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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Jun 20. 2024

왜목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
-석문산

초보 백패커의 기록 1

드디어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천할 그날이 왔다.

백패킹 도전하기!!

남들이 보면 백패킹이 무슨 버킷리스트까지

갈 일인가 싶겠지만

사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보면

마냥 쉽게 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많은 주부들이 공감하겠지만 나도 가정에 메인 몸인지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조건을

갖추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을 느껴지는 묘한

에너지가 있다.

그게 비록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없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반백년을 살아온 나이에 뒤늦게 백패킹의 매력을 느끼고 도전해 보기로 결심한 날.

그날부터 나의 계획은 차근차근

하지만 빠르게 진행되었다.

우선 함께 할 든든한 백패킹 멤버를 찾기

시작했다.

젊은 여성 백패커들 중에는 혼자 다니는 분들도 많았지만 나는 아직 초보인지라,

그리고 혼자는 왠지 무서울 것 같아서 든든한 동료가 필요했다.

산을 좋아하고 캠핑을 좋아하는,

그리고 가족들을 벗어나 하루쯤 배낭을 메고

떠나고 싶은 사람이 우리의 멤버가 되었다.

멤버를 모으고 난 뒤에는 장비를 하나씩 사모으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지고 백패커들의 유튜브를 보면서 꼭 필요한 장비들을 체크해 나갔다.

캠핑용품들을 파는 매장도 방문했었는데

그곳은 정말 개미지옥이었다.

사도 사도 끝없이 살 게 많은 개미지옥.

캠핑을 시작하면 캠핑용품들만 보인다는 캠퍼들의 말이 맞았다.

하나씩 사모은 백패킹 장비들


꼭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들을 준비하고

우리는 D-day를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의 첫 번째 박지는 당진에 위치한 석문산, 왜목마을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주차장에서 15분이면 오를 수 있는 정말 동네 뒷산 같은 곳이지만 그곳에 오르면 왜목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을의 지형이 왜가리의 목처럼 길고 가늘게 생겼다고 해서 왜목마을로 불리는

이 작은 시골마을은 서해지만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백패킹 전날 배낭을 꾸리고 무게를 재보니

대략 9.8kg 정도가 나갔다.

박지까지의 거리가 짧아 우리는 현지에서

먹을거리들을 사기로 했다.

그래서  정도면 배낭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은 13~15kg, 혹은 15kg 이상을 지고 오르는 백패커들도 있다.

백패킹은 무게와의 싸움인지라 경량, 초경량,

극 초 경량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다.


우리는 10kg 가까이 되는  배낭을 메고 자신 있게 석문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15분이면 껌이지 하고 생각했던

초보 백패커들의 눈앞에 펼쳐진 경사도는

무엇?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15분간의 가파른

경사도에 희희낙락 걸어가던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날은 뜨겁고, 배낭은 무겁고~

이것이 진짜 백패킹이구나.

첫 백패킹에 들뜬 백패커 3인방


"15분 거리를 이렇게 헉헉 대면 우리 선자령이랑 굴업도 어떻게 갈 거야~~~"


이 말에 우리는 또 한 번 깔깔 웃음이 터졌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이렇게 나와서 사서 고생하고 있는 우리를 이상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땀 흘리면서 사서 고생하는 이 과정이

나는 마냥 좋았다.

이것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백패킹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더 열심히 해서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5분 만에 오른 석문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작은 섬들은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었다.

우리 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차박 중이던

중년의 부부가 있었다.

누가 봐도 초보임이 티 나는 백패커 3인방이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하나 갈팡질팡 하고 있는데 남편분이 나무 가까이 있는 쪽에

텐트를 치는 게 좋겠다고 알려주셨다.

우리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나란히 텐트를 치기로 했다.

명당자리를 잡겠다고 새벽부터 서둘러 온 탓에 우리가 텐트를 치기 시작한 시간은 오후 1시.

태양이 장열 하게 내리쬐는 가장 뜨거운 시각이었다.

줄줄 흐르는 땀을 훔쳐가며 후다닥 텐트를 쳤다. 그래도 백패킹용 텐트라서 쉽고 빠르게 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석문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왜목마을

 

의자에 앉고 나니 시원한 맥주가 절실했다.

아, 맥주 한 캔 씩은 사들고 올라올걸.

지금 이 순간 뜨거워진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면 온몸에 전율이 흐를 것 같은 시원한 맥주가 간절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진 것 같다.

텐트까지 다 쳤으니 우리는 마을로 내려가서 맥주도 사고 바닷가도 좀 걷기로 했다.

이른 더위 탓인지 이미 바닷가 해변은

그늘막 텐트들과 파라솔이 즐비했다.

내려온 김에 우리는 이른 저녁식사까지 해결하고 밤에 먹을 간식들과 술만 사가기로 했다.

싱싱한 회와 함께 마신 소주가 어찌나 달던지

년 만에 느껴보는 달디단 소주맛이었다.


다시 박지로 오른 우리는 일몰을 보기 전까지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텐트에 누워 한숨 자기도 하고,

들고 온 책을 읽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먼바다를 그냥 바라보며

바다멍을 때리기도 했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의 쓸쓸함까지도

모든 것이 좋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백패커들이 기다리던 텐풍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시간.

텐트에 불이 켜지면서 벌레와의 전쟁이 선포되었지만 벌레들을 이기고도 남을

멋진 모습이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떡볶이와 김치짜글이에

맥주 한잔이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건가.

그래서 백패커들이 산을 오르고 또 오르나 보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 알람을 맞춰두었다. 해 뜨는 시각 5시 15분.

일몰을 봤으니 일출까지 완벽하게 감상할 수 있기를 바라며 첫 백패킹에서의 하룻밤을 보냈다.

깔별로 나란히 자리잡은 텐트들


일출 시간에 맞춰 텐트를 열고 나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가 정말 명당자리를 제대로 잡았구나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느꼈다.

전날 하늘이 조금 흐려서 일출을 볼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우리는 그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몇 분 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멋진 일출을 눈앞에서 맞이하게

될 줄이야.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가 장엄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이라면,

서해에서 떠오르는 해는 소박하지만 따뜻함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백패킹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여기서 말한 완벽이란

우리 마음속이 가득 채워진 그런 완벽함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벌써 다음 박지를 결정하고 있는 초보들의 백패킹.

앞으로 우리 앞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서해에서 보는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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