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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치도치상 Sep 16. 2024

3. 저는 카멜라가 될 것 같던데요?

낙태권을 둘러싼 미 정치권의 반응

트럼프와 카멜라의 첫 티비 토론을 보았습니다. 네, 카멜라가 될 것 같아요. 첫 악수장면부터 그랬습니다. 트럼프는 티비 화면의 왼쪽, 카멜라는 오른쪽에서 등장했습니다. 카멜라는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트럼프가 토론 스테이지에 올라오자마자 악수를 먼저 청하더군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끝났네.'


며칠 전에 어떤 정치학과 교수님이 미국 대선 토론에 대한 얘기를 해주시더군요. 티비토론 준비 때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선주자들이 악수를 안 하는 걸로 결정을 했었대요. 그런데 카멜라는 "당과 당의 약속"을 위반하고선 먼저 악수를 청한 거죠. 전략적으로 움직였겠죠. 토론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표정, 행동이 보는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걸 알고 있었겠죠.


토론 중 경제 정책에 이어서 두 번째로 논의된 것은 낙태권이었습니다.


늘 미국 대선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트럼프는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주장을 함으로써 설득력을 잃어버린 반면 카멜라가 꺼내든 근거는 낙태권에 대한 논거로 적절해 보입니다. 카멜라는 근친상간의 경우 혹은 강간에 의해서 아기를 임신한 경우에 낙태권이 없는 주의 사람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을 근거로 들고 나왔죠.

카멜라의 근거는 설득력이 있어 보이더군요. 그렇다고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꺼내든 근거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니까요.  


어쨌든 낙태권이 왜 이렇게 항상 중요한 의제인가에 대해서는 미국의 사정을 이해하면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


1. 법의 문제 (Civil Law vs. Common Law)

우리나라 법체계는 일본의 법체계를, 일본은 독일의 법체계를 따왔다고 들었습니다. 유럽 대륙의 법체계는 Civil Law인데요. 로마제국의 법체계가 Civil Law의 근간입니다.


Civil Law 법체계에서는 판사 중심주의를 따릅니다. 법이 존재하더라도 법을 판결하는 사람이 우위에 있습니다. 사실 법이라는 것이 크게 정해진 규칙인 셈인데 세부사항으로 들어가면 판사가 판단을 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우리나라 역시 각종 소송에 있어서 판사의 재량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법을 해석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반면 영미법은 Common Law입니다. 법을 판단하는 "사람"보다 법에 따른 판례들이 더 우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판사보다는 변호사/검사 (Attorney)의 역할이 꽤 무게감이 있어요. 변호사의 역할은 과거 유사한 판례들을 예로 들면서 자신의 판단이 왜 더 옳은지를 증명하는 데에 있거든요.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판사가 누군지에 따라서라기보다는 어떤 변호사를 쓰느냐에 따라서 법정의 승패가 갈리는 셈이니까요.  


미국에서 낙태권을 얘기할 때에 1971년에 있었던 대법원 (The supreme court,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헌법재판소는 없습니다.) 판례를 예로 듭니다. Roe vs. Wade였는데 여기서 대법원은 자신의 몸을 자신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자유를 근거로 낙태권이 합법이라고 판단을 했죠.  


그런데 2021년 대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1971년 Roe vs. Wade 대법원 판단이 "overruled"그러니까 "자유"에 대한 14번째 조항을 확대해석했다고 명시했습니다. 대법원이 연방차원에서 보장된 자유에 낙태권이 합치하는지 결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죠. 그러니까 각 주에 낙태권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해석을 한 겁니다. 민주당은 이게 다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적인 성향의 대법관 탓이라고 합니다. 원래 오바마 행정부 때 새로 대법관을 임명하려고 했었는데 당시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가 트럼프 때 새로 보수적인 성향의 대법관들이 임명이 되었었거든요.     


미국은 연방입니다. 우리나라에서 State를 주라고 해석하니까 마치 우리나라의 경상북도 전라남도 하듯이 도를 State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State는 엄연히 '나라'입니다. 각 나라 State는 자기 나름대로 자치를 하고 있고요 법도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닌 이상 각 나라의 권한이죠. 그래서 연방 차원에서 무엇을 자꾸 결정하는 걸 매우 싫어합니다. 왜 내 나라의 일에 연방이 자꾸 간섭하냐 이겁니다.  


그러면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사례로 알아보죠.


2. 소송의 나라

옛날이야 뭐 나라와 나라(state to state) 사이가 멀기도 하고 사람들의 왕래도 많지 않았으니 큰 문제가 없었겠죠. 그러나 지금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사람들이 손쉽게 왕래를 합니다.  


