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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맨 Jun 27. 2019

"응력집중" - 사소함이 주는 어마무시함

'사소함'의 방치와 '사소함'의 생산화가 만들어 내는 차이

무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음료 한 캔~. 생각만 해도 시원해집니다.   

캔 뚜껑... 이렇게 시원한 음료를 마시기 쉽게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서 뚜껑을 딸 수 있도록 한, 참으로 훌륭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한 번쯤 궁금하신 적이 없으셨나요? 그래도 금속인데, 저렇게 눌렀다고 뚜껑이 따지다니...


네. 사실 아무런 사전작업이 없었더라면 금속을 뚫기가 저렇게 쉽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구멍이 뚫릴 위치에 미리 홈을 내어 놓습니다. 그러면 캔 뚜껑으로 누를 때 힘이 그 홈을 따라 집중이 되어 결국 우리가 마시기 좋도록 뚜껑이 개방되지요. 


네. 사실 저런 홈은 실제 캔 내부의 압력을 견디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캔 안의 음료가 터지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짝 힘을 주게 되면 바로 저 부분에 모든 힘이 집중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응력집중(stress concentration)"이라고 합니다.


우리 일상에서는 이 응력집중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커터칼날이 무뎌져서 자를 때 칼날이 적당한 크기로 쉽게 잘리도록 미리 칼날에 내어진 홈을 내어놓은 것도 바로 이 응력집중을 이용한 것이고요...

우표... 요즘은 편지를 많이 안 보내서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만... 여러 장 붙어 있는 우표를 뜯기 쉽도록 우표와 우표 사이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 놓은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것도 힘을 주면 우표 사이의 구멍에 힘이 집중되어 우표 자체는 찢기지 않고 우표 사이만 뜯어지기 쉽도록 한 사례이지요. 


이렇게만 보시면 "응력집중"이라는 현상이 참으로 좋아 보입니다만... 아마 공학자들에게 이 "응력집중"은 정말 피하고 싶은 너무너무 무서운 현상입니다. 엄청나게 큰 힘에도 끄떡없도록 제 아무리 잘 설계하고, 잘 만들었더라도 아주 작은 홈, 구멍이나 파인 자국... 같은 것이 있으면 모든 곳에 골고루 분산되어야 할 힘이 바로 그곳에만 집중되어 버리거든요... "난 한 놈만 패!"입니다...

난 한 놈만 패!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한 장면 - "난 한 놈만 패"

그래서 결국 파괴가 되어버립니다.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잘 돌던 팬이 부러져버리고, 결과적으로 끔찍한 인명, 물적 사고가 되어버립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렇게 생긴 '생채기'에만 모든 힘이 집중되어 결국 생각조차 하기 싫은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형 참사로 이어집니다...


일본 유키지루시(雪印) 유업은 2000년 당시 연 매출 5,600억 엔의 일본 최대 유제품 업체였습니다. 그해 6월 그 회사의 저지방 우유를 먹은 오사카 주민 145명이 설사와 구토 증상을 보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시 당국의 우유제품 회수와 판매 자제 권고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간부들은 사태를 방관하고, "원인도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과실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며, 다음날 "저지방 우유 외의 다른 제품은 이상이 없다"라고 발표합니다. 그러나 다른 제품을 마신 소비자들이 식중독 증세를 호소하면서 피해자가 3천6백 명으로 늘어납니다.

이후에도 식중독 환자가 급증하자 행정당국의 조사가 이뤄졌고, 제조라인에서 황색 포도상구균과 셀레우스균이 발견됩니다. 우유 저장탱크의 파이프 밸브를 제대로 세정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으로 밝혀지고요.

결국 소비자에 대한 기만으로 오사카 공장은 문을 닫게 되고 기업 이미지는 말도 할 수없을 정도로 추락합니다.

그동안 사장, 임원들이 한 번도 공장을 찾지 않을 정도로 결여된 경영자의 마인드, 경영진과 현장과의 소통 단절, 노사 간의 갈등 등의 문제점이 '사소'해 보이는 '파이브 밸브의 세정 불량'이라는 응력집중의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요?


집에만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TV를 켜는 사람이 있습니다. 피곤하지요. 하루 종일 직장과 다른 일로 몸과 마음이 지쳐서 TV를 켜고 소파에 앉아서... 아니 점점 누워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퇴근 후의 나머지 시간을 보냅니다. 네. 어쩌다 그럴 수는 있겠지요. 하루 종일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와서 집에서는 좀 멍하게 있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매일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루 1시간, 2시간,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모아놓으면 큰 시간입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1시간 동안 '사소한 일'-책을 읽거나, 방을 정리하거나,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거나, 다음날 계획을 세우거나-을 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은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 후에 2~3시간 동안을 활용하여 꽤나 큰 식당을 운영합니다. 남들이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직장에서 야근을 하는데?", "피곤한데, 뭐 하나라도 제대로 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둘 다 잘합니다. 야근이 많은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승진하고, 퇴근 후에도 식당을 누구보다 잘 경영해 냅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잘 알고 시간을 정말 잘 활용하는 경우이지요. 퇴근 후 1시간을 허비하는 습관과 잘 활용하는 습관의 차이는 이렇게 큽니다. 1시간이라는 '홀'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또는 긍정적인 응력집중입니다.


국제선 1등석 객실을 담당한 전직 스튜어디스였던 미즈키 아키코는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는 저서에서, 제목과 같이 펜을 빌리지 않을 정도로 메모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1등석 승객들의 사소한 습관들로부터 성공의 비결을 끄집어 놓았습니다. (1등석 승객도 대단하지만 저자도 대단합니다. 수많은 1등석 스튜어디스 중에 그런 것을 관찰하여 성공의 습관을 도출한 사람은 저자 한 명 밖에 없었으니까요.)


'사소함'이 만들어내는 어마무시한 차이, 사소함의 방치와 사소함의 생산화. "응력집중"에서 배우는 지혜입니다.


by Do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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