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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Nov 20. 2023

500개의 폴더와 14,000개의 파일을 남긴 당신에게

이직하는 남편에게 쓰는 편지 

  

남편이 이직했다. 

영어 ppt 발표와 임원진 면접까지 준비하느라 몇 주 고생을 했는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아 기뻤다. 옮겨가기까지 3주간의 시간이 주어졌으므로, 그동안 5년간 자신이 남긴 족적을 정리하느라 바빠졌다.      


 “5년 동안 내가 만든 파일들 드디어 다 정리했어. 폴더가 500개, 파일은 14,000개. 나 참 열심히 살았더라.”      

 500개의 폴더와 14,000개의 파일이라니. 일하는 남편의 모습이 또렷하게 그려진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의 노동, 때때로 자정에 가까운 퇴근, 무급으로 출근했던 주말과 공휴일. 그의 청춘이 그곳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쓸쓸한 마음이 고개를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달려온 그의 뜀박질에 절대적인 칭찬을 건네고 싶다.


“자기 진짜 최고다. 정말 정말 수고 많았어.”          

 




 그의 첫 직장을 기억한다. 뻥 뚫린 8차선 도로가 기분 좋게 쭉쭉 뻗은 곳, 매해 4월이 되면 새하얀 벚꽃이 기막히게 예쁜 곳. 그 어딘가에 자리 잡은 작은 부품 회사였다. 원하던 대기업도 아니고,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업무였지만 ‘시작’이라는 것에 조금 들뜬 그였다. 곧 바빠졌다. 퇴근도 8시, 토요일까지 근무로 매번 바빴다. 뭐가 그렇게 매일이 바쁠 수 있냐고, 그 회사에 일하는 사람은 너뿐이냐고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다 우연히 그의 업무 수첩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나는 정말 턱이 빠진 사람처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검정 볼펜의 흔적으로 수첩의 하얀 공백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렇게 새까만 수첩은 처음 봤다. 빼곡하다는 말보다도 그냥 공백을 두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크레파스로 까맣게 칠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정도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숫자와 알파벳들로 가득한 그것을 위해 하루 온종일 쫓아다니는 남자친구를 상상하니 되려 마음이 아팠다. 너무 많은 흔적으로 수첩은 너덜너덜하다 못해 바삭바삭했다. 두어 번 더 들여다보면 뚝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살면서 그만큼 제 역할을 해낸 수첩은 세상에 둘도 없을 것 같다.          


 그에게 존경심이 생겼다. 이만큼의 업무량이라면 분명 불만을 쏟아내거나 욕을 해야 옳았다. 그만두고 싶다거나 빨리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다는 부정적인 말을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매일 새벽에 버스를 타고 8차선 도로 중간쯤에 있는 정류장에 내려 작은 회사까지 부지런히 걸어갔다. 한 시간 단위가 아니라 일 분 단위로 시간을 끊어 쓰는 와중에도 나에게 점심을 챙겨 먹으라는 문자를 보내고 퇴근하고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 집 앞 정류장에 내려 나를 만나고 갔다.      


 그와 결혼을 약속했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지, 집 한 채를 해올 수 있는지, 부모님의 직업은 무엇인지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그 업무 수첩을 떠올렸다. 나는 그를 존경했으므로 다른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결혼은 오히려 쉬웠다. 다른 조건들을 따지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결혼을 직장과 집과 부모님과 하는 것이 아니기도 했지만 말이다.



 우리 집에는 그렇게 바삭바삭해진 수첩이 세 권 있다. 옷도, 물건도 별로 없는 그는 결혼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도 수첩만큼은 지니고 다녔다. 작은 방 한 구석 A4 용지박스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그것이 남편의 이력서이자 명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라는 무시무시한 상황에서도 더 좋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갈 수 있었던 그의 비결은 성실함과 부지런함인 것 같다.     


 사실 그는 많은 실패를 맛봤다. 나에게는 이름도 어려운 자격증 시험을 몇 번이고 응시하고 떨어지고 그랬다. 시험을 접수해 두고도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하거나, 몇 번의 불합격을 통지받을 때면, 그냥 다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굳이 비싼 응시료를 지불하고 1박 2일이라는 시간을 들여가며 애쓸 필요가 있냐고. 그땐 몰랐다. 불합격이라는 결과도 결국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표지판이었다는 사실을. 자격증을 따보겠다는 다짐, 공부를 해보겠다는 마음, 시험 일정을 챙기고, 늦지 않게 접수를 하는 마음, 수험서를 사는 마음,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 그것들은 결과보다 더 중요한 행보였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이 그를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이제 안다. 평생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있지만 더 나은 자격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는 그를 응원한다. 첫 회사에서 두 번째 회사 그리고 지금 옮겨가는 세 번째 회사로 한 단계씩 차근차근 오르는 그를 보면 기쁘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자신을 무기 삼아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그의 두 번째 퇴사날이다. 열 네 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느라 마신 커피. 그와의 작별을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앞날을 축복해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수고를 알아주니 그는 거의 눈물이 날 뻔했다고. 그 말을 들은 나도 슬펐다.           

     

 남편은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대신 써둔다. 그가 이루어온 매일의 성실함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이 너무 대견해서 기특해서 대단해서 든든해서 존경하므로 글로써 남긴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 같다.           


그동안 참으로 수고 많았습니다. 
500개의 폴더와 그리고 14,000개의 파일을 남긴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끌어당기고 뒤에서 밀어줄 그런 든든한 힘이 되겠지요. 
오늘도 분주한 노동을 어김없이 해내고 퇴근할 당신을 기다리며 이 글을 씁니다. 
언제나 당신을 믿고 기다리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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