은 이상하리만큼 글쓰기를 피하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커져 계속 남과 나의 글을 비교하기 시작하고 이어진 비교는 자꾸 내 글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삐뚤한 마음만 남아버린 것이다.
잠시 나의 글쓰기에 대한 과거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나의 글쓰기는 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출발점이었다. 2019년, 책을 읽다 더 잘 읽고 싶은 마음에 블로그를 시작했었다. 그 마음이 연결이 되어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생각지 않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독서모임부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주체가 되는 경험도 했었다. 그러다 사람이 모이니 커뮤니티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책 읽기라는 본질이 흐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활동들을 접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했을 뿐인데 사람이 주변에 모이면서 의도치 않게 커지는 부담감도 내려놓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시절인연처럼 모든 게 흩어졌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백수처럼 혹은 책만 읽는 선비의 삶을 배워보고 싶어 퇴사하던 해 (겁도 없이) 나는 감이당의 1년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1주일에 1번이지만 하루를 온종일 프로그램을 채우며 지냈다. 책을 읽고 읽었던 부분에서 인상적인 문장을 쓰고 그 문장에 대한 사유를 쓰는 것은 크게 내가 해왔던 활동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그런 문장들이 이어져 내 삶을 관통하는 에세이 쓰기를 하는 것이 특색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총 4분기로 나눠 한 분기가 끝날 때마다 한 편의 에세이를 써내야 했다. 분기 마지막 날은 수업을 해준 강사를 모시고 자기가 쓴 에세이를 읽고 학우들의 질문을 받고, 마지막은 후비는 듯한 총평의 시간까지. 그야말로 살 떨리고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1년 나는 읽기와 쓰기를 통해 2가지를 얻었다. 즐거움이 가득했던 독서가 내 것으로 되는 과정은 반드시 고통이 필요하다는 것과 에세이 쓰기를 통해 내가 얼마나 사유가 짧고 인생 역시 얼마나 순탄한 사람이었는지 나를 들여다본 것이다.
1년의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나는 다시 읽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아직 깊이보다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호기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도서로 나를 채우는 게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사실 글쓰기부터의 도망이었지만 말이다.
2022년 겨울, 불현듯 삶이 답답했다. 그리고 자꾸 글이 쓰고 싶어졌다. 운이 좋게 그럴 때쯤 좋은 분들을 만나 글쓰기가 쉽게 다시 시작되었다. 글쓰기를 꾸준히 할 수 있게 글쓰기 모임방도 들어가고, 그림책이든 어떤 형태의 독서모임이라도 글쓰기가 병행되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과유불급이었을까? 혹은 방향성이 없던 탓일까?
어느 순간 글을 쓰고 나누는 순간이 힘들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다른 이의 글을 듣는 게 너무나도 즐겁고 신기하고 놀라웠다. 세상에 글잘 쓰는 사람이 작가가 아니라도 이렇게 많구나 하는 감탄이 쏟아졌다. 하지만 곧 그 감탄이 나를 찌르는 화살이 되기 시작했다. 흔히 저명한 작가들만이 넘사벽이라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넘사벽은 도처에 있는 듯했다. 처음 글을 쓴다는 분들도, 논문만 혹은 보고서만 써봤다던 분들도 글이 고급지거나 혹은 완결성이 뛰어났다. 더러 주옥같은 문장을 뿜어내기도 하고 다양한 단어를 통해 표현력이 뛰어난 분들도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내 글만 후져 보였다. 내 글만 제자리 같아 보였다.
그리고 잇단 지인들의 출판 소식이나 초고 집필 소식이 갑작스레 천둥처럼 다가왔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각종 SNS에는 ‘독서 1년 만에 성장 ~’ 어쩌고, ‘책 100권 읽고~’ 어쩌고... 순간 나는 뭐지? 하는 생각 도돌이표에 갇혀버렸다. 글은 형평 없고 , 내가 사용하는 단어도 문장도, 경험도 그 어떤 것도 쓸모 있어 보이지 않았다. (오직 한 군데는 있었지.... ^^;;) 대체 왜 나는 글을 쓰려고 하는지 이유도 방향성도 명확하지 않아 보였다. 다행인 건가?
허우적거리는 챗바퀴에 빠져나오기 위한 급처방은 읽는 것만 하자.
다시 스스로를 북돋운 최선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 다시 책만 읽겠다고 했지만 책 역시 쉬이 읽히지 않는다. 예전에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어 제 끼던 그 시간들은 뭐였지 싶을 만큼 요즘 책 읽는 것이 글 쓰는 것만큼 쉽지 않다. 책을 펼치면 글자의 무게가 나를 바닥으로 꾹 누르는 기분이다. 한 페이지에 담긴 글이 너무 무겁다. 쑤웅~ 하고 쉬이 읽어 나갈 수가 없다. 행간에 보이지 않는 무게가 고스란히 다가온다.
질투다.
고전을 읽든, 가볍다는 에세이를 읽든, 글을 쓴 모든 이들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썼지? 어떻게 한 권의 책을 써내지? 또 어떻게..... 그렇게 들어가다 보면 나의 무지에 도달아 좀먹고 있었다.
우연히 다시 읽은 아티스트 웨이의 한 페이지에서 계속 눈이 머물렀다.
다른 사람의 성취가 내 앞길을 막는 것이 아니다. p.368
속 좁게 나는 질투와 자기 연민에 허덕이고 있었다. 내 감정이나 상황을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할 만한 언어를 잡아 낼 수 없어 다른 상황에도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나의 미약한 표현과 모자란 생각에 짜증을 내지 못하고 숨기려고만 하며 또 글쓰기로부터 도망을 가고자 한 것이다. 치사하게 이런 이유로 도망가지 말자고 이 문장으로 벗어날 때까지만이라도 글을 쓰자고 작아진 나의 자존감보다 자존심을 붙들고 부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