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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May 01. 2024

간장 게장은 사랑입니다~

나의 이야기

드디어 봄꽃게철이 돌아왔다.

알이 꽉 찬 제철 꽃게는 찜으로도, 탕으로도 , 게장으로도 뭘 해서 먹어도 맛나다.

얼마 전 3호 아들과 둘이서만 친정에 다녀왔는데 마침 엄마가 게를 잔뜩 사다 놓으신 거다.

찜통 한가득 알배기 꽃게를 쪄서 수북이 쌓아놓고 먹는 호사를 누리다니~

3호 아들 게 살 발라주랴, 내 입에 넣으랴 정신은 없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배 터지게 꽃게찜을 먹었다. 그것도 모자라 손주들 간장게장 담가 먹이라며 엄마는 내 차에 게 한 상자를 실어 놓으신다.


다음 날 나는 꽃게를 싣고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려 집에 도착했다. 게장을 담글 생각에 몸과 마음이 몹시 급해졌다.

한번 냉동을 시켰던 놈인지라 신선도가 생명이다. 도착하자마자 육수와 간장을 끓이고

식히는 동안 게 손질을 마쳐야 한다.

모든 것이 스피드 하게 진행되어야 신선하고 맛있는 게장을 먹을 수 있다.

게 양이 너무 많아서 손질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허리도 아프고 온 집안에서는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남편이라도 집에 있었으면  손질

이라도 부탁하는데 하필 집에 없는 날이다.

꽃게 손질이 끝도 없다...


"나는 게장을 먹지도 못하는데 왜 꽃게 손질을 내가 해야 하냐고..."


재작년인가 간장게장을 한번 담근 적이 있었

는데 그때 남편이 했던 말이다.

그렇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게장을 먹지 못하는 한 사람. 남편이다.

문득 결혼 전 남편이 우리 집에 처음 인사 오던 날이 생각났다.


남편과 2년  연애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우리는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로 했다.

드디어 남편이 우리 집 그러니까 예비 장인, 장모님께 처음 인사오기로 한 날이 되었다.

엄마는 예비 사위를 먹이기 위해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하고 계셨다.

한가운데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간장게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입맛이 변해서 지금이야 나도 게장을 좋아하지만 어릴 땐 전혀 먹지 않았었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서 게장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기억으론 그랬다.

그런 엄마가 예비 사위가 뭘 좋아할지 잘 몰라서 이것, 저것 다양하게 차리시려고 그런 건지

간장게장을 담가서 상에 올리신 거다.

물론 나의 구남친, 현남편은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었더랬다.

당연히 예비 장인, 장모님께 잘 보이려면 뭐든 잘 먹는 모습을 보여야 했으니까.

그런데 남편은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었던 거다. 정확하게 말하면 익힌 것은 괜찮지만 날 것의 갑각류, 그러니까 게장을 먹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붓는 사람이다. 그날 간장게장까지 너무 맛있게 먹길래 나는 정말 몰랐었다.


"내가 그때 화장실 여러 번 들락거렸는데 기억 안 나? 나 화장실 가서 토하고 막 그랬잖아."

 

이것도 결혼 후 한참이 지나서야 털어놓는 남편이다.

처음 인사드리러 가는 자리에서 가리는 음식이 있으면 안 좋게 보실 것 같아서 그랬다나.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어이구 이런 시절~~~(시절은 충청도 사투리로 어리석다, 바보 같다는 뜻이다)

 알레르기 있다고 말을 하지 그걸 그냥 먹은겨?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을 억지로 먹다니 시절은 시절이다.

그 이후로 남편은 공식적으로 날 것의 갑각류는 못 먹는 사람으로 모두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남편과 같은 성을 가진 아들들은 다르다.

삼 형제가 모두 게장 킬러들이다. 게장이 상에 오르는 날이면 밥 두 세 그릇은 뚝딱이다.


"그렇게 맛있냐? 게딱지 뚫어지겠다."


삼 형제와 내가 게딱지에 열심히 밥을 비비고 있으면 남편이 삐진 듯이 한 마디 한다.

그런 아빠가 안쓰러웠는지 초등학교 3학년이던 2호 아들이 아빠를 위로한다.


"아빠. 아빠는 이렇게 맛있는 게장을 못 드셔서 너무 안 됐어요."

"아들아~ 아빠가 못 드시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입이 하나 줄었잖니."

", 맞다. 그러네요. 아빠 감사해요."


아니 뭐가 감사해. 아빠가 게장을 못 드셔줘서

감사하단 거니.  위로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그래도 아들들이 맛있게 먹으니까 그 모습

만으로도 배가 부른 아빠다.


"아빠 몫까지 많이 먹고 쑥쑥 꺼라."


엊그제 담가놓은 간장게장이 김치냉장고에 지금 맛있게 숙성 중이다.

다음 주에 큰아들 휴가 나오면 다 같이 먹어야지.

남편은...

, 남편은 간장게장보다 더 맛있는 나의 사랑을 줘야겠다. 알레르기도 이겨낸 간장게장은 밥도둑이 아니라 사랑이다.

맛있게 숙성중인 간장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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