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은 부탁이 아니다.
아무리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필요한 바를 공유한다 해도 상대방이 거절하기 힘든 부담을 느낀다면 그것은 부탁이 아닌 요구다.
물론 ‘나는 쿨하게 거절해도 괜찮다고 말했는데 상대방이 너무 소심한 걸 어떡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지만 부탁할 때 상대방의 소심한 성향을 알면서도 부탁한 것은 아닌지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 ‘부탁’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니면 애초에 왜 거절하고 싶을 수도 있는 제안을 하는 건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부탁이라는 상황은 흔히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한다. 친하니까, 아는 사이니까, 좋은 사람이니까 부탁 좀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이미 잘못됐다.
부탁 좀 해도 되겠지.
아니, 안된다. 부탁을 당연시하는 순간 이미 그 행위는 ‘도움 요청’이 아닌 ‘요구’로 변질된 것이기 때문이다. 말은 결국 생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후에 늘어놓을 수 있는 변명인 ‘내 의도와는 달리’ 필연적으로 부담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아무리 물로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기름기처럼 마음에 엉겨 붙어 짜증과, 속상함과 분노의 혼합물인 아주 더러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그럼 부탁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할까?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의 본심과 달리 나는 인간이 홀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살다 보면 누구나 부탁을 해야만 하고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거절하고 싶은 부탁이 아니라 거절하고 싶지 않은 부탁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부탁이 싫은 이유는 간단하다.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해 열정 페이를 두 글자로 줄인 말이다.
여기서 보상은 일차원 적인 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돈이 가장 직관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인 것은 맞다. 하지만 충분한 상황 설명을 통해 상대방이 도움을 준 후에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만족감, 칭찬, 인정 등등 모두 일종의 보상이 될 수 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들어주고 싶은 부탁을 하자. 그런 부탁이 아니면 아예 입 밖으로 꺼내지 말자. 그리고 웬만하면 부탁부터 할 생각은 접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해 보자. 그러면 보다 못해 지나가던 나그네가 안타까워서라도 먼저 도와줄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