만일 자신이 임신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내 나라(state)에서는 낙태를 못하게 법으로 금지해 놨어요. 그러면 다른 주에 가서 낙태를 해야 하죠. 일반적으로 낙태를 하려고 하는 경우는 결혼을 했거나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경우라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죠. 십 대 이십 대의 미혼여성이 임신을 한 경우가 더 많겠죠. 그러면 이런 경우들이 주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 수 있는 확률이 있습니다. 더더군다나 생명의 위협이 있는 경우라면 그런데 나라에서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서 위독한 상태인데 다른 주로 이동을 해서 낙태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난감한 상황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그러다가 산모의 생명이 위독해진다거나 하는 건강상의 문제가 생긴다면요. 미국은 바로 '소송각'입니다. mal practice로 신고를 하고 소송을 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의료행위를 담당하는 기관 및 개인은 mal practice에 대한 보험을 들고 있습니다. 심리상담도 일종의 의료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저도 mal practice 보험을 든 적이 있었죠.


그러면 여기에 병원, 병원 의사, 병원 스탭, 아니면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갈 텐데요. 연방 대법원 차원에서 주정부가 알아서 하라고 판단했는데 주정부 법원에서 만약에 진다면 다시 연방 대법원으로 케이스가 올 건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반대의 경우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가톨릭계 병원을 생각해 보죠. 어쨌든 가톨릭은 태아의 생명권 역시 종교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가톨릭계 병원에서는 낙태를 시술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미국은 종교의 자유, 개인이나 기관이 자신이 믿고 있는 윤리에 따라서 행동할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 낙태를 시술하지 않아 법적인 문제가 발생했다고 칩시다. 그래서 만일 환자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면 소송을 갈 "각"인데 그러면 가톨릭계 병원이 자신이 믿는 윤리에 따라서 시술하지 않을 권리도 있는 것일 텐데 법정에서 이걸 다룬다면 어떻게 되려나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개개인의 권리, 혹은 개개인이 설립한 기관의 권리, 그들이 믿는 바대로 행할 자유 등 단지 주정부법원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되든지 연방법원 차원의 문제가 될 소지가 있겠죠. 그래서 늘 정치권의 이슈가 되는 거죠.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다인종, 다문화가 모여사는 이민자의 국가라 그렇습니다.


3. 생명 윤리

며칠 전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미국 대선판을 언급하면서 낙태권에 대한 얘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미국의 가톨릭신자의 인구는 꽤 많습니다. 미국 전역에는 약 30%의 가톨릭신자들이 있고요. 보스턴이라든지 뉴욕, 필라델피아 등 미동부권은 40%가 더 넘습니다. 미국 내 개신교 및 가톨릭 등 그리스도교의 단일 종파 (감리교, 장로교, 여러 분파로 따졌을 때)로는 가장 인구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교황이 남의 나라 정치에 함부로 끼어드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미국식 사고로는 납득이 될만한 개입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이라는 국가가 먼저 존재한 게 아니라 그들은 개인의 규약에 의해서 설립된 국가 혹은 연방이 된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가 국가의 권리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개인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이 그 사람에게는 국가차원의 일보다는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각 개인이 믿는 종교의 수장이 얘기하는 것이 뭐 나쁠 일은 아닌 셈이죠.


사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낙태권에 있어서 가장 보수적입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이 되는 순간부터 인간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의료계나 사법부의 입장 (수정된 지 22주 이전에는 인간으로 보지 않고 생식세포) 보다 더 보수적이죠. 만일 수정된 이후부터 인간이라면 태아도 생존할 권리가 있는 셈이 됩니다. 세포분열을 하다가 8주부터는 각종 신경계도 생기고, 손가락 발가락 등이 생기니 주장의 근거가 희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가톨릭교회는 설사 근친상간일지라도, 강간에 의해서 임신이 되었다 하더라도, 수정체 이후부터는 생명이기 때문에 누구도 생명을 죽일 권리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가장 어리고 약한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게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라서 그렇습니다. 생명은 어떤 형태로든 존중받아 마땅하니까요. 그러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법을 규정해야 하는가. 그건 아니겠죠. 미국이 무슨 가톨릭 국가는 아니니까요.


저는 트럼프가 카멜라의 주장과 근거에 말려들어서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펼쳐서 매우 안타깝더라고요. 나름대로 트럼프는 보수적인 공화당 내에서도 꽤 진보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는데요. 자신의 입장 (각 주가 알아서 할 일)을 전달했으면 그만일 일을 카멜라에게 말려들더군요. 트럼프는 민주당이 "태아를 살해하는 정당"이라고 주장합디다. 그에 대해 카멜라는 우스꽝스럽다는 표정을 짓더군요. 거기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카멜라가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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