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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파 강성호 Jul 31. 2023

포도주와 칼국수는 그리움이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약주를 좋아하셨다.

엄청 많이 마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셨다는 기억은 없는데, 늘 친구분들과 막걸리 한잔을 동네 주막에서 소박하게 즐기셨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때로는 집으로 찾아오시는 친구분들과 사랑방에서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기도 하셨고, 어김없이 엄마는 주전자 들고 술도가에 다녀오시곤 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엄마의 실타래는 네다섯 살의 어린 시절로 나로 끌고 가기에 충분하였다.

물론 내가 너무 어린 시절이라 내 머리 속에는 모두는 없지만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면 희미한 기억의 조각이 툭하고 튀어나온다.

어린 어느 날 나는, 아버지가 한두 잔 마시다 뒤주 안에 넣어 두셨던 포도주를 찾아 동생과 함께 마셨다.

특별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아버지 술을 내가 마셔서 엄마 아버지께 혼날 것이 두려워 동생도 함께 마시게 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포도주에 취해 세발자전거를 타고 마당에서 놀다 뜨거운 땡볕 아래 그냥 잠들어 있었고, 동생은 방에서 잠들었다.

외출했다 돌아오신 엄마는 내가 술을 마셔 얼굴이 빨개진 것을 모르시고 그냥 뙤약볕 아래 잠들어 있는 줄 알고 엄청 많이 놀랐는데 나를 안고 방으로 들어오니 동생도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어 그때 비로소 포도주 마신 것을 알았을 것이다.

기억의 끈 한 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포도주는 천 겁의 세월을 넘어 엉킨 실타래 풀 듯 엄마는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날 저녁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말아 칼국수로 썰고, 남은 조각을 사랑방 아궁이 군불 넣고, 타다 남은 숯불에 구워 낸 칼국수 과자는 지금도 기억되는 엄마의 맛이다.

그날도 아버지는 늦은 밤까지 친구분들과 약주 한잔하시고 달과 별을 벗 삼아 집에 오신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소반에 차려진 칼국수를 드시면서 포도주 이야기를 하셨단다.

“헛! 그놈들....” 그렇게 포도주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지라 나도 친구들과 담소하면서 한잔하는 것을 즐긴다.

지금도 제사상에 올린 포도주를 보면 아버지 냄새가 난다.

그리고 엄마의 칼국수가 그립다.


그렇게 내 기억의 끈은 풀어주신 엄마는 하늘 어디쯤에서 아버지와 손잡고

그 이야기를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포도주는 그리움이다.


18. 0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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