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이 되고 흰머리를 발견했다는 회사 언니의 말을 옆에서 듣던 나는 서른두 살이었다. '흰머리'는 아득히 먼 단어였고 언니가 너무 이른 나이에 노화를 경험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일 년 뒤, 나는 욕실 거울 앞에서 하얗게 샌 한 가닥의 머리칼을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잠깐 멈칫했다. '.... 흰머리?' 정말 서른셋이 되면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건가. 나는 그때, 네 살배기 딸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었다.
사실 한 가닥 정도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럴 수 있지, 정도의 마음이었다. 서른세 살에 흰머리가 시작한다는 언니의 말이 맞아떨어져서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 일 년 전 대화를 다시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서른넷의 흰머리는 또 어떠한지 묻고 싶었다. 노화의 작은 한가닥인 흰머리의 안부를 묻기가 실례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서른여덟이 되었다. 아이가 한 명 더 생겼다. 여전히 젊은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아주 성실하게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 가닥이었던 흰머리는 갈수록 늘어나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 두 세 가닥 정도는 곧장 눈에 띈다. 머리를 묶으면 양옆으로 은은하게 빛이나기도 한다. 숨기려고 하면 숨길 수 있지만 바쁜 아침 아무렇게나 머리를 말리고 집을 나서면 얼마든지 내 흰머리를 남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작년부터인가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머리카락을 들춰보는 게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줌 집어 들고 휘리릭 놓으면 흰머리가 쏟아진다. 이리저리 들춰보며 흰머리를 발견하는 놀라움을 느끼며 논다. 흑발 속에 흰 머리카락 한 가닥은 왜 그렇게 눈에 잘 띄는지. 그 머리칼들을 흔들며 "세상에, 어머어머."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것이 마치 내 머리칼이 아닌 것처럼 군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들춰본다. 휘리릭 휘리릭하고 흰머리가 지나간다. 한 가닥이면 이렇게 재밌지 않았을 텐데.
흰머리가 재밌다니, 너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약간은 변태적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흰머리 한가닥에 슬프거나 우울한 것보다 낫지 않을까? 맹목적으로 젊음에 기대지 않고 그저 맥락 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힘을 믿는 사람이 되고 싶다. 후다닥 10년 뒤, 20년 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흰머리랑 놀다 보면 마흔여덟의 나도, 오십 여덟의 나도 그저 즐겁고 기쁜 모습일 거라 믿는다.
늙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적어도 젊어서 요절하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는가?
즐거운 오늘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