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youlovearchive Apr 27. 2024

강성은,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현대문학핀시리즈 시인선 011 (240419~240423)




* 별점: 4.5

* 한줄평: 별일 없다기에는 조금 큰 별일

* 키워드: 겨울 | 눈 | 빛 | 기차 | 밤 | 거울 | 우울 | 돌 | 잠 | 그림자 | 꿈


———······———······———


* 현대문학 핀 서재 팝업스토어에서 눈여겨본 시집인데 나중에 사야지 하고 말았었는데요. 자꾸 생각나서 결국 위트앤시니컬에서 구매해 왔습니다.


* 별일 없다고 말하는 화자가 어쩐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군가 나의 얼굴을 훔쳐가고’( 「손님」 부분), ‘모두 잠들어 있는 객차에 나 혼자 깨어 있는데 가도 가도 깨어 있는 사람은 나 혼자고, 기차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도 알 수 없는 겨울밤’( 「객차」 부분), ‘이제껏 본 적 없는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으나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끓이는 일요일 오후’( 「재난 방송」 부분), ‘동생들이 굶고 있어 떡을 훔쳐왔는데 세상은 망해버리고 동생들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잠든 얼굴로 울고 우는 얼굴로 잠드는 일’( 「제사」 부분) 같은 것들이 별일이 아니라고 할 순 없으니까요.


* 에세이가 시들과 연결된다는 느낌이어서 더 좋았어요. ‘눈 속에 안개가 가득해서’라는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희고 불투명한 베일 같은 안개가 짙게 깔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생함에 안개가 글을 읽는 제 곁에도 다가온 것 아닐까 흠칫 놀라기도 했습니다.


* 겨울에 읽으면 더욱더 좋을 것 같은 시집입니다. 이제 겨울 하면 생각나는 시집은 많아져서 봄, 여름, 가을에 읽고 싶은 시집들도 찾아봐야겠어요. [24/04/27]


———······———······———


 꿈에서 배를 가르자

 흰 솜뭉치가 끝없이 나왔다


 겨울이면 옷 속에 새를 넣어 다닌다는 사람을 생각했다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 「소설小雪」 (p.9)



 어두운 한낮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

 들으며 오래 누워 있었다

/ 「Lo-fi」 부분 (p.19)



 네가 태어나던 날과

 네가 죽은 날 모두를 기억하는 건

 행복이겠니? 불행이겠니?

 그걸 행복으로 여긴다면

 우린 행복해서 매일 울 거야

/ 「향이」 부분 (p.44-45)



 그것은 안개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디서부터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하얀 베일로부터 시작되었다. 밤의 거대한 장막을 걷으며 천천히 다가오는 새벽의 침입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안개는 오랫동안 펼쳐져 있던 허공과 골목과 학교와 은행과 공터와 빈 다락 안까지 스며들었다. 구름과 햇살과 나뭇가지를 B시를 그 베일 속에 숨겼다. 희고 불투명한 베일은 폭이 한없이 넓어서 아무도 그 시작과 끝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다.

/ 에세이: 눈 속에 안개가 가득해서 (p.53)


———······———······———


 좋았던 시


 「소설小雪」

 「첫아이」

 「손님」

 「객차」

 「Lo-fi」 (p.18)

 「재난 방송」

 「Lo-fi」 (p.26)

 「녹음綠陰」

 「상속자」

 「향이」

 「말년의 양식」


———······———······———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드리히 횔덜린, 생의 절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