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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May 17. 2024

아들 독립 선언서

1호 아들 이야기

1호 아들의 전역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요즘 부쩍 말년 휴가를 자주 나오고 있다 보니

곧 전역한다는 게 실감이 난다.

아들은 전역과 동시에 복학을 당분간 미루고 독립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나는 아들의 휴가 때마다 함께 방을 보러 다녔다.

사실 1호 아들의 독립은 나도 바라는 바다.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대학도 미국으로 갔던 아들인지라 우리는 함께 사는 것보다 따로 사는 것에 더 익숙해졌다고 할까.

 음악을 전공하는 1호 아들은 군악대에서 군복무 중이다.  작곡과 프로듀싱을 전공하다가 군악대에 지원하기 위해 트럼본을 배웠다.

한 번의 낙방 이후 두 번째에 군악대에 합격했고

트럼본을 배운 지 딱 5개월 만이었다.


군기가 세다고 소문난 군악대에서 18개월의 복무 기간을 무탈하게 마쳐가고 있는 1호 아들이

나는 늘 듬직하고 자랑스러웠다.

자대배치를 받고 초반에는 까마득한 전역 일을 기다리며 군대에서는 정말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다는 소리를 종종 하곤 했다.

그랬던 아들이 전역일이 다가오니 빨리 여기서 나가고는 싶은데 또 한편으론 나가기가 두렵다고 한다.

아무런 걱정 없이 시키는 일만 하면 그만이었던 군인 신분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

내심 두려운 지.

사실 전역 후 복학의 수순을 밟는다면이야 그다지 고민스럽고 어려울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1호 아들은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복학을 잠시 미루고 음악 작업과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했다.

 아들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대에는 경제적인 상황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미국 사립대학을 다니던 아들이었기에 환율이 엄청나게 오른 이 시점에 복학은 부모님께 너무 큰 부담을 준다고 생각한 것.

또 하나는 18개월이라는 공백 동안 영어도, 음악공부도 나만 모든 것이  뒤쳐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러 곳을 돌아다닌 끝에 음악 하는 이들이 많이 모여 있는 상수동 복층형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사실 나는 첫 독립 치고 너무 좋은 방을 얻어주는 것 아닌가 싶었다. 

작고 허름한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고생도 좀 해보고 그래야  음악도 나오는 것 아니겠나. 

옥탑방 정도에서 시작하면 감지덕지지.

그런데 나만 구닥다리 같은 생각을 하는 건가 보다. 남편은 요즘 청년들을 위한 저리의 대출이 있다며 그런 것을 이용해서 그래도 깨끗하고

쓸 만한 방을 얻자는 것.

그리하여 청년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이라는 것을 받고 지금의 매우 훌륭한, 모든 청년들의

로망인 복층형 오피스텔을 얻게 되었다.


작업실 겸 아들의 첫 독립공간


난생처음 본인의 이름으로 1억이 넘는 큰돈을 대출받아 보고 살림살이도 하나씩 준비하면서 정말 제대로 된 홀로서기를 준비하게 된

1호 아들.

제대와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출금 이자도 갚아나가고 생활비도 벌어서 쓰겠다는 큰 포부를 밝혔다.

그래. 말이라도 그렇게 하니 고맙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

성인이 되어 먼 미국 땅으로 홀로 유학길에 올랐을 때,

그리고 군대라는 정말로 가기 싫은 곳으로 떠나보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정말, 진정한 어른이 되어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결혼을 한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자식은 이렇게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부모 곁을 떠나고 있다.

이제 몸과 마음에서도 온전히 놓아주어야 하는

독립의 순간이 온 것이다.

홀가분하면서도 허전하고 울적한 이 기분은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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