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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파 강성호 Jul 31. 2023

꽃비

99년 8월 7(음 6. 25)일 새벽 0시 5분

호흡이라는 것은 숨을 내쉴 呼, 숨을 들이킬 吸이라는 한자말을 우리는 늘 사용하고 있다. 사람은 그렇게 한평생 呼와 吸을 멈추지 않고 살다가 그 호흡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는 사람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돌아가는지 잘 모르지만, 그렇게 길고 무더웠던 99년 여름날 8월 7일 새벽 0시 5분, 조곤조곤 자상하게 말씀하실 줄 모르고 평생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은 엄마에게 양보하셨던 아버지는 80년 세월의 호흡을 내려놓으시고 오셨던 그곳 어딘가로 유유자적 편안한 얼굴로 먼 길 여행을 떠나셨다.     


99년 8월 6일 늦은 밤 11시

어제 숙직하고 늦은 밤 아버지 집에  오는 길, 이틀 전 아버지 뵐 때, 새콤한 귤을 드시고 싶다던 아버지 소망을 어떻게 알았는지 버스 정거장 과일가게에 아저씨는 덜 익은 파란 귤을 진열해뒀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한 봉지 사 들고 집으로 가서 숟가락으로 떠 입에 넣어 드렸더니 맛있게 먹었다고... 고맙다고... 하시면서 나와 아내에게 눈 맞춤으로 작별하고,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아픈 엄마의 무릎을 쓰다듬으시며 먼 길 떠나셨다. 그렇게 가시기 며칠 전 아버지는 엄마한테 물어보셨다고 한다. “나도 당신처럼 부처님 앞으로 갈 수 있을까?”     


99년 8월 7일 새벽 3시 30분

따로 연락을 드린 것도 아닌데 평소 엄마가 다니는 절, 주지스님께서 수행스님과 함께 금강경 탑다라니를 가지고 집으로 오셨다. 주지스님은 꿈에 아버지가 보여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고 하셨다. 스님은 짧은 기도를 마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려드리고 괴로운 윤회의 길을 걷지 말고 속히 해탈 열반을 성취하라는 염원”을 담은 탑다리니로 주검에 덮어드렸다. 그렇게 오신 주지스님은 기도를 마치고 절에 가시고, 수행스님은 장례가 진행되던 내내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부처님 앞으로 인도해 주셨다.     


99년 8월 9일

아침나절부터 웽웽거리며 밤새 돌면서 더위를 식혀주던 에어컨을 뒤로하고 먼 길 출발하였다. 벽제화장장 승화원에서 아버지는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되어 혼자 가실 북망산 길이 외로워서일까 맑은 하늘에서 가랑비를 뿌려주었다. 먼 길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피곤에 지쳐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나에게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처사님 꽃비예요” 속삭이듯 그렇게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지금도 맑은 하늘에 살포시 내리는 꽃비를 보면, 잊고 있던 스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아버지가 계실 북망산을 더듬는다.


18.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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