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낙엽과 어른이 된다는 것
가을이 되면 이상하게도 꼭 삶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무르익은 낙엽이 찬란하게 흩날리는 모습에 매료되어서일까?
떨어지는 낙엽은 낙하할 준비를 다 마쳤는지 모르겠다.
그 모습이 삶의 시작과 끝 같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주체적인 삶을 살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삶의 요소는 많지 않다.
언제, 어떻게,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조차 정할 수 없이
그렇게 첫울음을 터트린다.
삶이 울음으로 시작된다는 게 참 묘한 일이다.
어른이 되는 일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될 준비가 되어서 어른이 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마치 나이로 정의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성인이라고 해서 어른인 것은 아니다.
그러면 어른은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 걸까?
아니, 꼭 돼야만 하는 걸까.
어른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줄 사람은 너무 많지만
정작 모든 조건에 충족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싶다.
성경에 묘사된 ‘사랑’의 정의를 본 적이 있는가?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면서
‘사랑한다’는 경솔한 말로 시작해
이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로 끝나는 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없다.
세상에 어른은 별로 없다.
어른이라면 섣불리 무언가를 판단할 수 없다.
살아보니 내 생각이 틀린 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면 후폭풍을 직시하며 책임을 끌어안을 것이다.
내가 회피하면 결국 다른 누군가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면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자처할 것이다.
상대를 먼저 이해해야 진정으로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면 삶의 단위가 매 순간이 될 것이다.
순간보다 더 큰 단위로 살기엔 남은 시간을 알 수 없으니까.
어른이라면,
어른이라면.
어른이 아닌 ‘어른이’라서
오늘도 성장통에 시달리나 보다.
나도 저 사람도
그저 어른이라서.