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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보 Oct 13. 2020

예보 일기_01

나는 예민보스

예보. 예민 보스의 줄임말이다. 물론 본명은 아니고 당시 남자 친구 그리고 이제는 남편인 사람이 지어준 별명이다. 예민 보스. 나는 예민 보스다.


부모님은 내가 예민한 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미래가 걱정되었던 것 같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렇게 예민해서 커서 어떡하려고 그래'였다.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유별난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사람은 누구나 예민한 면이 있다.


예민함은 사람의 오감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청각이 예민하다. 소리를 잘 듣는 것 과는 또 다른 의미다. 작은 소리에도 자극을 받는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정확할 것 같다. 자극은 양면성을 띄어 남들이 귀길울이지 못하는 사소한 소리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일반적인 소음에 배가되는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소리의 표현 방식인 말에 민감한 사람이다.


혹자는 직업병이라 말할 수 있지만,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통번역사가 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말투와 단어 선택에 따른 차이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것 보다는 이건 어떨까' 대신 '그건 정말 별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흥미로운 사실은 반대로 똑같이 '솔직한' 표현을 들었을 경우 이를 정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화에서의 내로남불이다.


오랜 기간 동안 '예민함'은 유난스러움, 짜증스러움 등 부정적인 것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하지만 다양성이 수용되는 시대가 왔고, '예민함' 역시 하나의 특성으로 또는 연구 대상으로 격상되었다. 전문가의 상담 또는 분석 내용을 담은 양서가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하는 지금, 연구원이 아닌 그저 평범하고 예민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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